박한솔 (콜센터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
대부분의 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콜센터를 운영한다. 주문한 상품의 배송이 늦어질 때, 구매한 전자제품이 고장 났을 때, 은행 업무를 봐야 하는데 공인인증서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재난지원금 신청 방법을 알고 싶을 때 등 우리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콜센터를 통해 업무를 처리하거나 도움을 받는다.
콜센터 부문의 노동자 규모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7년 전국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 사업체 수는 682개, 종사자 수는 3만 7824명이었으나, 2019년에는 사업체가 1070개, 종사자가 8만 1826명으로 늘었다(통계청). 콜센터 부문의 노동조합이 추산한 노동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콜센터’라는 명칭으로 정확히 등록하지 않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파견∙도급사인 경우 통계에서 누락되기 때문에 실제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콜센터 노동자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 콜센터 상담 노동 이야기》(콜센터상담원 지음, 코난북스)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실제로 매일같이 겪는 일터에서의 고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10년 넘게 콜센터 노동자로 일해 온 저자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많은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콜센터 노동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이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든, 주어진 목록의 고객 리스트에 전화를 걸든 불특정 다수와 통화를 하는 것이다 보니 제목과 같은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많다.
책에 언급된 것처럼 토요일 오전에 주문해 놓고 다음 날 바로 배송 오지 않았다며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 온수매트에 물이 샌다며 밤 10시에 당장 수리기사를 보내라는 사람, 지난해에 구입한 전기밥솥에 밥이 제대로 안된다며 새 제품을 원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드물긴 하지만, 콜센터 노동자에게 전화가 연결되기 전 고객들에게 들리는 “산업안전보호법에 따라 상담원 보호 조치가 시행 중입니다. 상담 내용은 상담사 인권 보호 및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녹음됩니다”라는 멘트를 조롱하듯 “니네가 욕 안 들을 인권이 있다는데 나는 너네한테 욕할 권리가 없냐. 니네만 권리가 있냐!”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84쪽). 나도 일하던 곳에서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권리 운운하지 말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통화를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슨 일에서건 자책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 이런 식으로 좋지 않은 감정들이 연쇄 반응을 몰고 온다.”(88쪽)
간접고용
이런 감정노동이 괴로운 이유는 이른바 ‘진상’ 고객들의 탓도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고용 형태와 구조 때문이다. 콜센터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은 충분한 인원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파견이나 도급 형태로 외주화한다. 가능한 한 적은 수의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유연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다. 도급사가 원청(본사)과 꾸준히 도급 계약을 맺고 용역 입찰에 성공하려면,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콜을 소화하고 친절함까지 겸비해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겪는 콜 실적 압박과 통제는 매우 심하다.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콜 120~150개를 처리하고 통화 하나 당 평균 2분 10초를 사용한다. 최근 코로나19로 민원 상담 고객이 많아져 같은 기간 대비 콜 수가 30퍼센트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 사측은 업무 실적 관리 및 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차등으로 지급한다. 이렇게 기본급은 충분히 지급하지 않으면서 성과급을 통해 노동자들끼리 경쟁시키는 방식은 저임금을 유지시키는 데 유리하다.
상담이 길어지면 받을 수 있는 콜 수가 떨어지다 보니 당연히 노동자들은 빠르게 그리고 많은 콜을 처리해야 한다. 고객을 많이 상대할수록 노동자는 더 많은 감정 소모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게다가 이 평가 과정에는 자리를 비운 시간, 평균 벨 울림 시간, 평균 통화시간까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또 노동자들은 상담 지식 숙지에 대한 평가를 매월 지필고사 형태로 치러야 한다. 그 점수는 성과급에 반영되기도 한다.
콜센터는 해당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고객들이 서비스를 원활히 이용하기 위해서도 인력 충원,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 간접고용이 아니라 원청에서 충분히 많은 인력을 직접고용하고, 성과급 경쟁을 없애고 기본급 자체를 인상해야 한다. 또, 노동자들이 받아야 하는 하루 평균 콜 수 자체를 절대적으로 낮춰야 한다. (하루 평균 콜 수가 낮아져야 ‘진상’ 고객을 만날 확률도 자연히 줄어든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의 원인을 제공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폐기했고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바닥을 기었다. 게다가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악으로 실제 인상률은 더 낮다. 저자는 올해 초 임금협상에서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식대를 지급하지 않으려 한 원청의 시도를 고군분투하며 막아낸 경험도 소개한다.
“현재 콜센터들은 대부분 코로나19로 휴게실을 폐쇄했다. 휴게실이 폐쇄되었으니 도시락을 싸 와도 먹을 곳이 없다. 그 와중에 하루에 5천 원 될까 하는 그 돈을 깎겠다니. 월 20일 근무하는 상담사라면 월급 10만 원 감봉과 마찬가지다.”(207쪽)
저자가 일하는 콜센터에서는 겨우 식대를 지켰지만, 다른 많은 콜센터들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악 이후 식대나 성과급이 삭감됐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오히려 비정규직 규모는 역대 최대다. 정부는 정규직화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지 않고, 많은 수를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시켰다. 전환하는 경우에도 자회사·무기계약직 같은 방식의 꼼수를 부렸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공공기관의 콜센터조차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데 민간기업이 직접고용을 알아서 할 리 없다.
문재인 정부의 약속 배신
최근 팬데믹 위기로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취업 문턱이 낮은 콜센터로 취직을 하는 경우가 더욱 늘고 있다.
특히 “조금만 일을 쉬어도 취업의 허들이 극도로 높아지는 대부분의 여성 구직자들에게 웬만해서는 취직이 안 되기가 어려운 콜센터라는 곳은 이미 구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력적인 직장이다.”(235쪽)
하지만 취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해서 하는 일이 덜 중요하거나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고객 응대를 위해 업무 지식을 숙지하고, 고객 민원과 관련한 사무 업무까지 처리해야 하므로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하다. “다만 이번에는, 올해는, 이번 달은, 전보다는 나아진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237쪽)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유의미했다. 이 투쟁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간접고용의 부당함을 널리 알렸고, 열악한 조건의 콜센터 노동자들도 투쟁할 수 있고 사측을 압박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물론 이 투쟁은 노동자들의 애초 기대에는 못 미치는 소속기관 전환으로 마무리됐지만, 경쟁 채용, 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둘러싸고 향후 다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전화를 통해 작은 도움이라도 받아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전화기 너머의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사측이 강요하는 고용 형태나 구조보다는 이른바 ‘진상’ 고객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이 책이 콜센터 노동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