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헌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서울대 학생
6월 26일, 서울대 기숙사에서 근무해 온 청소 노동자 A씨(59세 여성)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대 한 청소 노동자가 에어컨 하나 없는 휴게실에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 지 2년도 안 돼 또다시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관련 기사 : 찜통 같은 열악한 휴게실에서 죽은 서울대 청소 노동자)
이 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고 위상이 높다는 대학에서 이런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 당국은 공식 입장 하나 내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고인은 변을 당하기 전 고된 업무 강도 때문에 고통을 호소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근무한 여학생 기숙사(925동)는 서울대에서 업무가 가장 고된 기숙사 중 하나이다. 건물이 크고 학생 수가 많아 여학생 기숙사 중 일이 가장 많다고 한다. 고인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숙사에서 모든 층의 대형 쓰레기 봉투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계단을 오르내리며 직접 날라야 했다.
특히 유리병의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 끌어서 운반하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두 팔로 들고 날라야 했다. 노동자들이 신체적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 고된 업무였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기숙사 담당 노동자들은 노동강도가 더욱 세졌다. 학생들의 거주 시간이나 음식 배달도 늘어서 쓰레기 양이 급증했다. 그런데도 학교 당국은 인력을 확충하지 않아 고스란히 기존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졌다.
게다가 A씨는 사망하기 직전 한 달간 관리자의 ‘갑질’에 더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난달 초 새로 부임한 관리자(30대 남성)는 고령의 청소 노동자들에게 상식을 벗어난 업무를 지시하며 군대식 규율을 강요했다.
근무 기강을 잡겠다면서 매주 수요일 ‘청소 노동자 회의’를 신설하고는 남성은 정장을 입고, 여성은 ‘단정한 복장’을 입고 오라고 강요했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드레스코드”를 맞춰 오라고 한 것이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이런 복장을 갖춰 입지 않으면 모욕감을 줬다고 한다. 또한, 회의 때 볼펜과 메모지를 가져오지 않으면 근태에서 감점하겠다며 인사권을 남용했다.
심지어 청소 노동자들에게 필기 시험을 치르게 했다. 시험 문제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개관 연도, 심지어는 각 건물별 준공연도까지 묻는 황당한 것이었다. 시험 후에는 채점 결과를 나눠주며 공개적으로 노동자들을 망신 줬다고 한다. 자식뻘 되는 관리자의 행태에 노동자들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지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게다가 최근 학교 측은 청소 노동자들에게 제초 작업을 시켰는데, 노동자들이 작업에 어려움을 호소하자 임금이 삭감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조정하겠다고 협박했다.
그 외에도 카톡방을 통해 수시로 노동자들이 언제 점심을 먹었는지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하지도 않던 ‘청소 검사’라는 걸 갑자기 만들어 검사하겠다고도 공지했다.
관리자의 모욕적인 대우, 숨 막힐 듯한 노동 통제도 스트레스였겠지만, 이러한 각종 통제로 노동강도가 크게 증가했다. 고령의 청소 노동자가 관리자의 비인격적 대우에 못 이겨 쉬지도 못하고 혹사당했을 것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고인은 평소에 지병도 없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극심한 노동강도가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고인의 유가족은 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유가족들은 이렇게 요구했다. “일을 하러 왔지 죽으러 출근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배려해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7월 7일, 고인이 속해 있던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분회도 학교 당국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과 항의 서한 전달을 진행한다.
산재 신청은 마땅히 승인돼야 한다. 또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또다시 일어난 참사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악질 관리자를 처벌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