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령(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위안부 판결 곤혹스럽다.” 지난 1월 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자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집권 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정부가 피해자들을 배신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 어느덧 30년이 됐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해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현재 생존자는 15명이다.
그동안 역대 모든 정부에서 위안부 문제가 쟁점화됐다. 특히 박근혜 퇴진 운동 이후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의 대표 적폐 중 하나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보다 한일 관계를 더 걱정해 왔다.
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외면할까? 일본 국가와 우익의 망언은 왜 계속될까?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런 물음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는 소책자가 나왔다.
소책자의 주요 저자인 김승주 <노동자 연대> 기자는 위안부 문제와 이를 둘러싼 쟁점들을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와 발표를 해 왔다.(관련 토론회 영상은 ‘노동자연대TV’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위안부 강제 동원: 일본 국가의 전쟁 범죄
이 소책자는 위안부 제도를 제2차세계대전과 전후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펴본다. 위안부 제도는 1930~1940년대 일본군이 전시에 행한 전쟁 범죄다. “이 제도는 일본 국가가 해당 시기에 전쟁을 확대하면서 원활한 전쟁 수행과 병사들의 사기 진작이라는 목적 의식 아래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이고 주도적으로 운영한 제도”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바로 이 점, 즉 자신의 책임을 한사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최근 하버드 대학 교수 램지어의 망언도 일본 우익의 논리와 비슷하다. 그는 위안부 제도가 일본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자유계약이라는 주장의 논문을 발표해 피해자들을 모욕했다.
또한 이 소책자는 전후 일본의 전쟁 범죄들이 해결되지 않고, 일왕과 A급 전범들이 권력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전후 일본의 정세와 냉전 상황,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 속에서 분석한다.
전쟁이 끝난 뒤 세계 질서는 미국 대 소련 양대 진영으로 재편돼 갔다. 그런데 중국에서 예상과 달리 공산당이 권력을 잡자, 일본은 미국에게 중국을 대신할 대소련 핵심 동맹이자 병참기지가 돼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의 보호 아래 옛 제국의 최고 권력자들이 권력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전후 일본의 혁명적 분위기와 발전하던 노동자 운동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의 태도를 다룬 부분도 흥미롭다.
한·미·일 동맹과 제국주의 이해관계
한일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배경에는 현재진행형인 한·미·일 동맹과 이들의 경제적·지정학적 이해관계도 있다. 이런 배경을 살펴봐야 일본 국가가 과거 전쟁 범죄를 부정함으로써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또 이러한 일본의 전략과 한국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일본, 미국 제국주의에 타협하는 이유가 한국이 여전히 약소국이고 식민지 종속상태에 있어서라고 본다. 하지만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것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를 성장시키고 이익을 얻어 왔다.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데에서 일본의 자금 투입은 매우 중요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일본 정부와 두 나라 기업주들의 사이도 긴밀해졌다. 냉전 해체 이후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 경제의 일본 의존도가 약해지고 일부 산업 부문에서 경쟁적 성격이 생겼지만 한-일 경제는 부분적으로 경쟁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하에서 한국과 일본은 군사적으로도 긴밀해졌다.
이 소책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주도 하에 경제적·군사적으로 긴밀히 연관을 맺어 왔음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한국의 지배계급이 (대중적 압력 때문에) 때때로 과거사 문제를 꺼냈지만 잠시일 뿐, 한일 관계를 더 중시하며 과거사 문제 해결을 외면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윤미향·정의연 논란과 과제들
이 소책자는 지난해 논란이 된 윤미향 씨와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의 여러 부정 의혹도 좌파적 관점에서 다루고 대안을 제시한다. 윤미향·정의연 논란은 위안부 운동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 온 수많은 학생들과 진보 염원 대중들을 힘 빠지게 하고, 냉소를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조의금을 윤미향 씨 개인 계좌로 받은 일, 김복동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으로 만든 장학금을 윤미향 씨 부부와 가까운 활동가들의 장학금으로 지급한 일, 안성쉼터를 둘러싼 리베이트 의혹 등등.
저자는 이런 재정 운영 부정 문제를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재정의 운용과 출처 문제를 보면 위안부 피해자들과 운동 지지자들은 재정 운영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배제되고 수동적인 처지가 돼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된 데에는 정의연 등이 주도한 운동의 성격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저자는 정대협(정의연)의 전략, 즉 유엔 등 “국제 사회”에 기대를 걸고 민주당 정부와 협력하는 온건한 운동 방식이 낳는 문제들을 요모조모 짚어낸다. 또한 이런 전략 탓에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대해 저항하지 못했으며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도 지적한다.
‘성노예’ 용어 사용 문제와 같은 운동 내 논쟁들과 과제를 반제국주의 관점에서 다룬다는 것도 이 소책자의 장점이다.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괴로움만 더하는 ‘성노예’ 용어를 정의연이 계속 사용하는 이유를 정의연의 유엔 개입 활동과 관련지어 분석한다.
이 소책자는 위안부 문제를 반식민주의나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견해의 약점도 지적하고 반제국주의 운동 건설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이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밝히는 분석이 바탕이 될 때에만, 피해자들의 한 맺힌 절규에도 문재인 정부가 해결을 외면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분석 속에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 즉 정부에 독립적으로 맞서는 대중 저항을 건설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바라는 청년과 학생 모두에게 이 소책자를 추천한다.
※ 소책자 구입하기 ☞ https://workerssolidarity.org/p/book/25767
※ 관련 토론회(소책자 저자가 발제) 영상 다시 보기
☞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왜곡을 계기로 본: 위안부 문제의 성격과 그 해결(2021년 3월 1일)
☞ 위안부 배상 판결: 일본 정부 자산 압류, 문재인 정부는 왜 회피할까?(2021년 2월 2일)
☞ 윤미향·정의연 부정 의혹, 어떻게 볼 것인가(2020년 5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