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 12명이 학교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이 학생들은 서울대 당국이 추진한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해 본관 점거 등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무기·유기 정학 징계 처분을 받았다. 학생들은 징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1월 2일 1심에서 승소했다.
그 사이,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시흥캠퍼스 사업을 추진하고, 노동자들에게 반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점거 학생들에게 반인권적으로 소화전 물을 쏜 성낙인 전 총장의 임기도 끝났다.
그리고 오늘, 오세정 신임 총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오세정 총장은 후보자 시절 “1심 판결이 나오면 그것이 혹시 학교에 불리하게 나오더라도 항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총장 예비후보자 정책간담회).
그런데 그 직후 학생들이 승소했는데 깜깜 무소식이다. 오세정 총장은 당선 직후에는 징계 당사자들의 면담 요구에 “아직 공식 임명 전”이라는 이유로 직접 만남을 피했다. 이달 1일 임기가 시작한 뒤엔 학생들의 면담 요구를 무시했다.
취임식이 열리는 행사장 앞은 전 총장의 악행에 분노하고 신임 총장의 침묵에 답답함을 느낀 학생·노동자들이 가득했다. 파업에 돌입한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 언어교육원 계약직 강사, 징계 학생들에게 연대하러 온 단체 등 총 100명가량이 각자의 요구를 팻말로 들고 신임 총장에게 촉구했다. 신임 총장이 임기 시작부터 노동자들의 투쟁과 학생들의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취임식 시작 전 행사장 앞에서 징계 당사자들과 이들에 연대하는 72개 단체는 징계무효소송 항소 취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기정학 징계를 받은 이시헌(자유전공학부 15학번) 학생은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아 이렇게 말했다. “오세정 신임 총장은 후보 시절 ‘1심 판결에서 학교 측이 패소하더라도 항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장의 임기가 개시된 2월 1일 이후에도 징계 당사자들은 징계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총장의 임기가 시작했고 오늘이 취임식인 만큼, 우리는 ‘총장이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서울대 출신의 관악구의회 기초의원들도 기자회견에 참가해 학생들을 지지했다.
“오세정 총장이 후보 시절 약속한 것만 그대로 지키면 된다. … 1심에서도 징계에 하자가 명백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판결이 났다. … 이 재판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은 치졸한 것이다. … [신임 총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항소를 취하하라!”(정의당 이기중 관악구의회 의원)
고무적이게도 이날 기자회견엔 신임 학생회장들, 파업에 나선 시설관리 노동자, 서울대병원 노동자, 서울대학교 민주동문회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징계 당사자이자 현 사회대 학생회장인 이승준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법원만이 아니라, 오늘 참가한 분들처럼 [징계 철회 투쟁에] 연대하고 있는 단체들이 부당 징계는 철회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 줬다.
“학생들은 대학 운영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고, 비록 그 의견이 학교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처벌의 이유가 돼선 안 된다.”
파업에 나선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서울대분회의 최분조 분회장도 “부당 징계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오세정 신임 총장이 성낙인 전 총장과 함께 기자회견 장소를 지나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법원 판결 인정하고 항소 취하 약속 이행하라”, “너무 오래 기다렸다. 지금 당장 취하하라” 외쳤지만, 오세정 총장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취임식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세정 총장은 오는 11일 보직 교수들과 함께 징계 무효 판결에 불복한 항소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항소 취하와 징계 철회가 이행될 때까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전,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항소 취하 요구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류 대학’이라 불리는 서울대가 너무 치졸하다. 성낙인 전 총장은 “학생들을 소송으로 내몰지 않겠다”고 해 놓고는 ‘징계 무효’ 처분에 불복해 항소했었다. 오세정 총장은 약속을 이행해서, 항소를 취하하고 징계를 완전히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