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2퍼센트를 기록해 1999년 통계 기준을 변경한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OECD 회원국 중에서 청년 실업률이 상승한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한국이 다섯 번째 국가에 속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먹구름은 이제부터 몰려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1일 전경련이 발표한 ‘2016년 5백대 기업 신규 채용 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규채용을 지난해보다 줄일 것이라고 대답한 대기업이 무려 48.6퍼센트에 육박했다. 채용을 늘릴 것이라는 기업은 11.4퍼센트에 그쳤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한 청년층 구직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그뿐 아니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려고 일시적 실업을 선택한 청년들도 많은데, 그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따라서 올 하반기에는 청년실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서울 모 대학 취업 게시판 숨막히는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미진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려는 주된 이유는 경제 위기 때문이다. 전경련 조사에서 “국내외 경제 및 업종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을 꼽은 기업이 52퍼센트에 달하고, 사실상 경제 위기가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회사 내부 상황”의 어려움을 꼽은 기업도 32.4퍼센트였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주들은 꾸준히 ‘내부 노동시장’에 똬리를 틀고 앉은 중고령 세대의 노동자들이 인건비를 다 차지해서 청년들을 고용 못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귀족 노동자”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5백대 기업의 90퍼센트가 채용을 못 늘리겠다고 한 이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 중 62퍼센트가 이미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이다. 또,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한 기업들이 청년고용을 창출할 경우 ‘상생고용지원금’을 보조해 주기로 했으나, 85.2퍼센트에 달하는 기업들이 이를 이용해본 적도, 이용할 계획도 없었다.
정부가 조직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밀어붙이는 온갖 임금체계 개악이 청년 일자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한편 숙박·음식점업을 제외한 주요 서비스업의 고용은 증가한 데에 비해, 제조업의 채용은 4천명이 줄어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조선업을 포함하는 운송장비 제조업과 기계·장비 제조업에서는 신규채용이 3만 명 넘게 감소했다. 중국을 필두로 세계 경제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지다 보니 수출이 줄고, 전반적인 경기상황이 불확실해져 제조업 가동률이 감소한 것이 주된 요인인 듯하다. 중공업 부문에 들이닥친 구조조정의 효과도 특히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1년 4백8일?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청년들이 실업상태에 빠지고 또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2천1백13시간에 육박한다. OECD평균 1천7백66시간보다 3백47시간이 많다. 이를 환산해 보면 한국 노동자들에게 1년은 3백65일이 아닌 4백8일이 되는 셈이다.
더 많은 신규 채용을 통해 기존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완화하고 청년층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줄 수 있다.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이 지적했다시피 주52시간 상한제만 도입돼도 일자리 62만 4천~1백8만 2천 개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 손실과 비용을 누가 책임지는 가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계급의 피땀으로 그 손실과 비용을 해결하려고 해 왔다. 성과연봉제 등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먹기 위한 온갖 수단들을 강행하면서도 청년 채용을 늘리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그 비용을 져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수익성 위기와 ‘고용절벽’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자본가들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경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설비에 투자를 해 왔다. 그러나 그런 투자는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상승시키는 구실을 해 왔고 그에 따라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강화시켰다. 더욱이 사람의 노동 보다 기계에 투자하는 비율이 늘어날 수록 고용 탄력성[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증가할 때 고용이 증가하는 정도]는 저하된다.
엉뚱하게도 저들은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를 청년실업의 원인으로 지적하지만,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그와 같은 불비례 현상은 항상적인 것이다. 수익성의 위기 때문에 경기가 둔화해 실업자가 증가할 때에야 ‘미스매치’ 문제는 비로소 급성질환처럼 심각한 문제로 표출된다.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득을 보고 주된 결정을 한다. 노동계급은 이와 관련된 모든 결정에서 항상 소외돼 있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경제 위기와 고용 감소의 책임을 져야 한다. 저들은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방안들은 거듭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청년 실업을 해결하려고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하등 없다. 노동자들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이 소유한 자원을 실업 해결에 써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노동자 투쟁이 전진해야 한다. 공공부문 파업을 지지하는 청년·학생 기자회견. ⓒ석중완
이런 해결책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대책들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주들에게 온갖 명목의 고용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상생고용지원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업주들이 그러한 보조금을 사용할 의지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심지어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실제 고용은 늘리지 않는 꼼수도 벌일 수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를 직접적으로 강화하거나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데에 재정을 투여해야 한다.
오늘날 청년·학생들이 겪는 큰 어려움은 실업으로 인한 고통뿐 아니라 구직을 위해 가혹한 학점·스펙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는 학점·스펙 경쟁 해소에도 중요하다.
지금 정부는 일자리를 더 마련하기는커녕 성과연봉제 개악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더욱 더 쥐어짜낼 구상만을 하고 있다. 많은 조직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투쟁하고 있고 더불어 청년 신규 채용의 증가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승리하면 청년들의 고통을 유의미하게 경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청년실업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정부가 추진하는 온갖 종류의 노동개악과 대학 구조조정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운동이 전진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학생들이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며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경제 위기 때문에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경우가 생긴다면 해당 사업장들을 정부가 국유화하여 대량 실업사태를 막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경쟁과 실업으로 인해 신음하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이윤이 아닌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근본적 사회 변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