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신 노동자연대 청년학생 조직자
“봉쇄가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독재가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기온이 영하로 급감한 11월 마지막 날 재한 중국인들이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 모여 시진핑 정부를 규탄했다. 시진핑 정부에 대한 중국 내 저항에 연대하는 시위가 한국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매서운 추위를 뚫고 재한 중국 청년들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중국 본토의 항의 운동 참가자들처럼 청년과 학생들이었다. 중국인이 다수였지만,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연대하러 온 한국인들도 있었다. 홍대입구역을 오가던 젊은 한국인, 중국인들도 주변에서 응원하거나 참가하기도 했다.
강추위에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열기가 대단했다. 참가자들은 시위를 3시간 가까이 이어갔다. 시진핑 정부가 중국 내 항의 시위에 매우 폭력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주한 중국대사관의 감시와 통제가 존재하는 상황임에도 매우 용기 있게 나선 것이다.
(영상: “거짓이 아니라 존엄을 원한다! 문화대혁명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 독재자가 아니라 투표를 원한다! 노예가 아니라 국민이 되길 원한다! 시진핑은 독재자다! 공산당은 내려와라! 시진핑은 하야하라!”)
‘제로 코로나’로 3개월째 봉쇄된 신장 위구르 우루무치 시에서는 10명이 화재로 죽었다. 참가자들은 그 책임에 시진핑 정부의 정책이 있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한 중국인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우루무치시 사람들]이 왜 피해를 입었는지 똑똑히 보았다. [시진핑] 정부가 거짓말하는 것을 손 놓고 볼 수 없어서 나왔다. 정부는 우루무치 사건에 대해 거짓말하지 말라!”
참가자들은 자신이 왜 시진핑을 규탄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자유롭게 말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시진핑 샤타이(下台, 하야하라)”
중국인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구호를 선창했다. “시진핑 샤타이(下台, 하야하라)”, “신문과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구호에 호응이 컸다. 직접 만들어 온 팻말에서도 시진핑 하야 요구가 눈에 띄었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도 ‘윤석열 물러나라’고 외치는데, 왜 우리는 ‘시진핑 물러나라’ 못 외치나. 시진핑 물러나라! 우리는 독재자 필요 없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이날 시위에는 중국인들의 저항에 연대하러 온 한국인 청년·학생들도 있었다. 발언에 나선 한 한국인 대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민중도 투쟁으로 오랜 독재를 끝장낸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집권당은 독재자의 후예들의 정당이며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고, 보통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지난달 이태원에서 158명의 청년들이 죽었는데, 중국 우루무치에서 10명이 사망한 게 남의 일 같지 않다. 여러분의 투쟁을 지지한다.”
다른 대학생도 독재 정권을 겪은 나라의 청년으로서 동질감을 느낀다며 연대를 표하기도 했다. 중국인 참가자들은 한국인 청년들의 연대를 매우 고마워했다.
이날 시위는 중국 본토 각지에서 시진핑 정부에 맞선 항의가 벌어지는 와중에 열렸다. 정말이지 본토 시위에 대한 연대의 장이었다. 참가자들은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단지 자가격리 수준이 아니라 공장, 단지, 지역 등을 통째로 봉쇄하고 제대로 된 음식과 물품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 대다수가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우루무치 시에서 화재로 10명이 사망했고, 정저우 폭스콘 노동자들이 사측의 수당 지급 약속 파기에 파업을 벌였다. 이런 일들이 켜켜이 쌓여 온 불만의 기폭제가 됐다.
게다가 시진핑 집권 내내 중국 경제는 성장이 둔화했다. 청년 실업률은 18.2퍼센트에 이른다. 이에 대한 불만이 나올까 봐 시진핑은 억압을 강화해 왔다. 사실 제로 코로나도 그 일환이었다.
이 때문에 현재 중국 대중의 저항은 시진핑 자체로 향하는 듯하다. 권위주의적 통치와 민주적 권리 억압 속에서도 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자 시진핑 정부는 더 불안할 것이다.
이날 시위에 모인 중국인들은 상하이, 난징, 광저우, 우한 등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응원하며 “탄압이 거세져도 힘을 모으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한편, 경찰은 집회 도중 기습적으로 집회장 주위를 노란 펜스로 (출입구도 없이!) 둘러싸고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 출입하도록 했다. 한국어가 능통하지 않은 중국인 참가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펜스 바깥에 서 있어야 했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한 한국인 청년이 항의하자 그제서야 일부 펜스를 철거했다.
중국 본토와 재한 중국인들의 저항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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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https://ws.or.kr/article/28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