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진
※ 역사를 다룬 영화평이기에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4년 전 개봉한 <작은 연못>은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최초의 영화로,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관점에서 당시의 비극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노근리 학살은 피난길에 올랐던 민간인들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희생당한 사건이다. 1950년 7월 25일~29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여 지났을 때이다.
미군은 피난민들을 남쪽으로 유도하곤 철로 위에서, 쌍굴 다리 아래에서 마을 주민 수백 명을 헬기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살해했다. 사흘 밤낮으로 약 12만 개, 무게로 치면 2천6백50키로그램이나 되는 총알이 퍼부어졌다.
이상우 감독은 이 영화를 “이유도 모른 채 부모와 형제를 잃고 팔다리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이 목격한 사실에 집중”하여 “지금까지 어떤 전쟁 영화도, 어떤 전쟁 다큐멘터리도, 어떤 전쟁 뉴스도 외면해 온 전쟁의 진짜 얼굴을 거짓 없이 증언”한다고 소개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히 폭로하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전쟁에 책임도 없는데 그 피해를 온전히 입은 사람들을 조명한다.
“설마 미군이 쏘겄어? 빨갱이들이 쏘겄지 … 미군이 왜 쏘겄어?”
피난민들은 폭격 직전까지 미군이 피난을 도와주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남쪽으로 가라’는 미군의 유도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중, 경부선 철로 위에서 미군의 헬기 폭격이 시작된다. 이미 강압적인 짐 수색으로 피난민들이 무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고도 무참히 학살한 것이다.
“Help! Help! We are innocent people!”
폭격의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쌍굴 다리 아래에 숨었다. 여전히 “미군이 왜 쏘겄어?”라며 멀리 보이는 미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기관총 난사였다. 어린이, 임산부, 갓난 아기,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기척은 곧장 미군의 총알을 불렀다. 인기척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우는 아이의 입을 막는 영화의 장면은 당시 처절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어머니가 죽은 줄 모르고 우는 아기가 있었는데, 인기척이 날 때마다 미군이 총알을 퍼붓자 그 아이의 아버지는 우는 아이를 개울에 넣어 질식하게 했다고 한다. 총알을 피하기 위해 맨손으로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오래된 거짓말
한국과 미국 정부는 정전 이후 오랫동안 노근리 학살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을 은폐해 왔다.
노근리 학살은 44년이 지난 1994년에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정은용)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진 뒤, 1999년 AP통신이 특종 보도한 후에야 양국 정부가 공식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학살 피해자로 공식 인정된 것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55년이 지난 2005년 5월이었다. <작은 연못> 제작과 배포가 어려웠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과 미국 지배자들은 한국전쟁이 ‘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침공에 맞선 미국과 남한 자유주의 진영의 방어’라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했다. 그러나 민간인 학살에서 드러나듯, 한국전쟁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전쟁도, 민족해방을 위한 전쟁도 아니었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하려고 남한의 친미 정부를 적극 지원한다. 소련 또한 마찬가지 이해관계를 갖고 북한을 지원했다. 즉, 야욕에 찬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힘을 겨루며 남북 모두에서 애먼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 나간 게 한국전쟁의 진실이다.
그런데도 올해 6월 25일 윤석열은 미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당시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미국과 서방 지배자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전쟁에 빗대며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운운한다.
하지만 노근리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묻게 한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해당 지역에서 러시아와 패권 경쟁을 하고, 나아가 세계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지원은 평화는커녕 확전을 부르고 있다. 최근 미국은 민간인 학살 무기로 악명이 높은 집속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도 한미일 동맹 강화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게 젊은 군인들과 민간인 수십만 명이 죽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널리 알려야 할 전쟁의 교훈은 전쟁에 책임이 없는 사람들의 망가진 삶과 아픔이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전쟁의 진짜 얼굴을 고발하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