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혁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 회원
최근 여러 해 동안 주류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세대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MZ세대론, 이대남, 이대녀 등 청년세대 담론들이 유행처럼 번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특정한 격변의 시기에 사회 전반에 강렬한 영향을 끼치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들도 존재한다. 해외로 치면, 이른바 68세대가 그럴 것이고, 한국에서는 이른바 86세대가 있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공감대 이상의 강렬한 시대 경험과 정치적 동질성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과장·확대해 객관적 처지와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세대라는 틀에 욱여넣고 동질적 집단인 듯 다루는 것은 자칫 현실을 왜곡하기 쉽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간 《그런 세대는 없다》는 그런 피상적 세대론들을 반박한다.
세대 내 불평등
이 책은 실제로 존재하고 또 중요한 것은 세대 간 격차가 아니라 세대 내 불평등이라고 강조한다. “이 불평등의 시대에 세대는 더욱 더 계급계층으로 갈라지고 있으며 그만큼 더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이다.
물론 저자는 일부 청년세대 담론이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평범한 청년들이 고통스럽게 사는 현실을 잘 드러냈다는 점을 인정한다. 2000년대 유행한 세대론인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이 “그러한 자본주의 현실을 세대 관계로 전치”시켰다고 비판한다. 우석훈은 “세대 간 착취” 운운해 그 책의 장점을 스스로 희석시켜 버렸다.
세대론은 “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 소수 재벌이 지배하는 산업구조, 일자리 창출 없는 수출의존 축적 전략,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원·하청 구조, 노동인권을 위협하는 변칙적 고용계약 행태들이라는 사실을 비껴”가고 “일하는 청년들뿐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을 가난하고 병들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사실”(49쪽)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볼 때 진정한 기득권 집단은 기성세대 전체가 아니다. 586세대라고 불리는 현재 50대 10명 중 7명은 서비스판매직·생산직·단순노무직 종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의 조건과 생애사가 … 노동을 하는 20대~30대 청년들에 더 가까울까, 아니면 50대 국회의원, 기업 임원, 사장, 공공기관장, 언론사 부장에 더 가까울까?”
저자는 청년층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떤 청년이, 왜 아픈가? 누가 아프게 하는가? 모든 청년이 같은 이유로, 같은 정도로 아픈가? 어떤 청년에게 미래가 있고, 어떤 청년에게 없는가?” 저자는 고용, 소득, 사회보장에 관한 여러 통계를 제시하며 청년 내에도 격차가 크다는 점을 들춰낸다.(다만 저자는 부유한 청년과 노동자 청년 사이만이 아니라, 정규직 청년과 비정규직 청년 사이의 격차 또한 부각한다. 이런 관점은 노동계급이 분절돼 있어 단결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세대론, 누가 왜 부추기나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주류 정치권이나 기성 언론이 허구적 세대론을 부추기고 퍼트려 왔음을 잘 폭로한다는 것이다.
주류 정치권은 세대론을 이용해 “‘기성세대’라는 가상의 악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비난의 대상을 만들어주고 청년의 편인 듯 가장하여 인기를 얻으려” 한다. 이런 식의 세대론은 “실제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가령 저자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 세대간 불평등·불공정 프레임[이] 폭증”했다며, 정부가 세대 갈등을 이용해 노동개악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는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이 벌어졌을 때 언론들이 이를 “‘청년들의 분노’로 프레이밍 … 청년층의 공정 개념이 뭔가 여타 세대와 아주 다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고용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단체는 “‘청년’으로 인정되지 않고 그저 ‘비정규직’으로만 다뤄졌다.”
저자는 오늘날 청년들 다수가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를 중시한다는 주장은 일면적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 청년의 응답에 나타난 특성은 경쟁주의가 아니라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이었고, 특히 여성, 저소득, 고졸 청년은 경쟁원리와 능력주의에 대한 반감까지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요약하면, 저자가 특별히 문제 삼는 ‘세대 불평등’(또는 ‘세대 갈등’)론들의 문제점은 사회 구조에서 비롯하는 불평등과 차별 등의 문제를 세대 간 문제로 호도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정을 이유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에 체화된 청년세대’라는 서사 따위가 그렇다.
그는 기성 세대의 다수는 고졸 노동자이고, 비난 대상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상도 대부분 청년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지금의 청년층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것도 실증해 보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청년들이 보수화한 것이 아니므로 청년들의 지지를 받겠다고 우경화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저자도 중요한 계기였다고 말한) 조국 논란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염원 배신과 그에 대한 좌파의 침묵이 어떻게 우파에게 반사이익을 제공했는지를 파고들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세대 갈등론을 극복할 대안으로 청년들이 주체가 되고 가치 지향에서 공통 분모를 가진 사회 운동들에 주목한다.
2010년대 이후 노동·복지·페미니즘·기후 등에서 “[개혁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서로 연결된 청년사회운동의 많은 집단들이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청년’이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이자 의제로 부상했[다.]”(344쪽) 우파의 대항 담론이 조직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한 것도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관찰이다.
“이제는 청년담론, 청년정책, 청년정치가 모두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복지국가론자와 시장경쟁론자 간의 대결의 장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제 개혁적 진영 내에서 청년들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청년세대 내에서 개혁적 청년운동 주체들이 과연 세대의 주류를 형성할 능력을 갖고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어떤 청년운동, 어떤 청년단체, 어떤 청년정치인가라는 문제가 전면에 대두되는 것이다.”(346~347쪽)
청년들 자신의 몫이 중요해졌다는 뜻이고, 그것이 사회 운동으로 구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 집권하는 윤석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이고 우파적인 행보에 실망하고 반발하는 청년들이 생길 것이다. 그들에게 열려 있는 광범하게 급진적이고 개방적인 대중운동이 꼭 필요한 이유다. 나는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대는 없다》는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에 기초해 있지는 않지만) 세대 간 불평등론의 거품을 걷어내 노동계급 내 세대 간 화합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 이 글은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https://ws.or.kr/article/27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