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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계급이란 무엇인가?》
지독하게 불평등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고 변혁할 과학적 접근법

임재경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산은 각각 15조 4000억 원, 13조 9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최저 시급을 받는 노동자가 365일 8시간씩 52만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수년간 노동조건을 공격받고, 산재 사망이 끊이지 않는 현장에서 위험천만한 작업을 해왔지만, 정몽준 총수 일가는 900억 원이 넘는 돈을 배당금으로 챙겼다.

노동 영역에서 노동자와 기업주들 사이의 불평등은 노동 영역 바깥으로도 이어진다. 불평등은 교육, 주택, 자산, 주식, 자동차, 심지어 가전제품 가짓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편, 세계는 지금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거대한 생산력을 갖췄는데도 세계 지배자들과 제약 회사들은 전염병도 돈벌이에 활용해 돈을 쓸어 담고, 가난한 나라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주위를 둘러 보면 이 사회가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평등할까? 영국의 사회주의자 린지 저먼은 《계급이란 무엇인가?》(린지 저먼 지음, 최병현 옮김, 책갈피)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불평등이 양산되는지, 또 어떻게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지를 마르크스 계급론을 통해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계층? 계급!

‘계급’은 흔히 오늘날 복잡한 사회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구닥다리 개념이라고 여겨진다. ‘계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조차 그 정의와 이해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주류 사회학이나 경제학에선 라이프스타일이나 소득, 지위, 소비성향 따위로 계급이 나뉜다고 본다. 이런 접근법은 계급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개인의 위신이라는 매우 주관적인 기준으로 분류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같은 대중 문화를 소비하고, 놀이공원에 가고, 종종 맥도날드에서 식사하면 같은 계급이 된다.

그러나 린지 저먼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이런 접근법이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근본적 사회관계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어떤 차를 소유하는지, 세인즈버리스에서 한 카트 가득 쇼핑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려면 얼마나 오래 일해야 하는지, ‘행복한 가족’ 생활이 수월하도록 보모를 고용할 여유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지위에 초점을 맞춰 계급을 정의하는 것도 피상적이다.

“[이런 관점은] 모두에게 특정한 사회적 지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겠지만, 왜 그런지, 왜 어떤 사람의 서열은 더 높은지, 왜 특정 사람에게만 권력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또 대다수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밝히지도 못한다.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걷어 차고 높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이득인지, 아니면 ‘지위’는 약간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이득인지 말이다.”

“주관적 접근법은 분배와 소비의 문제, 즉 불평등한 계급사회의 결과에서 시작할 뿐 애초에 무엇이 계급사회를 만들었는지 보지 않[는다.]”

이런 관점들은 현실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인 계급 분단을 숨기고 흐리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사회의 대다수가 중산층(혹은 중간계급)이 된 결과, 노동계급이 점점 사라지고 노동계급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계급’이 문화, 소비 성향, 지위 같은 주관적 문제와는 다른 객관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계급’은 관계이다. 기계나 공장 등과 같은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에 따라 계급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통제하는지 아닌지, 생산 과정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 계급과 그렇지 못한 노동자 계급이라는 양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계급’을 둘러싼 흔한 오해와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경쟁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다. 상품의 가치를 실제로 창조해 내는 자들은 노동계급인데, 자본가는 창조된 가치의 극히 일부만을 노동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전부 자신이 갈취한다. 이런 합법적인 갈취를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불렀다.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노동계급이다.

주류 언론이나 학계뿐 아니라 노동운동 안에서도 오늘날 노동계급이 줄어들었다거나 더는 힘이 없다는 주장이 흔하다. 이런 주장은 계급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남성 제조업 노동자만을 노동계급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여성, 비숙련 비정규직, 시간제, 화이트칼라,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비중이 커진 것을 두고 노동계급이 줄었다고 결론내리는 것이다. 이들이 조직되기 쉽지 않고 투쟁에 나서는 경우도 드물다는 생각도 이런 관점을 강화한다.

린지 저먼은 여러 통계를 통해 여전히 제조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을 보여 주는 한편, 노동자를 특정 직종∙성별∙고용 형태 등에 연결시키는 관점은 자본주의의 역동적 성격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생산이 변화함에 따라서 노동계급의 구성도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흔히 전통적이거나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는 산업과 일자리조차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끊임없이 혁신하는 특성이 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구조조정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성이었다. 한때 역동적이던 산업도 사양길에 들어서고, 새 산업이 속속 생겨난다. 가장 중요하게는, 새로운 노동계급이 나타난다. 이런 과정은 자본주의 자체만큼 오래된 것이다.”

또한 린지 저먼은 여러 역사적 사례를 들어 투쟁적이지 않던 노동자 부문도 파업의 주역이 되고 조직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노동자들의 조직력과 전투성도 균일하지 않고 또 변화해 온 것이다.

 

불평등의 근원: 생산수단의 불평등한 분배

생산수단의 불평등한 분배는 주거, 교육, 건강, 소득, 구매력, 삶의 질 등 모든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이 된다.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쥔 자본가 계급은 생산수단의 이용 기회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의 경제적 필요를 이용해서 그들에게 고된 노동을 강요함으로써, 수중에 부를 쌓을 수 있다. 노동 계약은 겉으로 보기에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 같지만 이렇듯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이미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평범한 노동자는 만져볼 수도 없는 거대한 부를 쌓고 통제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이런 부를 더 쌓아 올리려고 강박적 축적을 위한 경쟁을 벌인다. 그 방식은 노동자들을 향한 착취 강화로 많이 표현되는데, 그래서 자본가 계급은 서로 경쟁하지만 착취하는 데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싸우는 형제들’이다. 이렇게 쌓인 부는 자본가계급을 더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고, 노동계급을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고, 삶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부자들은 더 배를 불리고, 가난한 노동자 계급은 고통받는 현실은 그 한 사례다.

 

“혁명적 잠재력”

그러나 착취는 노동계급을 고통에 빠뜨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라고 봤는데, 착취가 노동계급에게 특별한 힘을 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착취해야만 작동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거부하면, 사회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다. 계급투쟁이 첨예해지고 전면화되면, 사회를 멈추는 것을 넘어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를 재편할 수도 있다. 파리코뮌, 러시아 혁명 등에서 노동계급은 다수 대중의 필요에 맞게 사회를 직접 운영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물론, 현실의 노동자는 인종∙성∙국적∙직종 등으로 나뉘어 원자화되고 분열되어 있고, 힘이 없어 보인다. 일상적인 시기에 노동자들은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단결해 투쟁하기보다는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 노동계급의 의식은 굉장히 들쭉날쭉하다. 급진적인 사람도, 매우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노동 문제에 관해선 진보적인 노동자도 차별 문제에 있어선 보수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착취관계가 노동자들이 자신이 만든 어마어마한 부에 접근하고 통제하는 것을 차단하고, 오히려 그 부가 자본가들의 힘이 되어 노동자들을 옥죄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소외(통제력 상실)는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뿐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물질적 생산을 통제하는 계급은 정신적 생산수단도 통제하면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교육과 언론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에 구석구석 침투해,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상식’ 내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착취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떠미는 경향이 있다. 자본가들은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복지 삭감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더 많이 쥐어짜서 이윤을 얻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크고 작은 항의에 나선다. 그리고 이렇게 집단적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무력감을 떨쳐 내고 자신의 힘을 자각하곤 한다.

물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다고 해서 곧장 사회 혁명의 전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린지저먼은 노동조합 투쟁은 분명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지만, 노동조합 투쟁을 통한 의식 변화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착취 자체가 아니라 착취의 조건을 두고 싸우는 노동조합 투쟁의 성격, 특히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동조합 지도자의 구실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과 실제 현실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려면 노동조합에서 더 나아가 혁명적 정당이 필요하다.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소수가 조직돼, 노동계급에 뿌리내리고 영향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순간에 노동자들이 제한적 방어전을 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공세에 나서도록 도울 수 있다.”

《계급이란 무엇인가》는 이밖에도 자본가계급과 중간계급에 관한 여러 쟁점들을 다룬다.

계급이란 무엇인지, 오늘날에도 왜 계급 문제가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이 불평등한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를 제시해 주는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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