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지난 8월 9일,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6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IPCC는 “인간의 영향으로 대기와 해양, 육지가 온난화한 것이 명백하다” 하고 밝혔다. 또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이 2021~2040년이라고 밝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1] 이처럼 기후변화는 우리의 숨통을 빠르게 조여오고 있다.
기후 과학자들의 약 97퍼센트는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면서 압도적인 합의를 보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기후변화의 유력한 용의자(사실상 범인)임을 애써 부정하거나, 기후변화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기후변화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견해들을 통칭해서 ‘기후 위기 부정론’ 혹은 ‘지구온난화 회의론’이라고 부른다.
《기후위기, 과학이 말하다》(2021, 청송재)는 기후 위기 부정론의 여러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책이다. 제목처럼, 과학에 근거해서 논박하기 때문에 다양한 과학 지식이 등장한다. 그러나 필자처럼 과학과는 거리가 먼 독자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히려 과학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다.
저자 존 쿡은 기후 위기 부정론을 논박하는 웹사이트 ‘스켑티컬사이언스(SkepticalScience)’의 설립자다.[2] 그는 예전부터 기후변화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폭로해 왔다. 과학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책에서 아주 돋보인다.
그는 재치 있는 만화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의 오류와 모순을 풍자하는 만화로 가득한데, 보다가 킥킥대며 웃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림체도 귀엽고 친숙해서 더 매력이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쉬운 설명과 재미있는 만화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이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기후 위기 부정론의 네 가지 얼굴
저자는 기후 위기 부정론이 크게 네 가지 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기후 위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현실 부정’, 기후 위기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책임 부정’, 기후 변화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과 부정’, 기후과학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 부정’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데 어떤 형태를 띠든 결론은 매한가지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이나 조처가 필요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네 가지 형태의 부정론을 장 별로 나누고 각각에 해당하는 주장들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그리고 이 주장들이 어떤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 오류들을 분석할 때 ‘과학 부정론’의 특성들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과학 부정론[3]의 다섯 가지 특성
저자가 설명하는 과학 부정론의 다섯 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가짜 전문가(Fake Experts)’, ‘논리적 오류(Logical Fallacies)’, ‘비현실적 기대치(Impossible Expectations)’,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음모론(Conspiracy Theories)’.[4] 이것들의 머리글자를 따 과학 부정론의 특성을 ‘FLICC’라고 부르는데, 저자는 기후 위기 부정론의 갖가지 주장들을 여기에 근거해서 분류하고 반박한다.
예컨대, “지금보다 중세시대에 훨씬 따뜻했다”라는 주장은 무엇이 문제일까? 이 주장은 중세 온난기[5] 동안 기온이 높았던 일부 지역만을 부각하면서 기온이 낮았던 나머지 지역은 깡그리 무시한다. 즉 ‘체리 피킹’의 오류에 해당한다. 지구 전체로 보면 당시 기온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화산이 인간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주장은? 이는 애초에 그릇된 설명이므로 ‘논리적 오류’이다. 실제로는, 인간이 화산보다 100배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외에도 수십 가지 잘못된 주장들이 책에 소개돼 있는데, 저자 특유의 재치있는 비유와 만평이 곁들여져 있어서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기후 위기 부정론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기후 위기 부정론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고, 그것이 인간의 책임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의 목소리를 가벼이 제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소수지만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들 수 있다. 트럼프는 노골적인 기후 위기 부정론자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엄청난 권력을 이용해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트럼프는 국립기후평가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관인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을 잔뜩 임명했고, 미국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시켰다. 하루빨리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퇴보는 치명적이다.
트럼프보다 세련된 버전의 주장도 있다. 마이클 셸런버거는 저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2021, 부키)에서 꽤나 노력을 기울인 기후 위기 부정론을 꺼내든다. 셸런버거는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고, 기후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그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말한다(앞서 소개한 ‘결과 부정’의 형태이다). 이 책은 국내에 올해 번역·출간됐는데, 여러 언론들 – 특히 보수 언론들 – 에서 우호적 서평이 쏟아졌고, 결국 베스트셀러가 됐다.
기후 위기 부정론의 영향력을 그저 보아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기후 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기후위기, 과학이 말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마술사의 트릭 뒤에 숨겨진 교묘한 손재주를 폭로하는 것’처럼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의 그릇된 주장을 논박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진짜 범인을 찾아라
이 책은 기후 위기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잘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기후 위기의 책임을 똑같이 공유하고 떠안아야 하는 걸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국가들이 배출하는 탄소의 양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겨우 20여 국가들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80퍼센트를 내뿜는다. 기후 위기의 책임이 어떤 국가들에 더 있을지는 명백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지배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의 책임을 똑같이 물을 수 없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재생에너지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어벌쩡 미루는 국가 지도자들의 책임과, 서민들의 책임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기후 위기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은 옳지만 진실의 일부만을 말할 뿐이다. 기후 위기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여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이런 아쉬움이 있음에도 이 책은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매우 훌륭한 책이다. 특히, 책 속 만화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절묘하게 표현해 낸다.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1] IPCC는 2018년에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이 시점을 2030~2052년으로 예측했었다. 지구 평균 기온을 1.5도 상승 이내로 억제하는 것은 최악의 기후 재앙을 막을 마지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2] 이 사이트의 슬로건은 ‘지구온난화 회의론에 회의적이 되는(Getting skeptical about global warming skepticism)’ 것이다.
[3] 저자는 진정한 회의론과 과학 부정론을 구별한다. 진정한 회의론은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모든 증거를 면밀히 검토하려는 훌륭한 자세이지만, 과학 부정론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불편한 증거를 거부하려는 편협한 태도일 뿐이다. 기후 위기 부정론도 과학 부정론의 한 형태다.
[4] 가짜 전문가: 전문가의 합의에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적절한 전문 지식이 없는 대변인을 이용하는 것.
논리적 오류: 그릇된 설명, 성급한 결론, 인신 공격, 지나친 단순화 등의 논리적인 오류.
비현실적 기대치: 과학에 근거한 행동을 취하기 전에 비현실적인 기준의 증거를 요구하는 것.
체리 피킹: 자료의 작은 일부만을 골라내고 원하는 그림에 맞지 않는 자료는 거부하는 것.
음모론: 음모자의 힘에 대한 과장된 주장.
[5] 900~1150년 경의 중세 시대에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았던 시기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