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주항쟁 4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마지막 선무방송대로 광주항쟁의 정신은 4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광주항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이어졌습니다. 당시 민중들은 전두환 군부의 퇴진과 계엄령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전두환의 계엄령 확대와 광주 학살은 박정희 사망 후 유신 체제의 붕괴를 비집고 폭발할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잘라내려는 시도였습니다. 광주 민중은 전두환 독재에 맞서서 국가권력의 폭압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 있는 저항을 벌였습니다.
1980년 5월 27일, 끝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윤상원 씨는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현실이 됐습니다.
잔혹한 폭력에 광주항쟁은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이 위대한 투쟁은 한 세대의 영혼을 울리며 정치적 급진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침내 광주 정신은 1987년 6월 항쟁과 이후 노동자 대투쟁으로 부활했습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바로 군부 독재의 총칼에 맞서서 1987년 이후 노동계급 투쟁이 쟁취한 것입니다. 대중 투쟁이 군부독재를 무릎 꿇린 뒤 ‘광주 청문회’가 열렸고, 1995년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됐습니다.
그러나 뻔뻔하게도 학살자 전두환은 여전히 항쟁 진압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총기 사용과 공중 사격 계획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학살자들이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것은 불의하고, 분노스러운 일입니다. 전두환 일당은 제대로 처벌돼야 합니다.
우파 정치인들도 이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망언과 모욕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공분을 의식해서인 듯 최근 국민의힘의 초선 의원들이 “5·18 민주화 운동은 … 모두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학살 정권의 후신들이자 여전히 부정부패와 불의로 가득찬 이 정당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을 것입니다.
광주항쟁 정신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민주당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당선하자마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했습니다. 민주당이 벌써 세 번 집권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도 남아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치인들은 광주를 방문해 민주주의 정신을 기린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민중의 용기와 연대, 국가폭력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이어 온 것은 노동자와 학생, 피억압 대중의 투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관련 글: 1980년 광주민주항쟁 40주년: 군부 독재에 맞서 일어난 위대한 무력 저항과 대중 민주주의)
광주를 기억하는 도서와 글을 소개합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른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소설가 한강은 열흘간 광주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소설에 담았다. 광주 출신인 한강 작가는 광주항쟁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년이 온다》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시선에서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광주의 기억과 고통을 다룬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광주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기록, 창비, 2017)
이 책은 1985년 출간 당시 “지하 베스트 셀러”로 많은 이들이 숨죽여 읽었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에서 항쟁의 참가자와 목격자 200여 명을 조사했고 실제 운동에 참가했던 이재의, 조봉훈, 정용화 등이 주도적으로 1981년부터 4년 간 자료를 모았다. 정권의 공격을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황석영이 책임 집필했다. 책이 출간되자 전두환 정권은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관계자들을 구속하지만 지하에서 이 책은 도도하게 널리 읽혔다. 당시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생생하게 담겨 있어 1980년 5월의 해방구 광주를 만나고, 이를 분쇄하려 했던 국가폭력을 살펴볼 수 있다. 2017년에 나온 전면개정판은 초판 출판 후 밝혀진 진압 작전 참여 군인들의 증언과 외신 기자들의 보도 기사 등을 추가해 더욱 방대하게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힌다.
《최근 한국 현대사: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 (김동철, 김문성 지음, 책갈피, 2020)
《최근 한국 현대사》는 역사유물론으로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즉, 노동계급이 어떻게 변해 왔고, 노동계급의 투쟁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 왔는지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 설명한다.(서평 보기: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됐냐고? 궁금한 청년들 주목!)
5장 ‘광주항쟁, 한 세대의 영혼을 울리다’는 광주항쟁이 벌어진 배경과 이후 역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광주항쟁의 진면목을 더 잘 알 수 있다.
“광주항쟁은 군사적으로는 패배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광주항쟁으로 급진화한 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이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광주항쟁에 숟가락 얹으려는 민주당과 파렴치하고 역겨운 망언을 일삼는 우파를 반박하며, 광주항쟁의 진정한 계승자는 노동계급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불평등과 차별을 끝장내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힘도 노동계급에게 있다고 말한다. 광주항쟁은 그런 노동계급이 급진화하고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줬다.
광주항쟁의 정신에 공감하고 불평등과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5장뿐 아니라,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다루는 책 전체를 읽어 보면, 광주항쟁의 역사적 맥락과 의의를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밖에도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등 광주항쟁의 학살 진압의 진상과 이에 맞선 용기 있는 항쟁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도 있습니다. <김군>은 광주항쟁을 왜곡하려는 시도에 맞서며 진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또, 유튜브 등을 통해 언론사들이 당시 항쟁 상황과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광주항쟁을 기억하는 데에 영상 시청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