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령(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오늘날 뉴스를 접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일간지, 뉴스 방송 혹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뉴스가 쏟아져 나옵니다. 카카오톡, 트위터 등 SNS에서도 세계 곳곳의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늘날에도 혁명적 신문이 필요할까요? 주류 언론들과는 무엇이 다를까요? 이 글은 필자가 최근 노동자연대 지회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노동자연대 회원이거나 연관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노동자 연대> 신문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연대 활동의 중심에는 신문이 있다. 노동자연대 회원들은 신문을 읽고, 기고하고, 거리와 대학, 작업장에서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신문을 판매하려고 노력한다. 신문의 중요성은 사회주의 단체의 필요성과 목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자력 해방과 혁명적 조직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핵심이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고 했다. 이윤의 생산과 축적을 우선해 굴러가고, 극소수의 지배자들이 다수를 억압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고쳐 쓸 수 없고, 인간의 필요를 우선한 진정 민주적인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회의 진보와 근본적 변화는 뛰어난 개인이나 소수가 위로부터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쟁취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 투쟁이 곧장 사회주의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투쟁의 방향과 전술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다. 예컨대, 미국을 뒤흔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안에서도 민주당에 더는 기대지 말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행동으로 투쟁을 확산시키자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임 부통령인 흑인 여성 카밀라 해리스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논쟁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은 노동계급의 의식·자신감·투쟁이 균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안에는 자본주의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작업장 투쟁에서 전투적이지만 여성 차별적 의식을 갖고 있거나, 여성 차별에는 반대하더라도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서는 달리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지배계급은 이 사회의 생산수단을 지배해 경제를 지배하고,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언론과 교육기관 등)을 독점하고서 체제를 정당화하는 온갖 사상들을 전파한다. 그 영향력은 막대해서 우리는 지금의 시스템이 자연스럽고, 사회가 다르게 조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을 일상으로 접한다. 마르크스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은 변한다.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박근혜 퇴진, 1987년 대투쟁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의식 변화,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연대 등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과 지배자들이 주입한 사상이 서로 충돌할 때 의식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 거대한 투쟁을 경험할 때 그 변화의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혁명적 조직은 이런 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해 함께 투쟁하고 토론하며 투쟁을 더 효과적이고 급진적으로 이끌고자 한다. 현실의 경험을 사회주의적 원칙과 정치로 분석하고, 지배자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사회 진보를 위한 실천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주장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혁명적 신문은 이를 위한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즉 혁명적 신문은 이론과 실천을 연결한다. 신문은 혁명적 조직이 대중들과 연관을 맺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교육자·선동가·조직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신문은 집단적 선동·선전가이자 조직자’라고 말했다.
가령, <노동자 연대> 신문은 노동조건과 임금삭감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하고 이들을 지지하자고 주장한다. 신문의 선동자 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들에게는 수천억 원을 지원하면서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할 노동개악을 추진한다.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서면 정부와 자본가들, 보수 언론들은 거세게 비난한다. 그저 현상을 묘사하거나, 중립성을 이유로 노동자 편에 서기를 거부하는 언론들도 흔하다. 반면에 <노동자 연대>는 최근에 택배 노동자들, 이케아 노동자들 등 투쟁 소식을 보도하면서 이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이 투쟁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 투쟁의 확산을 주장했다.
한편, 최근 <노동자 연대> 신문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비롯한 혁명가들을 조명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역사를 통해 이들의 혁명적 사상과 중요한 기여들-여성 해방의 전략, 혁명 정당의 중요성 등-이 오늘날에 갖는 의의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신문은 사회주의 정치와 사상을 대중에게 알리고, 지지자들을 무장시키는 효과적 수단이다. 투쟁의 상승기가 아닐 때에는 신문의 교육적 구실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이 공격받거나 노동운동이 침체된 시기라면 신문은 그 사상을 방어하고 역사적으로 그 시기의 상황을 분석하는 글을 내야 한다.
주류 언론과 무엇이 다른가
온라인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이것이 종이 신문이 무용지물이 됐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2011년 이집트 혁명 당시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했는데, 종이 신문이 활약했다.
주류 언론은 정치와 사회, 문화, 경제, 국제 분야들을 분리해서 다뤄 현실의 사건들이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벌어지고,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돕지 못한다. 반면에 혁명적 신문은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개별 쟁점들을 체제의 문제와 연결시키고 대안을 제시한다.
예컨대 <노동자 연대> 신문은 코로나19 팬데믹, 백신, 꾀죄죄한 지원 정책 등을 이윤 체제와 경제 위기,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바탕으로 다루며 투쟁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위안부 배상 판결 외면하는 문재인 정부, 택배 노동자들의 저항 소식도 함께 실려 있다.
온라인 신문에서는 특정 기사 하나를 클릭하면 그것만 읽는 데서 그치지 쉽지만 종이 신문은 특성상 독자들이 지면의 앞뒷면에 있는 기사들을 함께 읽으며 여러 사안을 총체적으로 보는 데에 용이하다.
혁명적 신문의 지지자들은 독자일 뿐 아니라 기고자이자 판매자가 된다는 점도 주류 언론과의 차이이다. 혁명적 신문은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신문 판매는 독자와의 정치적 관계 맺기와 연결돼 있다. 그래서 신문 지지자들이 거리, 대학, 작업장에서 직접 신문을 판매하고 신문을 판매하고, 구입한 사람과 토론하려 한다. 반면에 주류 언론들은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거나 온라인에 올려 두는 것에 그친다.
손에서 손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네지는 기사와 신문은 사람과 투쟁의 연결망 구실도 한다. 신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투쟁 건설과 조직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2019년 노동자연대는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압박할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이 참가하지 말 것을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주장하면서 운동을 건설했다.(대의원대회는 불참을 결정했다.)
종이 신문 구독률이 하락하고 온라인 접근성이 대폭 커지면서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뉴스를 무료로 배포하고, 광고에 의존해 수입을 만회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재정의 압도적 부분이 기업 광고와 정부 기관의 후원이라면 정부와 기업을 제대로 비판하기 어려울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그간의 동성애 차별 반대 기사가 무색하게도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최근 반(反)동성애 교회 광고를 신문에 전면으로 실었는데 광고 수익이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반면에 혁명적 신문은 구독자들의 구매와 재정 후원으로 신문을 낸다. 여기에는 재정 문제와 정치적 네트워크 건설을 결합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는 신문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광범한 연결망을 건설했다. 레닌은 정치적 지지를 조직하는 것과 모금을 조직하는 것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주의 신문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월급날마다 기금이 빠짐없이 정기적으로 걷히는 것에, 그리고 갈수록 많은 노동자들이 기금 정기 납부에 참여하는 것에 달려 있다. … ‘노동자 신문에 1코페이카를’ 내는 습관을 확립하고 널리 퍼뜨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역사적으로도 아래로부터의 해방을 최우선하는 혁명가들이라면 신문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전진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신문 <프라우다>가 있었다. 그람시도 1919년 이탈리아 역사상 최대의 격변기에 〈신질서〉를 창간했다. 1918년 독일 혁명 당시에 로자 룩셈부르크도 신문 〈적기〉를 편집했다.
혁명적 신문은 사회주의 단체를 건설하고 성장시키는 데에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투쟁이 분출하자 갑자기 나타나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을 경청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일상적 시기에도 참을성 있게 신문을 이용해 사상을 벼리고, 토론하고 투쟁에서 입증 받으려 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수행했던 과거 혁명가들로부터 배우고, 오늘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서 혁명적 신문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에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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