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연(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요즘 뉴스만 보면 정신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에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리오 휴버먼이 쓴 《가자, 아메리카로》(비봉출판사, 2005) 라는 책입니다.
저자 리오 휴버먼은 미국의 사회주의 저널리스트이자 노동운동가로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휴버먼의 자본론》 등을 써내며 독자들에게 이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보여 줬습니다. 교사 출신답게 어려운 내용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휴버먼 선생은 쉽게 설명해 줍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의 구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동아시아 정세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태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위기를 겪어 왔는지를 알아보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가자, 아메리카로》는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 사람들이 이주하던 1600년대부터 1929년 미국 경제 대확장기까지 다룹니다. 서부 개척 과정, 영국과의 독립 전쟁,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1773년)’, 노예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남북전쟁,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을 오간 삼각무역, 노예제, 플랜테이션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굵직한 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속도감 있게 배치돼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들, 가령 ‘모든 인간이 평등한 자유의 땅 미국’에 존재하는 노예제 등도 재치 있게 보여 줍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예제는 남북전쟁을 끝으로 폐지됐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자연스러운 거부감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인간의 본성에서 차별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미국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아주 초기부터 경제적 필요에 의해 인종차별주의가 발명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흑인들이 노동력 동원을 위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p.31)이라고 지적하면서 노예제의 시초를 밝힙니다. 농장이 커질수록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영구적인 일손”을 얻기를 원했고 그 답을 “흑인 — 종신 노예”에서 찾았습니다. 덕분에 농장주들은 큰 이윤을 챙겼습니다. 또한 “흑인 노예무역은 이윤이 아주 많은 사업”이어서 “영국의 많은 재벌들의 재산이 노예무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자본 축적의 발전 과정에서 노예 무역이 한 구실이었습니다. 반대로 흑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오며 당해야 했던 끔찍함은 이루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인종차별이 노예제를 낳은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인종차별이 개인들의 심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윤 축적을 위해 동원된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부에서는 미국의 확장기가 끝나고 곧바로 경제 위기가 온 1930년대부터 1947년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일푼에서 백만장자”가 된 미국이 어째서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한순간에 고꾸라졌는지, 위기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 시기에 어떻게 투쟁했는지 등등.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의 시기에 생기는 질문들을 미국의 사례로 답하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자세하게 다루는데요. 경기 침체 상황에 코로나19 위기가 더해져 1930년대에 비견되는 역대급 경제 위기를 맞는 지금, 문재인 정부는 ‘한국형 뉴딜’로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 정의당, 녹색당 등 진보 진영의 일각은 일자리를 늘리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그린뉴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경제 위기와 대안 논의 속에 미국의 뉴딜정책이 대불황을 끝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자는 과대 포장된 뉴딜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저자는 루스벨트의 뉴딜은 재정 건전성과 기업주들의 눈치를 살핀 “극히 불완전한 것”(p.417)이었고, “정부가 충분히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고 꼬집습니다. 저자는 뉴딜을 ‘불완전한 한 걸음’에 불과한, 한계가 매우 많았던 정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뉴딜을 통해 루스벨트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이윤의 획득을 주목적으로 하는 생산수단의 사유제도를 바꾸지 않았다. (중략) 고용주는 여전히 옛날의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근로자 역시 옛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p.385)
리오 휴버먼의 《가자, 아메리카로》는 다른 역사책에는 없는 확실한 강점이 있습니다. 저자는 역사를 유기적으로, 생동감 있게 풀어나갑니다. 또, 특정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역사 속 민중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즉, 사회를 이루고, 바꿀 수 있는 주체를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민중들로 본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시콜콜한 연도를 나열한다거나, 위인전처럼 역사를 서술하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자의 탁월한 관점으로 쓰인 《가자, 아메리카로》로 함께 미국 역사를 알아본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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