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조형학부는 조형예술전공과 산업정보디자인전공으로 편재돼 있다. 각 전공의 교수는 각각 1명, 7명으로 학부생 숫자를 따져봤을 때 조형예술전공 교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필요한 수업을 생각해봐도 교수는 진작 충원됐어야 한다. 조형예술전공 학생들의 교육권은 이미 침해받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2023년이면 1명뿐인 조형예술전공 담당 교수는 정년이 되어 학교를 떠난다. 그런데 학교 당국은 신규 채용 요구에 대해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조형예술전공 학생들이 꾸린 안전졸업위원회는 사실상 통폐합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지극히 일리가 있다.
학교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록금, 교육조건은 바닥
학교 당국의 대응은 투자의 우선순위가 학생들에게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당장 등록금만 봐도 그렇다. 디자인조형학부의 등록금은 약 491만원(2019학년도 대학 등록금 일람표)으로 의대 다음으로 등록금이 높다.
등록금은 학교 내에서 2위로 높지만 교육환경은 바닥이나 다름없다. 미디어관에서 디자인조형학부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강의도 듣고 작업도 한다. 작업공간이 없어서 복도에서도 작업한다. 공간은 협소한데 환기도 제대로 안 된다. 학생들은 휘발성유인 유화 물감 냄새에 오랜 시간 노출돼 두통을 호소한다. 환기 안 되는 강의실에서 수십 명이 나무를 사포질하면 먼지와 가루가 흩날린다. 야작을 하다가 침낭에서 자는 일도 부지기수다. 고액의 등록금을 내지만 재료비도 자체부담해야 하며 이 비용은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100만 원까지 든다고 한다. 디자인조형학부가 아닌 학생들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학교는 돈을 어디다 쓰냐”며 이들의 현실에 분노했다.
조형미술전공 교수를 충원하지 않는 것은 순수예술 학문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그간 교육부와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인문학, 기초 과학, 예술 등의 학문은 축소하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실용학문들만 확대해왔다.
그러나 대학은 교육기관이지 취업양성소가 아니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의 장을 제공해야 하고 학생들은 어떤 전공이든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조형예술전공을 대하는 학교 당국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중심의 고려대”(총장 후보 공약 자료집)가 아니라 ‘교육의 가치를 죽여가는 학생 OUT 고려대’인 듯 하다.
돈 쌓아두지 말고 신규채용에 투자하라
학교는 우리에게 돈을 쓰는 것은 아까워 하지만 쓸 데 없는 돈은 잘 쓴다. 2012년에는 재단이 등록금을 쌓아 만든 적립금을 주식 투자에 썼다가 250억 원을 날린 일이 있었고, 올해도 황금열쇠로 표현되는 회계비리가 폭로됐다. 22개의 비리 중에는 등록금 부적정 운용 10억 원도 적발돼 학생들의 분노를 샀다. 학교는 항상 교육권,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면 “돈이 없다”고 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다시금 들통 났던 것이다. 이런 짓을 하고도 누적적립금은 4000억 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이런 마당에 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2020학년도 등록금 인상을 예고했다. 정말 어이가 없다. 고려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적립금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쌓이는 동안 학생들은 대규모의 강의 수 삭감을 겪었고 자치공간을 잃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실험실습을 했다. 시간강사들은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이 외에도 무수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군비증강 등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고 교육재정을 확대하면 되고, 대학은 적립금을 활용해 학생과 노동자에게 투자하면 된다. 조형예술전공 교수 채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고려대는 조형예술전공 교수들을 충원할 능력이 있지만 수수방관 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처럼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대학에서 사람중심을 기대할 수 없다.
디자인조형학부가 겪고 있는 일은 어느 학과나 경험할 수 있다. 이들에게 연대를 보내자. 그리고 정진택 총장은 총장 후보 공약집 – 디자인조형학부 발전 계획에서 “신임교원 충원”을 약속한 바 있다. 약속을 지킬 때다. 조형예술전공 교수들을 충원하라.
2019. 12. 23.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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