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쉬 걸〉
최근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진전이 있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와 적대감이 곳곳에 존재한다. 심지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트랜스젠더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성별 정체성이 무엇인지, 단지 ‘느낌’에 불과한 것이거나 기분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성별 전환을 해도 트랜스 여성은 남성이고 트랜스 남성은 여성인 것인지 등 트랜스젠더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영화가 이해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영화는 1882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릴리 엘베의 실제 삶을 재구성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릴리 엘베는 에이나르 베게너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태어나 아내 게르다와 함께 화가로 활동했다. 초상화 화가였던 게르다는, 어느 날 모델이 오지 않자 그 대역을 남편 에이나르에게 부탁한다.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은 에이나르는 그 경험을 즐기며 이후 계속 게르다의 모델이 된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에이나르의 사촌 릴리로 소개되고, 성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점차 스스로 여성이라고 여기는 남편에게 게르다는 여성 옷을 그만 입으라고 하지만, 에이나르는 이렇게 말한다. “뭘 입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난 꿈속에서 릴리가 되거든.”
릴리는 공공장소에서 놀림을 받고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고 급기야 폭행까지 당한다. 많은 의사들은 릴리를 정신병 환자 취급하고, 정신병원에 가두려 하기도 한다. 릴리와 게르다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전환 수술을 해주겠다는 의사를 만난다. 수술이 건강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말에 게르다는 걱정하지만 릴리는 수술을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긴다.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릴리의 첫 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선구적인 성과학자이자 독일 사회민주당 당원이었던 마그누스 히르슈펠트였다.
영화는 릴리를 쓸쓸하고 고독하게 그리지만, 실제로 그녀는 성소수자에 관대했던 파리 보헤미안 공동체에 속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의 다이어리와 편지를 묶은 책이 《여자가 된 남자》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덴마크 국왕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아 둘의 결혼을 무효로 선언했지만, 릴리는 바뀐 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아 여권을 발급받는다. 릴리는 2년에 걸쳐 5번의 수술을 받았고, 1931년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성별 전환 수술이 이제 막 태동하던 시기 트랜스젠더의 삶을 소개하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어바웃 레이〉
〈어바웃 레이〉는 트랜스젠더와 그 가족들이 현실에서 어떤 장벽에 부딪히고, 무엇 때문에 갈등하는지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트랜스젠더 해방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의 삶과 고민을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201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생일 날 촛불을 불 때마다 난 같은 소원을 빈다. ‘남자이고 싶어요’” 하는 16살 레이는 트랜지션(성별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레이는 학교에 있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피해 멀리 떨어진 가게 화장실에 가고, 자신을 ‘꼬마 신사’라고 불러주는 빵집을 찾아 간다. 동급생으로부터 “너 남자냐? 여자냐? 변태새끼야”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싸우기도 한다. 레이는 호르몬 치료 시작을 학수고대하며 운동하고, 동영상을 만들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다. 미성년자인 레이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려면 부모님의 동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싱글맘인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다”며 레이를 지지하지만 막상 서류에 서명해야 할 때가 다가오니 망설인다. 신체마저 바꾸고 난 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아들이 ‘엄마, 실수였어요’”라고 얘기할 까 봐 두려운 것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평생을 싸워 온 레즈비언 할머니 부부 역시 어차피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 똑같다면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냐”고 되묻는다.
과거에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찾아 가서 서명을 받는 일도 난관에 부딪힌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망설이고 되물어볼 때 레이는 이 일이 “자신을 찾는 일” 이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 소원인 16살 레이의 소박한 꿈. 이 땅의 트랜스젠더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화는 현실에서 겪는 평범한 트랜스젠더의 고통을 절반 정도만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실제로는 가족에게 거절당하고 내쳐지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법적 성별 정정 요건도 트랜스젠더를 괴롭힌다.
〈어바웃 레이〉는 트랜스젠더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1시간 30분을 투자해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