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토요일, 런던에선 보수당 정부가 국민보건서비스(NHS) 예산을 삭감하고 NHS를 민영화 하려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전국적 집회가 열렸다. 현재 내가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데본주(州)의 도시인 엑서터에서도 집회가 열렸고,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약 400여 명이나 집회에 참가했다. 현지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에 따르면 급하게 조직된 것에 비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병원을 구하자(SOHS)’라는 단체가 주관한 이 집회는 그간 영국 ‘복지 국가’의 대명사였던 NHS가 몇 년에 걸친 민영화와 예산 삭감으로 인해 ‘겨울 위기’(병상 1만 5000여 개 삭감, 직원 복지 삭감, 형편 없는 응급 서비스)를 겪자 이를 반격하기 위해 조직됐다.
내가 있는 데본주의 경우 큰 공립병원이 세 개 있는데, 현재 그 중 북부에 있는 병원을 닫으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 병원을 닫으면 북부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차를 한 시간 가량 타야만 남부 병원의 응급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공립 병원의 폐쇄는 시민들 당장의 생사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또한 SOHS에 의하면, 2020년까지 데본 주의 의료 시설 예산은 5억 5000여만 파운드[한화 8500억 원가량] 삭감될 예정이며 현재까지 병상의 약 70퍼센트가 없어졌고 수술은 취소되거나 늦춰지고 있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이런 현실에 크게 분노하며 “NHS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의 것이다!”, “그들은 삭감(cutback)을 말하지만 우리는 반격(fight back)을 말한다”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NHS 재국유화와 보수당 퇴진을 요구했다.
교사강사노조(NEU)에서 온 한 참가자는 다음과 같이 발언해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 또한 신자유주의화 하고 있다. 학교와 병원 모두 우리의 것이므로 우리가 지켜야 한다. 보수당이 진정 복지 국가를 지키고 싶다면 퇴진해야만 한다.”
이 날 집회의 드레스코드는 빨간색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 병원의 CEO가 “삭감에 레드라인(한계선)은 없다”며 모든 곳에 위협을 가할 것임을 공공연히 밝힌 것에 저항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발언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우리가 바로 그 레드라인이다’라는 의미로 다같이 빨간 줄을 들고 엑서터 시내를 행진했다.
집회에서 폭로되는 NHS의 위기를 들으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향점처럼 여겨진 복지국가 영국조차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선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꼈다. 그 어떤 미사어구로 포장한들, 국가의 본성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데 결코 있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선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자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좌파 개혁적인 제러미 코빈[노동당 대표]이 당선되면 모든 것이 정상화 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하지만 남한에서 많은 기대를 얻고 당선된 문재인이 아직 적폐 청산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듯이, 개혁적 인물의 집권만을 기대하고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지배계급에 압박을 가할 수 없다. 이렇게 직접 행동해야만 정부에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가 비교적 적다는 엑서터에서 꽤 많은 시민들의 활력 있는 집회를 경험해 볼 수 있어 매우 뜻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