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소재한 EBS 본사 앞에서 ‘까칠남녀’의 은하선 씨 하차 통보 철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앞서 우익들이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자 EBS 측은 ‘까칠남녀’ 고정패널이자 양성애자임을 밝힌 은하선 씨를 1월 13일 일방적으로 하차시켰다. 어이없게도 EBS측은 이 하차 결정이 “성소수자 탄압이나 정치적 탄압이” 아니고, 은하선 씨의 “결격사유가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1월 17일에 밝혔다. 이런 변명은 악의적이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우파들은 곧 있을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를 염두에 두고 곳곳에서 우파를 결집시키기 위해 성소수자를 마녀사냥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한 위례별초 최현희 교사에 대한 공격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다. “은하선 작가에 대한 일방적 하차 통보 사태는 서울의 한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혐오 세력의 공격과 본질이 같다”는 지적은 옳다.(1월 17일 자 전교조 논평)
그런 점에서 우익들의 방해를 뚫고 오늘 기자회견을 당차게 진행한 것은 중요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여성, 성소수자, 노동, 언론, 교육 단체 회원 등 50명 가까이 참가했는데 이른 오전부터 먼 곳에서 일산까지 달려온 참가자들도 많았다.
우익들은 EBS 본사 주변에 집회 신고를 모두 내놓고, 동성애 혐오적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큰 소리로 대항 구호를 외치며 방해 시도를 물리쳤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까칠남녀’ 방송은 심야에 했지만 여성 청소년, 소수자 청소년이 이 방송을 많이 봤고, 이들은 방송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생생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을 얻었습니다. 또한 교사들에겐 교실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겼던 소수자들을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전교조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 성별에 관계 없이 교육 받을 수 있게끔 투쟁하겠습니다.”
이어서 발언한 초등성평등연구회의 한 교사는 우익들이 마치 모든 학부모를 대변하는 것인양 주장하는 것을 반박했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교사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학부모들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반 동성애 단체와 뜻을 같이하는 학부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 혐오적 표현을 쓰지 말자고 자정작용을 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공존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언론은 이런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교사들이 핍박 받고 있는 것처럼만 묘사하지 말아주십시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도 성소수자 혐오에 굴복한 EBS를 규탄했다.
연지현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부의장은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간’] 영상이 내려졌던 저희 큐브 활동가 강동희 씨의 사건”을 상기시키며 이번 하차 사태가 성소수자들을 향한 여러 공격의 일환임을 지적하며 “우리에겐 성소수자를 다루는 더 많은 방송들이 필요합니다” 하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언론 단체들도 주최단체에 이름을 올렸다. 은하선 씨 하차 압력이 ‘까칠남녀’ 일선 제작진이 아닌 ‘윗선’에서 나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것이 제작 자율성과도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EBS측은 하차 이유로 출연자 개인의 자질문제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성소수자 배제라는 구시대의 방송 블랙리스트의 부활이라고 규정해야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은하선 씨 하차가] 촛불 이후 새롭게 EBS 사장이 바뀌고 나서 시작됐다는 점도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멈춰버리면 우리가 외쳐온 ‘공영방송 정상화’ 외침도 멈춰버린다고 생각합니다. EBS 장해랑 사장이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합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오는 25일까지 EBS가 은하선 씨 하차를 철회하라는 항의 민원을 제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은하선 씨 하차에 대한 분노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항의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EBS는 당장 은하선 씨 하차를 철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