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서남대학교 폐교와 서남학원 해산 행정예고가 발표되고, 12월 13일 최종 폐교 명령이 내려졌다. 지난 5년간 진행된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2차례 E등급을 받고 의대인증평가에서 불인증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 폐교 명령을 내렸다고 하지만 이 결정으로 학교를 갉아먹은 비리재단 측은 재산을 챙겨 가게 된 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교직원 등 죄 없는 구성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비리재단
서남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전 재단 이사장 이홍하는 “육영사업에 뜻을 두고 지역의 영재를 키우기 위해 나랏돈 들이지 않고 여러 학교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자다. 이홍하는 교비를 횡령해 광주예술대학교(폐교), 한려대학교, 광양보건전문대학, 신경대학교 등을 설립했다. 또 이 학교들의 교비를 이용해 자신과 가족의 주머니를 채웠다. 이미 교비횡령으로 3차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지난 5년간 횡령액만 1004억 원에 이른다. 그전부터 따지면 천문학적 금액이 이홍하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
학교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횡령액과 별개로 지난 1년 반 동안 체불임금 170억 원가량이 쌓였다. 그래서 교직원의 가족들이 돈벌이에 뛰어들고, 교수 중 일부는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서남대 구성원들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E등급을 받고 교육부 특별 감사, 구조조정안을 모두 수용한 결과 문제가 커졌다고 말한다.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잣대는 지방 영세 사립대학들에 불리했다. 교육부의 조처를 수용했음에도 재학 인원이 줄고 교직원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체불임금은 없었고 학생 3400여 명이 재학했지만 지금은 휴학생 포함 2000여 명이 다니고 있다.
더욱 황당한 건 서남대가 폐교되더라도 잔여재산은 다시 비리 재단으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이홍하는 구속되기 직전, 서남대 폐교 시 신경학원 또는 서호학원에 잔여재산(추정 800~1000억 원)이 귀속되도록 정관을 수정했다. 신경학원과 서호학원 모두 이홍하가 설립한 것이고 현재 신경학원은 이홍하의 딸 이서진이 운영하고 있다. 만약 이대로 폐교되면 비리 주범의 주머니로 잔여재산이 돌아가는 셈이다.
서남대를 인수하겠다는 곳들도 있었지만 교육부는 번번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비리 재단이 재산을 챙겨 가는 방식으로 폐교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교육부와 서남대 재단 사이의 유착도 의심되고 있다. 실제 서남대한테 뇌물을 받고 감사정보를 넘긴 교육부 관계자가 구속된 전력도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던 중 지난 20일, 폐교 후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른바 ‘비리재단 먹튀방지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유한국당은 “잔여 재산은 법인 소유”라며 대학을 사유재산 취급하며 ‘위헌’ 운운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라던 대통령?
폐교 명령 이후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특별 편입학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서남대는 남원시에 있는 유일한 대학이라 편입학을 하게 되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한다.
대학원생들의 경우 편입학은 더욱 어렵다. 타 대학원 교수 입장에서도 갑자기 받은 학생의 논문지도를 맡기엔 한계가 있다. 대학원 수료생들은 편입학 대상은 아니지만 논문 작성을 하려면 타 대학에서 추가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한다.
과거 명신대, 벽성대 등 폐교대학 학생의 편입학 비율은 44퍼센트에 그쳤다(2014년 김태원 의원 발표 국정감사 자료집). 유사 학과에 편입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학사제도에 적응하며 시간과 돈을 다시 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폐교된 대학 출신이라는 낙인이 학생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학생들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남대 학생 조희원 씨는 ‘사람이 먼저’라던 대통령이 이럴 수 있나 의아하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폐교했을까요?” 하고 반문했다. 서남대가 대학구조개혁평가의 결과로 폐교 결정이 내려진 데 반대하며 항의한 학생들을 향해 쏟아지는 차별은 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줬다. “학생 수가 적더라도 남원시에 존재하는 유일한 대학이다. 서남대가 폐교되면 [구성원들은] 학교, 직장을 잃는다.”
처음 폐교 명령이 떨어졌을 때, 학생들은 막막함에 제대로 된 근거라도 듣고자 교육부 앞으로 수차례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영양가 없는 면담이 겨우 세 번 진행된 후 교육부는 자신들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업무 진행 방해’라며 면담을 거부했다.
교직원들도 항의 행동에 나섰다. 12월 11일부터 교직원 200여 명은 항의성 집단 사표를 내고 청와대 앞 무기한 항의 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은 묵묵부답이다. 이들의 말처럼 “200명이 아니라 가족 1000명의 삶이 흔들리고 있는데 국가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만난 최승훈 교수(공대 생명화학공학과)는 “교육부가 어떠한 지원도 없이 평가만 하다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는 대학’이라며 폐교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무분별하게 대학 설립 인가를 많이 받았던 지난 과거”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며 폐교 명령 철회하고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서남대 교수협의회는 ‘이대로 길에 나앉을 수 없다’며 청와대 앞 시위를 이어 갈 예정이다. 남원시에서도 시민들이 함께 ‘서남대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돼 폐교명령 취소,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오는 29일에는 폐교명령 행정가처분 첫 심리도 열린다.
이들의 말처럼 평가를 통해 대학 서열화를 심화시키고 어려움을 겪는 대학을 일방적으로 폐교하는 건 제대로 된 교육의 방향이 아니다. 어느 대학을 다니든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정부는 비리 재단 재산을 몰수해서 분명하게 처벌하고, 그 대학 구성원들은 피해를 받지 않도록 국공립화해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