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 추모회
강추위 속에서도 트랜스젠더 차별 반대의 촛불을 밝히다
11월 18일, 홍대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것이다. 이날 추모회는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와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했다. 영하의 날씨에 70여 명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11월 20일)은 혐오 범죄로 목숨을 잃은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다. 흑인 트랜스 여성 리타 헤스터가 살해 당한 지 1년이 된 1999년부터 매년 11월 20일 희생자들을 국제적으로 기리고 있다.
성소수자 권리가 상대적으로 나은 서구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은 이처럼 혐오(범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차별의 실상조차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다.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서는 운동이 없다면 이런 비극이 제대로 부각되지도 않고, 혐오 범죄에 대한 통계조차도 국가가 추계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모의 날 행사는 뜻 깊었다. 혐오범죄의 피해자인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항에 함께 나설 것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각보’의 민성 활동가도 “비단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것에 머무르지 말자”며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서 연대하고 투쟁해야 함을 강조했다.
다른 활동가들도 트랜스젠더들이 혐오에서 더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많은 부분이 개혁돼야 하고 그를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추모회에선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었다. 일부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심지어는 트랜스젠더가 성별 이분법을 고착화시킨다면서 트랜스젠더를 적대까지 한다.
민성 활동가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상에서 유명인의 트랜스혐오 발언으로 인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는 여자가 아니라는 말, 트랜스젠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가면서 벽장문을 걸어 닫고 눈물을 흘러야 했다.” 이어서 그런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약자를 억압하고서도 페미니스트라는 명예를 쓸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무지개예수’와 ‘감리교 퀴어함께’에서 활동하는 김신애 목사는 트랜스젠더들이 낙인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면서 “요새 SNS 등지에서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의 권리는 무관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페미니스트로서 부끄러운 일이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발언자들의 주장은 중요한 진실을 전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여성차별에 맞선 저항들은 서로 대립하기는커녕, 동일한 근원의 억압에 맞서고 있다. [관련 기사: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는 대립되는가?‘]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남성과 여성이 가정과 일터에서 각각 어때야 한다는 성 역할을 강요한다. 이는 대다수 여성과 남성을 속박하고, 성 역할에 순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린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그 뿌리에 함께 도전해야 한다. 각자의 몸에 대한 자율성을 쟁취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이어서 ‘여행자’의 도균 운영위원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보통 활동가도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을 폭로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이 성 전환에 필요한 의료적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고,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일상적인 억압과 통제를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도록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이어졌다.
주민등록번호 성별 기입 폐지, 성별 정정 요건 완화, 성전환 의료 보장 등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구체적 문제들이 즉각 해결돼야 한다. 이런 요구들을 놓고 투쟁할,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서는 운동이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올해로 두 번째 열리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가 그런 계기로 자리잡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