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퀴어퍼레이드
5만 명이 차별 철폐에 “나중은 없다”고 외치다
7월 15일 성소수자들의 “명절” 퀴어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열렸다. 시청 광장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무지개가 넘실댔다. 주최측에 따르면 약 5만 명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 참가자를 기록했던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이다.
행사 도중에 비가 쏟아졌지만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고 축제를 즐겼다.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행사를 즐기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부스 행사가 시작되는 오전 11시부터 시청 광장이 붐빌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해방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최대한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참가자들의 압도 다수는 20~30대였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함께 온 사람들, 연인과 손 잡고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드물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가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의 성소수자 모임들이 총출동했다. 성소수자 모임들뿐 아니라 다양한 단체들이 참가했다. 정의당·노동당·녹색당·민중연합당 등 여러 진보정당들과 노동자연대·사회변혁노동자당·알바노조·전국학생행진 등 진보·좌파 단체들, 한국여성민우회·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이 참가했다.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진보적 기독교인들도 대열을 이뤘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도 공식 부스를 차렸고 공무원노조·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도 깃발을 띄우는 등 노동조합의 참여도 있었다.
올해 큐브(QUV,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는 대학 총학생회들에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요청에 여러 총학생회들이 호응해 학생회 깃발이 많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진보·좌파 단체들과 대학생들의 조직적 참가가 지난해보다 늘었다.
지난해 요란하게 맞불 집회를 벌였던 기독교 우익들은 올해는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다. 앰프만 컸지 동원규모는 줄었다. 퀴어퍼레이드의 큰 규모와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우호적 태도에 압도돼 기를 펴기 힘들어 보였다. 박근혜 정권이 중도 퇴진하면서 우익이 위축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무대와 부스에 잘 집중할 수 있었다.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사회적으로 성소수자 혐오·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줬다.
본무대에서 발언한 이정미 정의당 신임 당대표의 발언은 성소수자들에게 큰 힘을 줬다. 현직 당대표가 퀴어퍼레이드에서 발언한 것은 이정미 대표가 최초이다. 이정미 대표는 A대위가 구속됐을 때 자신이 국회의원들의 탄원서를 조직했고, 동참하려는 의원들이 별로 없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10명의 의원을 모아 군형법 92조의6 폐지 법안을 발의했음을 알렸다.
이정미 대표는 “진정 혐오스러운 것은 성소수자 청년과 청소년들이 일반인들의 자살률의 5배가 넘는 것, 방문 바깥을 나가는 순간부터 온갖 폭력과 위험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속시원하게 발언했다. 또한 “군형법 92조의6을 반드시 개정하는 당대표가 되겠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제도를 인정하는 동반자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아시아에서 대만 다음으로 동성혼을 실행하는 국가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발언했다. 참가자들은 이정미 대표의 이름을 연호하며 큰 환호를 보냈다.
성소수자 학생회장들의 발언도 큰 박수를 받았다.
무지개 퍼레이드
4시부터 시작된 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주말 오후 을지로, 종로, 명동 거리가 무지개빛으로 가득 했다.
행진이 시작되자 몇몇 우익 기독교인들이 행진 시작점에 와서 혐오 발언을 쏟아냈는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이들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성소수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순간이었다. 성소수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번 퀴어퍼레이드 행진은 11년 만에 종로로 진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행진 차량 아홉 곳 중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차량에 함께 한 대열이 가장 컸다. 진보정당, 좌파단체, 노동조합 등의 조직 대열이 이 대열에 함께했다.
이 대열은 “동성애 처벌법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성교육 표준안 폐지”, “에이즈 낙인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친 유일한 대열이기도 했다. 성소수자 권리 향상을 위한 요구가 담긴 팻말을 든 것도 다른 대열과는 구별되는 점이었다. 노동자연대 회원 1백여 명도 “문재인은 육군 참모총장 장준규 해임하라”, “성소수자 차별∙혐오 중단하라”라고 적힌 배너와 다양한 팻말을 들고 이 대열에서 행진하고 구호를 외쳤다.(여러 노동조합에 속한 조직 노동자 회원들도 다수 참가했다.) 행성인 회원들이 든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팻말도 눈에 띄었다.
군인권센터가 이끄는 차량 대열도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해임하라”, “성소수자 군인 색출 중단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당당하게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행진을 마쳤다. 다시 시청 광장으로 돌아온 참가자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적지 않은 참가자들은 이런 해방감을 오늘 하루 흠뻑 만끽한 뒤, 내일부터 다시 지긋지긋한 차별 일상 속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얻은 자긍심이 남은 364일 동안에도 차별과 혐오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란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 함께 싸우자.
부스 행사들
올해도 행사장엔 1백 개가 넘는 다양한 부스들이 차려졌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와 자긍심을 보여 주는 굿즈(물품)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1]BDS는 Boycott(불매)·Divestment(투자중단)·Sanctions(제재)의 약자이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사지 말고 이스라엘에 투자하지 말고 국제적인 제재를 가하자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