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동성애자 강제 수용소
푸틴의 제국주의적 억압이 만든 산물
양효영 | <노동자 연대> 208호 | 2017-05-16러시아의 체첸 억압을 비판해 온 것으로 유명한 러시아 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 연방의 체첸 정부가 게이들을 잡아서 감금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체첸에선 올해 초 1백 명 이상이 게이라는 이유로 비밀 강제 수용소에서 고문당하고, 심지어 세 명이 살해당했다. 한 명은 고문으로, 두 명은 가족에 의해 ‘명예 살인’을 당했다.
방송 리포터나 웨이터로 일하던 사람들이 체첸 거리에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자, 러시아 인권 운동가들 사이에선 체첸 정부가 ‘게이 사냥’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체첸 정부는 동성애자들의 온라인 채팅방에 ‘함정’을 파서 게이들을 납치했다. ‘아담’이라는 가명의 게이가 〈가디언〉에 강제 수용소의 실상을 폭로했다. “그들은 우리를 새벽 5시에 깨워서 새벽 1시에야 자게 했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우리를 구타했다. 그들은 우리를 짐승이라고 불렀고, 우리가 여기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첸의 동성애자 억압은 러시아 지배자 푸틴이 체첸을 억압하는 것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출처 Darren Johnson(플리커)
사건이 폭로되자 체첸 정부 수장인 람잔 카디로프는, 동성애자를 “체첸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성애자 탄압을 부정했지만, 그의 끔찍한 답변은 수용소의 존재를 더욱 확신하게 만든다. ‘러시아 LGBT 네트워크’라는 인권 단체는 자신들이 박해받는 체첸 게이 남성들 42명의 피난을 도왔다고 밝혔다. 한 언론은, 올해 3월 초 러시아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가 체첸에서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을 개최하도록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자 체첸 정부가 이를 “예방”하겠다며 ‘게이 사냥’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체첸 소식이 알려지자, 러시아 국내외에서 항의가 벌어졌다. 모스크바에선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체첸 동성애자 강제 수용소를 수사하라는 청원서 2백만 개를 전달하려다가 연행됐다. 영국과 미국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푸틴 정부는 처음 사건이 폭로된 뒤로 한 달 동안 체첸 정부를 두둔했지만 비난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체첸에서 벌어진 끔찍한 동성애자 탄압이 체첸이 이슬람권 나라인 것과 관련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푸틴이 러시아 전역에서 부추겨 온 동성애 혐오가 이번 사건의 진정한 배경이다.
러시아의 지역 패권을 수복하려고 애쓰는 푸틴은 동성애 혐오를 부추겨 왔다.
푸틴은 성소수자들과 여성의 권리를 “서구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고 낙인 찍으며 반동적인 러시아 정교회와 유착해 ‘전통’과 가족 가치를 부추겨 왔다.
특히 푸틴은 사악하게도 소아성애와 동성애를 연결시켜서 혐오를 부추겼다. 동성애자 권리 보장이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013년 푸틴 정부는 “미성년자에 대한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말하거나 동성애 관계를 긍정적으로 언급만 해도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푸틴은 다른 나라의 성소수자 커플이 러시아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금지하는 법도 통과시켰다 2012년 모스크바 시 법원은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을 향후 1백 년간 금지했다. 모스크바 시장은 자긍심 행진이 “악마 같다”고 비난했다.
푸틴이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사회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2011년 말 크게 일어난 반푸틴·반부패 시위가 2012년에 잦아들어지자, 푸틴은 동성애 혐오 선동을 강화하며 표현의 자유 자체도 억압했다.
푸틴 정부가 부추긴 공공연한 차별 속에서 동성애 혐오 범죄는 증가했다. 옛 소련 영토를 되찾자는 국수주의에 찌든 네오나치들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폭행하는 ‘아큐파이 페도필리아’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납치한 뒤 폭행하며 오줌을 뿌리고, 피해자들을 더욱 모욕하기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체첸 정부 수장인 람잔 카디로프는 권력 유지를 위해 푸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는 “푸틴의 투견”이라고 불리며 체첸에서 러시아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앞잡이 노릇을 한다. 체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비극인지 알 것이다.
체첸 민중은 차르 체제 러시아의 식민 지배부터 스탈린 체제의 억압까지 2백여 년가량 이어진 러시아 억압에 저항해 왔다. 체첸이 잠시나마 해방된 순간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와 1991년 소련 붕괴 직후였다(콜린 윌슨, ‘1917년 후 러시아의 성 혁명’, <레프트21> 33호 참고).
그러나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 지배자들은 1994년과 1999년 두 차례 체첸을 침공했다. 람잔 카디로프의 아버지 아흐마트 카디로프는 1999년 푸틴이 체첸을 재침공해 체첸인 수만 명을 학살했을 때, 저항군을 배신하고 푸틴의 앞잡이가 된 공로로 체첸 수장이 됐다.
람잔 카디로프는 두 번의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체첸에서 권력을 유지하려고 저항군들을 잔인하게 짓밟았으며 반대파 인사들을 납치하고 암살해 왔다. 오늘날 동성애자 강제 수용소까지 두는 현실은 이렇듯 체첸에 만연한 사회적 억압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영국과 독일 같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자들도 체첸의 동성애자 탄압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은 푸틴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1999년 체첸을 공습했을 때 이를 눈감아 줬던 자들이다. 또한 어느 누구도 체첸의 동성애자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히지 않았다.
체첸의 동성애 혐오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혐오가 뿌리 내리는 토양을 만든 제국주의도 함께 비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