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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청년학생 기고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의 의의와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연대> 온라인 기사 링크 : http://wspaper.org/article/17152]
박한솔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 규명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간 투쟁의 성과로 중요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도 있다.

‘왜 침몰했고,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하는 핵심 물음은 충분히 풀리지 않았다. 선원들 재판을 통해서도 직접적인 침몰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를 낱낱이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 책임자와 해경 고위 간부들은 모두 처벌을 빠져 나갔다. 현장에 출동한 소형 경비정 정장 한 명만 처벌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의혹이 남았다 해서 밝혀진 게 없다거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사의 여러 원인들을 관통하는 문제가 이윤 경쟁 체제, 즉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임을 드러난 사실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떠다니는 ‘폭탄’이었다. 청해진해운은 그동안 독점해 온 인천-제주 항로에 경쟁업체가 들어오려 하자 2010년 일본에서 18년간 쓴 낡은 배를 구입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선박 사용연령 제한 규제를 완화했기에 가능했다. 또 청해진해운은 위험한 증축과 화물 과적을 일삼았다. 이 탓에 애초에 부실했던 배의 복원력이 크게 나빠졌다.

해경이 얼마나 끔찍하게 무능한지는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구조 체계가 보여 준다. 2012년 정부는 수난구호법 개정에 따라 구조업무를 민영화했다. 그래서 해경은 바다에서 생긴 조난사고 구조가 가장 중요한 업무임에도, 관련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 장비와 예산이 없으니 해경 대원들은 구조를 위한 훈련도 받지 못했다.

수난구호법 개정 당시 해경 차장은 “(안전)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민간업체에 구조 업무를 넘겨 예산을 절감했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기업과 정부는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사고 때문에 비용을 들이는 것을 ‘낭비’라고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국가의 우선순위는 기업 이윤에 있지, 평범한 다수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

준비가 안 돼 있으니 구조를 위한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참사 당시 해경이 “나중에 책임질 일이 두려워”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해경은 골든타임 동안 청와대에 보고하느라 바빴다. 청와대는 골든타임이 끝나가는 내내 보고를 요구하며 구조를 방해했다. 그들도 목숨을 살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 ‘골든타임’을 죽음의 시간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운동의 전망

자본 축적 논리는 기업과 국가가 근본으로 벗어날 수 없는 객관적 한계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위상은 그 국가와 연계를 맺은 자본의 크기와 관련 있다. 그래서 국가는 자국 자본들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이윤율이 떨어지지 않게 노력한다. 국가가 자본에 의존하듯, 자본도 국가에 의존한다. 국가의 도움 없이는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왜 국가 관료와 기업주들이 각종 유착 관계(부패)에 얽혀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이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기에 부패를 합리적 ‘투자’로 본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런 자본주의적 부패가 드러났다. 과적과 무리한 출항 등은 청해진해운이 인천해경 간부 등에게 뇌물을 준 덕분에 제지를 받지 않았다. 선원 안전교육에는 투자하지 않고 접대비에만 수천만 원을 쓴 덕분이다. 2차 청문회에서는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유착관계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기록과 배경 등을 꾸준히 추적해 온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이윤 논리와 이를 원활히 흘러가도록 정부가 편 민영화와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 국가의 부패 등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 진다.

△2014년 5월 전국교사대회 ⓒ사진 이미진

따라서 세월호 진실 규명 투쟁의 의의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의 전망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참사의 슬픔을 잊지 않고 거리로 나와 진실 규명을 외치는 데에는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지금의 사회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진실 규명 투쟁을 통해 남은 의혹을 철저히 밝히고 운항과 구조, 진실 은폐에 이르기 까지 참사를 둘러싼 구체적 책임을 낱낱이 따져 국가 공인 보고서로 남겨 공개해야 한다. 이런 결론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 특히 책임자 처벌과 안전사회를 위한 각종 기업 규제 법 등을 제정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은 단지 의혹들을 푸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음모론으로 파편적 의혹 제기에만 몰두하는 것도, 구조적 진실은 거의 드러났으니 이제 안전사회 건설 캠페인이 더 중요하다는 식 모두 일면적이다.

사악한 박근혜 정부는 진실 규명을 철저히 짓밟는데 몰두해 왔다.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운동을 탄압했고, 친자본주의 언론들도 왜곡 · 진실은폐에 가세했다. 경제 위기 시대에 이윤 체제의 문제점이 국가기관의 이름으로 폭로되면 앞으로 ‘친기업·반노동’ 정책 추진의 정당성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을 것이다. 일부라도 국가 관료들이 처벌 받으면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현 정권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일치단결해 박근혜를 지지했던 지배자들이 세월호 지우기에 한 마음이었던 이유일 것이다. 박근혜는 진실 규명이 이뤄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진실 규명 투쟁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세월호 참사를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들 속에 자리매김할 때, 참사의 성격과 정권의 책임을 더 잘 연결시켜 분석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여러 사실들을 꿰어 이 참사의 본질에 접근하도록 하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본주의 비판이 박근혜 정부의 책임에 면죄부를 준다는 일각의 비판은 황당무계한 것이다.

해악적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진실 규명이 “단 한 명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고 책임질 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자기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안전 사회 건설”이 이 운동의 “최종목표”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일각의 음모론은 이러한 운동의 핵심적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음모론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는 “알 수 없는” 음모에 의해 그날 세월호를 탄 사람들에게만 닥친 비극일 뿐이다. 일각의 ‘고의침몰설’은 몇 가지 의혹을 빌미로 부분적 사실들을 취사선택해 임의로 사건을 재구성한 후 총체적 진실을 대체하려 한다. 일각의 음모론이야말로 참사를 (희생자들 처지에서는) 우연적 비극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세월호 운동의 의의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이미 확인된 실체적 진실에서도 사람들의 주의를 돌려 버린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혹 제기와 음모론은 다르다. 의혹은 사전적 의미로 ‘의심하여 수상히 여김’이다. 음모는 ‘나쁜 목적으로 몰래 흉악한 일을 꾸밈’이라는 뜻이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 저자들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는 음모론 없이도 “전체 맥락에서 봤을 때는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결국 일각의 음모론은 체제를 작동 원리를 규명해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일에서 무능함을 입증할 뿐이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구조적 이해를 통해 진실 규명 운동의 전략을 제시하고 정부를 가장 효과적으로 약화시킬 사회적 힘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는 음모론과 달리 갖는 탁월한 강점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대부분은 노동계급의 자녀이거나 노동자들이었다. 자본주의에서 안전 문제는 곧 계급의 문제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사회를 지켜낼 통제권이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손에서 이 사회의 대부분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안전은 사회 전체의 안전과 결부돼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들 — 인력 충원,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반대 — 은 사회 전체 안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다.

사회의 물자와 재원을 안전에 더 투자하게 하려면 그것들을 손에 쥐고 있는 자본가 계급의 양보를 강제해야 한다.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계급은 안전 강화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손을 놓고 체제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유의 힘과 투쟁 방식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지배계급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힘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서 발휘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참사 직후부터 전교조를 포함해 많은 노동자들이 유가족과 일체감을 느끼며 운동에 동참해 왔다.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에 노동계급이 참가하는 것도 좋고, 그 투쟁과 맞물려 함께 벌어지는 것도 좋다. 노동계급의 참여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심화시켜 투쟁의 전진을 이룰 수 있다.

지난 4월 26일, 1989년 영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힐즈버러 참사’가 “팬들은 잘못이 없다. 오히려 불법적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27년 만이다. 유가족들과 원칙 있는 좌파들이 전국을 돌며 진실 규명 투쟁을 쉬지 않고 해 온 결과다. 이처럼 진실 규명이 더딜지라도,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저들보다 “딱 1분만” 더 싸운다는 정신으로 싸운다면 가능하다. 마르크스주의의 통찰은 진실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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