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홍익대 학생)
4월 9일 오전 11시 홍익대학교에서 청년버스 출정식이 진행됐다. 청년버스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와 열 두 단체(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가 상담공간으로 개조한 대형 버스로 전국을 돌며 취업, 창업, 해외진출, 대출 관련 1대 1 상담을 하는 것이다. 이날 학생 1백20여 명이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행사에 참가한 교육부 장관 황우여는 여는 말로 “청년들의 취·창업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 교육도 취업에 맞춰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은 인문학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취업을 위한 부분을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고 말했다.
대학들이 점점 기업화하고 있는 상황인데 고등학교까지 취업을 위한 곳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학문이나 학생들의 전인적인 발달보다 기업 맞춤형 교육을 우선시하는 교육부 장관의 인식을 알 수 있었다.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눠 주는 순서가 지나고 황우여와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신용한이 학생 6명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황우여와 신용한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여러 차례 들어야 했다.
황우여는 “직장하고 대학의 교육을 딱 연결시켜야 한다”고 했고 신용한은 “학생들이 불필요한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불만이 있는데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다. 대학을 기업 입맛에 맞게 취업 양성소로 만드는 것과 학생들이 기업 맞춤형 인간이 되는 방향을 강조한 것이다.
신용한은 “내가 회사에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나만의 킬러 스킬,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 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도 너무 많은 스펙 쌓기가 버거운 학생들에게 더한층 부담을 주는 것이다. 오죽하면 취업 9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입상, 인턴, 봉사활동, 성형)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하는 신입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학생들이 겪는 고통이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는 듯했다.
현미경 나눠 쓰기?
또 “학교에 실습도구가 부족하다. 낡고 오래돼 실습을 하기 어렵다”는 학생의 토로에 황우여는 “모든 대학이 똑같은 기자재를 갖추고 있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신촌 지역만 해도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가 있는데 세 대학 모두에 현미경이 있는 것은 불필요하다. 홍익대에는 현미경, 이화여대에는 망원경, 이런 식으로 서로 좋은 기자재를 하나씩 갖추고 서로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정말이지 웃음밖에 안 나왔다. 지금 대학의 기자재는 그 대학 소속 학생에게도 부족한 상황이다. 대학 당국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기자재를 구비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홍익대는 적립금이 6천억 원이 넘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위한 투자는 미미하다. 미술대학은 학생들의 실습 공간이 부족하고, 환기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며 전임 교수가 부족하다. 다른 과도 실습도구가 낡고 대부분 고장나 있어 제대로 된 실습을 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학생에게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해도 모자랄 판에 기자재를 여러 대학이 공유해야 한다니, 현실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다.
이 날 청년버스에서 황우여와 신용한이 한 말은 한마디로 ‘청년들이 힘들어도 열정을 가지고 사회에 뛰어들라’는 것이었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들은 청년들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그래법’으로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을 늘리는 것은 학생들의 미래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정규직의 임금을 깎는 것은 정규직이 될 청년들의 임금을 결국 깎는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는 정책을 지지하는 인사들에게 무슨 학생들의 고통을 상담할 자격이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