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하순부터 극우는 대학교를 돌며 탄핵 반대(이하 반탄) 시국선언을 했다. 개강 전에 서둘러 릴레이 시국선언을 하려는 듯 3월 3일 하루 동안에만 6개 대학에서 반탄 시국선언이 열렸다.
극우 세력은 3월 1일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세를 과시하고 지지자들의 사기를 올리고 계속 싸우도록 고무했다. 대학교 반탄 시국선언에 나섰던 학생들은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랐다.
극우는 마치 대학생들 사이에서 반탄 여론이 꽤 큰 것처럼 부풀리는 효과를 내려고 한다.
특히, 그들은 윤석열 탄핵 결의 학생총회가 열린 대학들을 의도적으로 겨냥했다. 또한 분노스럽게도 극우들은 특히 학생운동의 역사와 민주 열사 기념물이 있는 곳들을 시국선언 장소로 택해 왔다. 학생총회 결의의 상징성에 흠집을 내고, 민주주의를 모욕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가 시국선언을 통해 대학교에서 초기 간부층과 조직을 만들려 하는 듯하다. 아직 대학교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극우는 학교 밖으로부터 지원을 끌어들이는 전술을 채택했다. 대학교 반탄 시국선언들을 보면 그 방식이 비슷하다. 10명도 안 되는 극우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수십 명에서 많게는 200명 정도 되는 장·노년 극우들이 이들을 엄호한다.
극우 유튜버들이 음향 설비와 재정을 수백만 원씩 후원하기도 한다.
극우 유튜버들이 반탄 시국선언 학생들과 공조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가령 이화여대에서는 극우 유튜버 안정권이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이화여대에서는 “비밀 작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실체는 먼저 2월 26일 이화여대에서 드러났다. 이화여대 탄핵 찬성(이하 찬탄) 학생들에 의해 정문까지 쫓겨났던 반탄 학생들이 기념 촬영을 하겠다며 다시 학교 안 대강당 쪽으로 이동하자, 찬탄 학생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반탄 학생들을 따라갔다. 그러자 사전에 합을 맞춘 듯한 남성 극우 폭력배들이 교정에 난입해 스크럼을 짜고 찬탄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또, 고려대 집회 현장에서 한 반탄 시국선언 학생은 극우 유튜버 안정권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오늘 연락드렸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러나 대학생 일반에서는 윤석열과 쿠데타 세력을 향한 분노가 더 광범하다. 12·3 쿠데타 직후 대학 십수 곳에서 윤석열 퇴진 학생총회 물결이 일었고, 12월 13일에는 신촌에서 대학생들이 5000명 가까이 모여 윤석열 퇴진을 요구했다. 그리고 탄핵소추를 앞두고 응원봉 물결 등 수많은 대학생들이 항의를 위해 일어섰다.
극우 학생들은 극우 시위대의 지원을 받아 폭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는 안정권과 킬문TV 등 극우 유튜버들이 집회 시작 전부터 탄핵 찬성 학생들과 졸업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장시간 대치에도 맞불 집회 참가자들이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자, 극우 유튜버들은 대형 확성기에 마이크를 갖다 대어 날카로운 하울링 소음을 일으켜 탄핵 찬성 측을 도발하기도 했다.
그런 자들이 마음껏 활개치게 놔두면 현재 소수인 극우 학생들은 자신감을 얻고 대학교에서 수월하게 조직을 구축할 것이다.
극우 본색 들춰내기
다행히도 극우는 대학에서 만만찮은 반발에 부딪혔다. 방학 중인데도 친민주주의 학생들은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자들이 대학교에서 준동하게 둬선 안 된다며 맞불 집회를 열었다.
연세대에서 시작된 맞불 집회는 지금까지 서울대·고려대·부산대·이화여대·인하대·전남대·서강대·건국대·성균관대·서울시립대·한국외대·경희대·충남대·중앙대·동아대 등지로 이어졌다.
윤석열 파면을 원하는 재학생들, 졸업생들, 학내 노동자와 교수 등 학내 구성원을 포함해 민주주의를 지키려 연대하러 온 시민·지역 주민들은 어딜 감히 극우가 교정에 발을 들이느냐며 거세게 항의 집회를 열었다.
고려대 등에서는 찬탄 학생들이 반탄 시국선언이 예고된 장소를 선점하고, 한줌의 극우 학생들을 교정 밖으로 밀어내는 통쾌한 일도 있었다. 서울시립대 등에서도 극우 학생들은 찬탄 학생들에게 막혀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반탄 학생들은 맞불 집회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떠들지만, 맞불 집회 참가 학생들은 ‘민주적 권리를 파괴하는 계엄을 옹호하는 자들은 표현의 자유 운운할 자격이 없다’며 단호히 맞섰다.
이화여대 반탄 시국선언 학생들은 애초에 시국선언을 하려던 대강당 계단에서 맞불 집회를 이겨내지 못하자, 극우 폭력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정문으로 이동하여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한국외대에서는 찬탄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무려 10시간 가까이 싸워 반탄 학생들과 극우 폭력배들이 교정으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찬탄 집회 참가자들이 극우 세력의 폭력과 욕설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자, 악랄한 극우 유튜버 안정권조차 질렸다는 듯 무의미한 소음 공격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극우 학생들은 대학을 배경 삼아 지성인인 척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유튜브로 송출해 전체 극우 세력을 고무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맞불 집회에 부딪히자 반탄 학생들은 성조기와 심지어 “빨갱이는 죽여도 돼” 하는 팻말을 흔들고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는 극우 시위대의 지원과 엄호를 불가피하게 요청했다.
맞불 집회는 반탄 학생들의 의견이 결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윤석열처럼) 그들도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극우 세력의 일부임을 드러낸 것이다.
극우에 대한 맞대응을 회피하지 않기
그런데 찬탄 진영 일부는 극우에 맞불 집회로 대응하는 것을 피하자고 한다. 예컨대, 주류 반미 자주파가 주도하는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2월 26일 반탄 시국선언이 도전받지 않고 열리도록 허용하려 했다.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비롯한 맞불 집회 참가자들이 반탄 학생들과 극우 폭력배들에 용감히 맞서고 있을 때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극우들의 반탄 시국선언이 모두 끝난 후인 오후 3시에야 윤석열 탄핵 2차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윤석열 탄핵을 염원하고 있음을 보여 줬지만, 오전의 격렬한 대립을 보고 분노한 학생들이 많이 참가한 효과이기도 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윤석열 퇴진 운동에 기여해 왔다. 12월 13일 이화여대 학생총회는 정족수 1500명을 훌쩍 넘긴 2453명이 참석해 2437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윤석열 탄핵 요구안을 가결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학생총회를 마친 뒤 이화여대 학생 800여 명을 이끌고 신촌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학생총궐기로 행진해 그날 집회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윤석열 탄핵소추 과정에서 활약한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극우 대항 맞불 집회에 함께했다면 반탄 학생들의 기를 꺾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고, 극우 폭력배들이 감히 교정에 난입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좌파들 사이에서도 대학교 맞불 집회를 소수의 무모한 충돌로 폄훼하는 주장이 적잖이 있다. 가령 대학교 맞불 집회들을 “충분한 지지나 참여 없는 충돌”(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평등으로〉 10호)로 묘사했다.
이런 주장은 기층 학생들 사이에서 맞불 행동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컸음을 애써 못 본 체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생중계와 언론 보도를 통해 맞불 시위대가 극우의 교정 진입을 막아낸 것을 보며 통쾌해 하고 안도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에서 열린 맞불 집회는 방학이었고 준비 기간이 사나흘 정도였음에도 재학생, 졸업생, 학내 노동자·교수 등이 각각 150여 명과 100여 명이 참가했다. 고려대와 한국외대에서는 1970년대 학번부터 2010년대 학번까지 동참한 지지 현수막들이 교정을 수놓았다.
서울시립대에서는 교수들과 학내 노동자들, 그리고 서울시립대 인근에 있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청량리전동승무지부에서 맞불 집회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고려대에서는 정의당 성북구위원회와 노회찬재단, 진보적 사회과학서점 ‘지식을담다’ 등 지역 진보 정당과 단체들이 지지와 후원을 했다.
맞불 집회들이 열리는 곳마다 동문과 시민들의 후원금이 쇄도했다.
물론 극우 반대 운동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야 한다. 극우를 패퇴시킬 힘은 거리 시위는 물론이고 (파업까지 포함한)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의 투쟁에 있다.
그러나 대학 내 맞불 집회들은 극우의 성장을 초장부터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수가 선제적으로 행동을 제안했고, 여기에 기층의 학생 대중이 호응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극우 반대 네트워크
게다가 대학교 맞불 집회는 앞으로 대학교에서 극우 반대 운동을 할 네트워크의 맹아가 생겨날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극우는 단지 단발성 행사로 시국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대학교에서 조직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고 새로운 간부층을 양성하려 한다. 이 점에서 극우 반대 운동의 초기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맞불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자신감과 사기가 오른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극우는 그저 일탈적 현상이고, 탄핵이 인용되면 곧 사라질 테니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좌파들이 많다. 그러나 극우의 부상은 국제적 현상이다. 설령 윤석열이 파면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극우는 계속 세력을 키우고 반동을 도모할 것이다. 극우의 존재가 단지 정부의 성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 곧 세계적이고 다중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에서 비롯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쿠데타를 저지한 일등 공신은 12월 3일 밤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나가 계엄군을 가로막은 노동자, 청년, 학생 등 평범한 대중이었다. 쿠데타를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극우를 막아낼 힘도 우리에게 있다.
극우가 더 성장하기 전에 불붙기 시작한 극우 반대 운동을 키워 가야 한다. 선거뿐 아니라 기층 항의로도 극우의 준동에 맞대응해야 한다.
출처: [증보] 캠퍼스에서 초창기부터 극우에 맞서기, <노동자 연대> 5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