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는 “Games Wide Open(모두에게 열린 경기)”라는 슬로건 하에 성평등과 다양성, 포용을 강조하고 있다. ‘최초 남녀 동수 올림픽’, ‘성소수자 선수 역대 최대’를 내세우고, 개막식에서는 여성 해방을 위해 싸운 여성들을 기렸다.
그러나 프랑스인 무슬림 여성 선수들에게는 평등, 다양성, 포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 정부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자국 여성 선수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인구의 약 10퍼센트인 600만 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고, 유럽 내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프랑스에서 말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프랑스에서 증가한 무슬림 복장 규제의 일환이다.
프랑스 정부는 2004년 공립 학교에서의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금지했고, 2011년 모든 공공장소에서 니캅과 부르카의 착용을 금지했다. 지난해에는 공립 학교에서 아라비아 반도 민족 의상인 아바야 착용도 금지했다.
프랑스 정부의 이런 기조 하에 프랑스의 스포츠 협회들도 히잡 착용을 금지한다. 지난해, 프랑스의 최고 행정 법원은 여성 축구 선수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축구협회의 규정이 문제 없다고 재확인해 줬다.
속죄양 삼기
프랑스 국가는 히잡 착용 금지가 ‘공화국의 가치’이자 정교분리 원칙(‘라이시테’)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정교분리 원칙은 1789년 프랑스 혁명기에 봉건 왕정과 가톨릭 교회에 맞서는 사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프랑스에서 ‘공화국 가치’와 ‘정교분리 원칙’은 권력자들의 지배에 도전하기는커녕, 현존하는 차별과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하는 포장으로 쓰이고 있다.
이슬람 혐오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유력한 형태의 인종차별이다. 프랑스에서 무슬림 이주민들은 고용, 교육, 주거 등에서 체계적 차별과 배제를 겪는다. 또한 ‘잠재적 테러리스트이자 공존불가능한 문화를 가진 후진적인 집단’이라는 끔찍한 편견에 시달린다.
누군가는 이슬람 혐오가 타고난 피부색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체계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고안해 낸 허구적인 편견들의 묶음이다. 여기에는 생물학적 표지뿐 아니라 종교 등 문화적 표지도 이용된다.
이슬람 혐오는 “테러와의 전쟁”을 포함한 제국주의 열강의 중동 침략과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발명됐다.
강대국 정부들은 국내에서 대중을 분열∙지배하는 데서도 이슬람 혐오를 이용했다. 신자유주의 중도파 정부들은 실업과 복지 삭감으로 고통받는 대중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무슬림과 이주민들을 속죄양 삼았다.
프랑스의 여러 좌파조차 “세속주의”를 진보적 가치로 여겨 무슬림 복장 규제를 지지하면서 이슬람혐오와 인종차별에 제대로 맞서지 않았다.
이렇듯 이슬람 혐오가 ‘정상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정치적 토양에서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RN)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달 총선에서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RN)의 정치인들은 ‘히잡 착용 금지를 모든 공공장소로 확장’, ‘국가 전략 산업에서 이주 배경을 가진 이중 국적자의 취업 금지’를 공약했다.
히잡 착용 금지가 여성 “해방”?
프랑스의 교육부 장관 가브리엘 아탈은 지난해 공립학교 내 아바야 착용을 금지하면서 “세속주의는 학교를 통해 자신을 해방할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무슬림 여성이 남성들의 강요에 의해 히잡을 착용하고 있으니 국가가 이를 금지해서 무슬림 여성을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가가 ‘무슬림 여성들에게 좋은 것을 우리가 안다’는 식으로 “계몽”시키겠다는 사고부터 오만한 인종차별적 발상이다.
물론 어떤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강요당한다. 이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심각한 서구 사회에서는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과 인종차별에 맞선 저항의 의미로 히잡을 착용한다.
프랑스에서든 이란에서든 여성이 무엇을 입을지는 여성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이슬람 혐오가 심각한 서방 국가에서 무슬림 여성이 히잡 착용을 선택할 자유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히잡 착용 금지는 무슬림 여성을 ‘해방’시키기는커녕 무슬림 여성의 삶의 기회를 제약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여자 농구 선수 디아바 코나테는 17세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2019년 월드비치게임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22살 때부터 자신의 의지로 히잡을 착용한 후에는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없었다. 프랑스농구협회가 2022년 12월부터 히잡 착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에게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정체성과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히잡 착용이 여성의 능력과 꿈, 삶에 대한 태도를 전부 규정하지도 않는다. 히잡 금지 지지자들은 히잡을 착용한 무슬림 여성은 후진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의 역할을 받아들인다고 무심코 가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9개월 동안 팔레스타인의 여성 저항 전사들을 포함해 수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적극 참가할 뿐만 아니라 운동을 이끌고 있음을 봐 왔다.
무슬림 여성은 단지 차별의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슬람 혐오를 핵심 무기로 휘두르는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프랑스 무슬림 여성들을 향한 프랑스 정부의 히잡 착용 금지 조치를 규탄한다. 여성 차별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슬림 여성을 옥죄는 프랑스 국가의 히잡 착용 금지에 반대해야 한다.
추천 자료
[기사] 무슬림·이슬람교 혐오는 인종차별이다
https://ws.or.kr/m/17336
[기사]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잘못된 방식 — 프랑스 좌파의 오류에서 배운다
https://ws.or.kr/m/29685
[기사] 여성과 이슬람
https://ws.or.kr/m/32448
계간지 <마르크스21> 18호, 세속주의, 무슬림 혐오, 마르크스주의와 종교
https://marx21.or.kr/m/314
(Source)John Molyneux, ‘Secularism, Islamophobia and the politics of religion’, Irish Marxist Review Vol 5, No 16 (2016)
https://irishmarxistreview.net/index.php/imr/article/view/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