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의 참상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 치솟는 불길과 연기, 폐허가 된 가자 북부, 수많은 시신과 부상자들, 백기를 들고 피난을 떠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언론은 또한 하마스가 가자 북부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이스라엘 측의 발표를 보도한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도를 보고 이스라엘에 분노하면서도 절망과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도에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가자에서는 여전히 격렬한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교전은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니다.
10월 7일 기습 이후 이스라엘이 처절한 응징에 나설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연히 하마스와 그 외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들은 수년간 그 공격을 준비했다.
하마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저항군은 가자 지구와 그 주변 지역에 총 연장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 터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비교하자면, 서울 지하철의 총 연장이 343킬로미터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터널 출입구 150여 곳을 공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에 따르면, 십중팔구 이는 저항 세력이 준비한 터널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자의 비교가 아주 적절한 비교는 아닐 테지만 수도권 지하철의 출구도 2800개가 넘는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은 그 노선도를 모른다.
11월 11일 하마스의 군사 기구 알카삼 여단의 군사 대변인은 팔레스타인 전사들이 지금까지 160대의 이스라엘 탱크와 장갑차 등 차량을 파괴하거나 손상시켰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자신의 대원들이 이스라엘 탱크를 상대로 초근접 매복 공격을 하는 영상들을 공개했다. 이런 공격이 가능한 것은 탱크를 호위하는 이스라엘군 보병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취약점(사실 오랫동안 지적돼 온 것이다)은 십중팔구 이스라엘군이 사망자 수 누적을 기피하는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반면,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담한 공격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수년간의 준비와 숱한 영웅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의 우위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 전략가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했듯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그래서 전쟁은 단지 병력의 규모와 무기, 군사 기술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죽음을 무릅쓰거나 피하려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 따라서 그 사람들을 움직이는 대의 명분과 정치도 중요하다.
특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에 기초해 있고 서방 제국주의의 후원과 주변 아랍국의 묵인으로 유지되고 있는 시온주의 국가인 만큼, 이스라엘에 맞선 전쟁에서는 언제나 정치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의 명분이라는 면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현재 명백한 우위에 있다. 서방과 중동 국가들 안에서 일어난 거대한 연대 시위가 이를 방증한다. 특히, 서방에서는 정부들이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배척으로 모는 데 열을 올려 왔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하마스의 공격이 일으킨 파장과 국제적 연대의 물결, 이스라엘의 만행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계속 자극할 것이다.
따라서 하마스가 일련의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하마스 궤멸’이라는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는 달성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서방의 전략가들도 이미 이를 잘 알고 우려하고 있다. 11월 7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스라엘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 10월 7일의 성공은 미래 세대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무할 것이다. ⋯ 하마스의 목표는 교착 상태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다. ⋯ 이런 전략을 추구하려면 강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끈질기기만 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당시 그 전쟁에 반대하는 거대한 국제적 시위가 일어났지만 미국은 이에 아랑곳없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
미군은 순식간에 수도 바그다드를 장악했고 그해 5월 1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2세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에서 “임무 완수,” 즉 승전을 선언했다. 이에 많은 반전 활동가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이 크게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의 승전 선언은 섣부른 것임이 드러났다. 얼마 안 가, 점령에 맞선 현지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미군은 현지 이라크인들의 끈질긴 저항에 밀려 점령을 유지하는 데 결국 실패했고, 이로 인해 중동은 이후 미국의 발목을 잡는 수렁이 됐다. 2007년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임무 완수가 임무 파탄이 됐다”고 개탄했다.
현지인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군대가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더 극명한 사례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누리지 못했는데도, 결국 20년간의 전쟁 끝에 미국과 서방의 군대를 패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혹심한 억압과 분할통치 전략에도 꺾이지 않는 저항 의지를 입증한 바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공격은 앞서 언급했듯 거대한 국제적 항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대의 명분이 자동으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스라엘에 맞선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갖고 있는 근본적 우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면한 전황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결연하게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