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보적 그리스도교 언론에 한신대 연규홍 총장에 관한 기사가 보도됐다(“연규홍 교수, 총장이 되기에는 문제가 많은 사람”, <에큐메니안>). 연규홍 총장(이하 호칭 생략)이 학생들에게 교회사 집필을 시키고, 원고료는 본인이 가로챘다는 내용이다.
대학원생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연 교수가 장학금, 생활비에 대한 암시를 몇 차례 하며 교회사 집필에 착수하도록 시켰다.” 하지만 집필 과정이 고돼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까지 했다. 결국 일을 잠시 중단하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규홍은 A씨를 냉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일을 했으면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돈을 줬을 텐데,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 돈을 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서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
결국 A씨는 대학원 과정을 포기했다. 나중에 발간된 교회사는 A씨가 번역한 120여 페이지가 극히 일부분만 수정돼 들어가 있었다. A씨의 이름은 실리지 않았다.
비슷한 일을 경험한 다른 대학원생은 이렇게 말했다. “거액의 돈이 교회사 작업에 왔다 갔다 한다는 정황을 최근에 알게 됐을 때, 왜 그렇게 교회사 작업에 집착했는지 확실히 알게 [됐어요.]”, “돈이었던 거죠.” (<에큐메니안>) 진보적이라는 학자가 학생들을 소모품 취급한 것이다.
연규홍은 ‘교수 갑질’과 관련된 위 인터뷰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사실, 연규홍이 한신대 총장에 선임된 과정도 논란과 불통의 연속이었다.
연규홍 총장 취임과 “한신대학교 발전을 위한 협약”
2017년 11월 21일 연규홍 총장 취임식이 진행됐다. 이로써 2년간 진행된 한신대 민주적 총장 선출 운동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진정한 총장 직선제라고 보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연규홍은 자신이 ‘정당한 총장’임을 내세우고자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과 협약식을 맺었다.” 실제로 총학생회와 연규홍은 취임식 직전 ‘한신대학교 발전을 위한 협약’(이하 ‘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골자는 이렇다. 4자협의회를 통한 총장 신임 평가, 학내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장 선출 방식 제도화와 학내 재정 비리 해결, 학생 복지 요구사항 실행 등. ‘4자’는 학교 당국과 교수협의회, 직원노조, 총학생회를 말한다.
일부 언론은 이렇게 기대를 나타낸다 “[‘협약’이] 한신대 개교 77년 만의 일로, 진보 성향인 한신대가 자기 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상징[이다.]”(<한겨레>).
일부 진보적 교수들도 반겼다. “학생‧교수‧이사회‧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각자 어느 정도 잘 양보해 일정한 합의점을 찾아 굉장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남구현 전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하지만 연규홍의 총장 선임은 학생들의 불만과 투쟁이 좌절된 결과였다.
4자협의회가 기존에 결정한 총장 선출 방식은 학내 구성원들이 투표를 하고, 그 결과를 교수 60: 직원 20: 학생 20의 비율로 반영해 총장 후보자 2명을 선출하고, 이사회에 상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사회는 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연규홍 총장을 선임했다. ‘협약’은 4자협의회가 결정한 총장 선출 방식을 다음 대 총장 선출부터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연규홍의 총장 선임에 반대해, 학생들은 ‘즉각 퇴진’을 주장했다. 학생 92.7퍼센트가 연규홍 총장 불신임에 투표했다(투표율 44퍼센트). 신학과 학생 33명은 자퇴서를 제출하며 이렇게 개탄했다. “죽은 한신에서 무얼 더 공부하겠습니까.”
신학과생·신학대학원생·보직교수들은 단식 농성을 벌였다. (김지혜, “한신대: 연규홍 총장 취임과 함께 학내 갈등은 마침표를 찍었는가”, <노동자 연대> 2017년 12월 3일)
‘협약’은 사실상 연규홍 즉각 퇴진이라는 요구를 포기한 결과였던 것이다.
총장 문제 관련 협약 사항이 보증됐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총장 직선제 요구를 처음 제기한 ‘한신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모임’은 ‘협약’의 일부인 총장 신임 평가 부분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4자협의회를 통해 총장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넘어 심판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되었다.”
학생 다수가 불신임하고, 33명의 학생들이 자퇴서를 내고, 학생과 교수가 10일 넘게 단식농성을 벌였는데도 연규홍은 퇴진하지 않았다.
‘총장 신임 평가’로 “감시와 통제를 넘어 심판”까지 할 수 있다는 기대는 보증되지 않은 협약 내용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협약 내용 중 학내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 총장 후보자를 선출한다는 안은 이사회 단독 선임 방식보다 진일보한 면이 있다. 하지만 실제 정관에 반영되려면 기장총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또한 최종 선임 권한은 결국 이사회에 있다. 학생·직원 투표 반영 비율이 다른 대학보다 높기는 하지만 여전히 교수 투표 반영 비율이 크다(위에서 언급했듯이 교수 60: 직원 20: 학생 20).
게다가 한신대 총장의 자격은 기장 소속 목사로 제한돼 있다.
연규홍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협약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 예컨대 채수일 전임 총장 재정 비리 의혹의 해결을 2016년 기장총회에서 이행하기로 결정한 부분이다. 이 문제에 대한 조사는 그동안 학교 당국과 이사회가 차일피일 미뤄 지지부진했다. 이번 ‘협약’으로 학생들은 비리 의혹이 제대로 조사되기를 바라고 있다.
학생 복지 문제 해결은 2017년 전체학생총회 요구안의 이행을 약속한 것이다. 당시 전체학생총회는 이런 요구들을 제출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절대평가 확대 및 상대평가 축소, 교양과목 다양화, 전임교수 충원, 학과 조교제 복원, 학생회실 보장 등.
하지만 그동안 학교 당국은 약속했던 학과 조교제 복원과 청소노동자(비정규직의 핵심인) 처우 개선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학교 당국이 스스로 약속하지는 않은 다른 문제들도 학생들의 오래된 요구 사항이었는데, 학교 측은 늘 재정 부족을 이유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한신대 당국과 재단설립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진보적인가?
이사회가 독단적으로 총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일부 교수들이 이사회에 후보 등록을 했을 때, 총학생회·총동문회·민주동문회는 이런 내용의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불법적인 총장 선출 공고에 응모한” 총장 후보자들이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신을 가르쳐야 할 한신대 신학과 교수들이라는 것에 참담[하다.] … [기장]총회에서 총장으로 인준해 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러나 기장총회에 대한 기대는 배신당했다. 연규홍 총장인준안이 가결된 것이다.(3표 차이로 아슬아슬했지만.)
운동을 이끌던 총학생회는 환멸을 토로했다. “오늘은 한신 민주주의의 사망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사실상 마비됐다.
기장총회에 대한 기대와 좌절은 지난 한신대 민주화 운동들에서 종종 발견된다. 한신대 당국과 기장총회는 “진보 대학”이라는 명성을 이용해, “한신 공동체 의식”을 촉구하며 번번이 저항을 약화시켰다. 반독재·정치적 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했었다는 신뢰를 학내 민주주의의 억압에 이용해 온 것이다.
대외 이미지와 달리 학교 당국과 기장총회는 보수적으로 학교를 운영해 왔다. 이사회가 이번 투쟁에 적극 참여한 학생 20여 명을 (폭력 행사가 없었는데도) 형사고발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중 5명은 2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다. 12월 5일 1심에서 1명은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4명은 각각 벌금 200만 원,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학교 당국은 경찰에 학생 사찰 자료를 넘기기까지 했다.
일찍이 1987년 초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인 김수행 교수와 정운영 교수를 해임한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한신대가 종합대학이 된(1980년) 후, 신학대가 아닌 일반 단과대 차별, 학내 복지 부족, 이사회 비리 문제 등으로 투쟁이 벌어졌었다. 이 투쟁 과정에서 김수행·정운영 교수가 해임됐다. 야비하게도, 두 교수가 전두환 군사독재 정부와 연계돼 있다고 넌지시 암시하는 비방도 있었다.
학교 당국은 학내 부패 문제에는 너그러웠다. 채수일 5·6대 총장은 4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몇몇 이사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후보를 자진 사퇴했다. 당시에 교수들은 대책위를 세워, 이사진 전원 사퇴, 진상조사 후 민주적 절차에 따른 총장 선임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당국과 금품 수수 혐의를 받은 이사회는 다시 총장 선임 과정을 진행했다.
당시 기장총회는 이사회가 선임한 총장을 과반으로 인준하고 이사진 3분의 1 사퇴만 요구했다.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던 채수일 교수는 이후 5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이후에도 이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채수일 총장 연임을 강행해 다시금 문제를 낳았다.
학내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도 다른 대학과 별반 차이가 없다. 법인이자 설립자인 기장총회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학연금을 8년이나(2005~2012년) 학생 등록금으로 지급했다. 그 금액이 60억 원에 달했다(경인지역 2위). 하지만 기장총회는 결국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교직원들에게 지급해 온 연금지원비를 강제 환수했다. 사실상 임금을 삭감한 것이다.
게다가 재정 악화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학내 구성원들에 고통을 떠넘기는 긴축을 강행했다.
이를 위해 학생과 교수 사이를 이간질했다. ‘교수 봉급이 너무 높아 학생에게 돌아갈 예산이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교직원 임금을 사실상 또 삭감했다.
올해 초에는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청소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청소 노동자들은 가뜩이나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로 고통받았는데, 대량 해고 탓에 노동조건이 훨씬 악화됐다.
시장 지향적 구조조정은 ‘솔선수범’했다. 학교 당국은 대학 교육을 기업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학제를 개편하고 학칙 개정을 추진했다. 상대평가제 도입, 학점포기제 폐지, 성적등급비율 제한 도입, 수업 폐강 기준 강화 등을 시행해 학생들을 학점 경쟁으로 내몰았다.
특성화 사업 선정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려고 정원 10퍼센트 감축을 강행했다. 수도권 대학 가운데 가장 큰 폭이었다. 학생들은 매년 교수 충원과 강의 증설을 요구했지만 학교 당국은 교육의 질에는 나 몰라라 하는 식이었다.
학교 당국은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피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항상 앞세웠다. 하지만 진실은 국가와 기업이 요구하는 시장 ‘경쟁력’을 받아들이고,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대학 구조조정을 긍정적으로 보며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한신대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 분석 및 실행준비위원회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우리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됐다. 이번 평가에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한신대의 명예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한신학보> 2015년 9월 22일)
구조조정 반대로 요구된 ‘총장 직선제’
위의 이유로 한신대에서는 이명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총장 직선 운동의 근본 원인도 학교 당국의 ‘모범적’ 구조조정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었다.
특히, 2015년 학교 당국이 긴축을 이유로 학과 조교제 축소와 폐지를 시도하자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 하루 전에 공지된 비상총회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고, 계획에 없던 총장실 항의 방문까지 했다.
이러한 압력에 밀려 총장과 기획처장은 그 수백 명의 학생들과 직접 대화해야 했다. 학생들은 학과 조교제 문제뿐 아니라, 학생들 동의 없이 진행된 학과통폐합 철회와 공식적이고 구속력 있는 합의 테이블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학교 당국은 오히려 학생 2명을 징계하려 했다.
학생들은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 농성과 단식으로 항의했다. 항의는 징계 대상자들이 폭력적 언행에 사과하고 학교가 징계를 철회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투쟁에 연대한 비정규직 교수를 해임했다. 총장이 재임용을 거부한 것이다. 그 비정규직 교수는 강의 평가 지표도 높은 데다 학과장과 단과대학장의 승인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2015년 10월, 채수일 전 총장의 중도 사임이 거의 확실시됐다. 임기가 1년 10개월 남았는데도 경동교회 담임목사로 가기로 한 것이다.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학생들은 채수일 총장 6년 동안 벌어진 구조조정을 그가 해결하지 않고 학교를 떠나는 것을 비판했다. 사임 전에 시행한 구조조정과 개악들을 철회하기 위해 원상복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협의회도 채수일 총장 임기 내내 벌어진 학내 민주주의 후퇴와 교육환경 악화를 비판했다. 그리고 ‘총장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 학내 구성원이 직접 아래로부터 만든 민주적 총장과 함께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한신대학교 대책협의회)
채수일은 중도사임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학생·교수의 ‘원상복구’ 요구도 무시했다.
대학 행정을 총괄하는 총장이 공석이 된 상황에서 총장 선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후임 총장이 채수일 총장 시절에 실시된 시장 지향적 구조조정 정책들을 철회해야 한다는 요구와 확고하게 결합돼야 했다. 달리 말하면, ‘총장 직선’ 요구는 구조조정 철회 및 교육 환경 개선 요구의 일부여야 했다.
채수일 총장 시절 시행된 구조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누적된 불만, 특히 2015년 벌어진 구조조정 반대 투쟁과 징계 반대 투쟁은 후임 총장 후보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총학생회운영위원회가 총장 후보자들에게 보낸 질의서를 보면 알 수 있다. 4명의 후보자 모두 학과 조교 제도 원상복구에 찬성했다. 또한 학생들과의 소통을 활성화해, 구조조정을 비민주적으로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비록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고 한 총장 후보는 없었지만 말이다.
류장현 후보가 학생 총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그는 학교 당국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단위별로 자발적·자율적 구조개편을 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대학 본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재정 확충을 통해 교수를 충원하고 학생 복지를 확대해 “학생 중심,” “교육 중심” 대학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물론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받아들이는 한 단위별 자율적 구조개편 유도는 교육의 질이 아니라 학과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 될 수도 있다. 2014년 철학과, 독어독문학과, 디지털문화콘텐츠학과, 종교문화학과를 합쳐 ‘인문 콘텐츠학부’로 만든 사례를 상기해야 한다. 당시 학교 당국은 ‘2015 학제개편안’을 비민주적으로 날치기 처리하려 했다. 이에 교수들이 반대 투표를 하고 학생들이 전체학생총회 등 항의 행동을 벌여 막아 냈다. 그러나 ‘생존’ 논리 때문에 이후 교수들은 자발적으로 학과를 통폐합했다.
그때 ‘2015 학제개편안’의 원천무효를 주장했던 교수회의는 이후 학과 통폐합 안을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후퇴를 했다. 이는 대학 구조조정에 원칙 있게 반대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에 일관되게반대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직선 총장의 진정한 실체가 은폐되는 문제도 있다. 부산대학교의 전호환 총장은 총장 직선제와 학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싸운 학생들과 항의 투신을 한 고(故) 고현철 교수의 희생 덕분에 당선된 직선 총장이었다. 그는 총장이 되기 전에 임명을 받기 위해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현 정부[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과 대학 정책 추진에 적극 동참[하겠다.]” 박근혜 정부의 대학 정책은 재정을 무기로 국공립대의 대학 운영을 시장화하는 것이었다.
물론 학생들의 염원을 가장 잘 대변하는 듯한 진보적 후보에게 비판적(그가 미덥지 않다면) 투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조차 직선 총장이 알아서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구조조정 철회, 민주적 의사결정, 교육 환경 개선, 학내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래로부터 학생들의 투쟁이 필요하다.
다음번에 다시 총장 선출을 하게 되면 총장 선거 절차 문제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총장 선거 국면으로 형성된 상황을 이용해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를 강조하고 이를 둘러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주장해야 한다.
이화여대 총장 직선은 학생들의 점거 투쟁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과 맞물리면서 쟁취한 것이었다. 정유라 부정입학에 연루된 최경희 당시 총장이 사퇴하고 김혜숙 현 총장이 새로 선출됐다. 하지만 김혜숙 총장도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후퇴시키려 했으며, 학내 구조조정도 추진하려는 듯하다.
사실, 이번에 민주적 총장 선출 투쟁을 주도한 학생들은 민주적 총장 선출 자체의 의의를 강조하며 공정한 선거 시행에 투쟁 역량을 집중했다.
‘직선 총장’이 이사회가 일방으로 선출한 총장보다 약간 나을지는 몰라도, 결국 학생들이 나서서 투쟁해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교육 서비스와 교육 환경, 주거 조건 등의 개선을 위해
‘협약’ 체결로 투쟁을 종결한 점은 조금 아쉽지만 총학생회는 선두에서 열심히 싸웠다. 특히, 신학과 학생들은 집단 자퇴서를 제출하고 무기한 단식을 벌이는 등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총장 직선제 쟁취를 핵심 과제로 여긴 것은 약점이었다.(그래서 이번 투쟁의 결과를 이럭저럭 받아들일 만한 성과로 여기게 된 듯하다.) “기장성”에 대한 환상도 그냥 선배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한신대가 종합대학인데도 신학 교수들과 종교단체(기장)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이런 비판은 김수행·정운영 교수 해직 사태가 있던 30년 전부터 이미 제기됐다. 기장총회에서는 차라리 일반대학을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대학 재정을 끌어다 신학대학원에 전용한 일이 문제가 됐다.
주요 정책은 모두 기장총회의 인준을 받아야 하고, 총장은 기장 목사만이, 이사는 기본적으로 기장 목사와 장로만이, 직원은 기독교 세례 교인만이 될 수 있다. 이런 제한이 과연 종합대학의 교육에 도움이 될까?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눈앞에 닥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 추이를 고려해 정원 감축을 골자로 하는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한다(정선영, “문재인 정부의 2주기 대학 구조조정 계획: 계급 불평등 키우는 하위 등급 대학 퇴출 문제 더 커질 것”, <노동자 연대>, 2017년 12월 7일).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학 구조조정 정책 중 반감이 큰 일부 지표를 다소 누그러뜨렸을 뿐이다.
애초 연규홍이 정원 감축을 통한 학과 구조조정을 지지해 온 만큼, 문재인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발맞춰 학사 운영을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한신대는 ‘IPP형 일·학습병행제’ 사업에 선정됐고 연규홍은 관련 학사개편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학습병행제는 교과과정 일부를 산업체 현장에서 4개월 이상 장기간에 걸쳐 이수하도록 하는 기업연계형 장기현장실습제도다. 1차는 이공·상공계열 학과 학생 대상이지만, 2차는 전체 학과로 확대된다. 선행학습이나 교과변경, 관련 신규과목 개설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이 아닌, 산업 수요에 맞춰 대학 교육을 개조하는 것이다. 현장실습은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저임금으로 학생들을 착취하는 것이 될 공산이 크다.
연규홍은 “기업과 대학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지역사회 청년 고용 활성화에 더욱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약’에서 중간 신임 평가를 받기로 돼 있지만, 시장주의적 교육 정책은 이미 시작됐다.
한신대 학생들은 시장 지향적 구조조정과 그로 말미암은 열악한 교육환경에 내몰려 왔다. 학교 당국은 정원 감축, 학과 통폐합, 상대평가제 도입, 학점포기제 폐지 등으로 교육의 질은 떨어뜨리고 학생 간의 경쟁은 강화시켰다. 등록금 인하는 긴축재정을 핑계로 매년 제자리걸음이다. 퇴직하는 교수는 늘어가지만 그만큼의 정교수는 채용되지 않고 있다. 강의 수가 모자라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들을 수업이 없어 걱정하고 있다. 수업의 질도 문제다.
기본적 권리인 복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통이 불편한데도 통학버스는 오히려 줄었고, 기숙사 부족으로 학생들은 등록금에 비싼 월세까지 부담해야 한다. 학생회실과 동아리실도 낡고 추워서 자치활동도 불편한 지경이다. 공간 자체도 부족하다.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조교·청소노동자 등도 구조조정의 피해를 보고 있다. 긴축으로 임금이 삭감되고, 노동조건과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협약’에서 일부 문제 해결을 약속받은 만큼 이행을 제대로 감시하기 위해 지속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협약’에서 언급되지 않은 문제들도 있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신대 학생들이 연규홍 아래에서도 투쟁을 재건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