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힘에는 한계가 없을까?

미국의 제국주의는 언뜻 막강해 보이지만 숱한 실패와 쇠락을 겪어 왔다 ⓒ출처 미 군

미국 제국주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 위력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인종 학살, 지난여름 이란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벌인 ‘12일 전쟁’,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납치한 사건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군사와 경제 모두에서 가장 우세한 강대국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국방비로 약 1조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데, 이는 2위부터 10위까지 나라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은 밥 딜런의 노래 가사처럼 ‘거대한 대포’와 ‘죽음의 비행기’를 가진 자신들이 전쟁의 주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전쟁은 결코 고분고분한 하인이 아니며, 트럼프가 전쟁을 갖고 벌이는 도박에는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이란은 자체 제작한 드론으로 걸프 연안국들을 타격할 역량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이미 입증해 보였으며, 현재 이란 내에는 준비된 친미 지도자도 없다.

트럼프는 신속한 승리를 바라지만, 자칫 장기전에 빠져 중동 전역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과거 미국이 거둔 군사적 승리들은 지속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10월 7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당시 전개된 ‘항구적 자유 작전’은 9·11 테러에 대응해 미국 정부가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이었다.

두 달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수도 카불 함락과 탈레반의 몰락을 자축했다. 부시는 자유와 민주주의, 여성 인권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군벌과 폭력배, 마약상들로 이뤄진 정권을 세웠다. 그 정권은 단 한 번도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2008년 11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의 한 결혼식장을 폭격해 여성들과 아이들 37명을 살해했다. 미국의 잔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탈레반은 뿔뿔이 흩어졌을 뿐 결코 패배하지 않았으며, 곧 미국의 점령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뻗은 산맥과 광활한 지형 탓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제하려면 막대한 병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점령군은 현지에서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다.

부시와 그 측근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신속히 승리를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고, 한층 더 대담해져서 2003년 이라크를 다음 표적으로 삼았다.

부시는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2002년 미국 정부는 이라크 침공 계획을 지원하라고 다른 국가들을 압박했다.

영국 노동당 총리 토니 블레어는 여기에 적극 호응했다. 거대한 세계적 반전 운동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2003년 3월 미국은 ‘충격과 공포’ 작전을 전개해 이라크 도시들에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침공하자 사담 후세인의 군대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정당화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2003년 5월 1일 부시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항공모함에서 ‘임무 완수’를 선언했다. 이 또한 거짓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어떠한 정통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정권을 세웠다. 팔루자와 바스라 등의 도시에서는 점령군에 맞서는 저항군의 군사적 저항이 계속됐다.

부시가 승리를 선언하고 1년 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수감자들에게 자행한 참혹한 가혹 행위가 폭로됐다.

점령 초기에는 시아파와 수니파 무슬림이 단결해 점령군에 맞섰다. 그래서 미국은 이간질해서 각개격파하기 전략으로 선회했다. 점령 당국은 종파적인 시아파 국가를 세웠다. 그들은 이란에 기대를 거는 시아파 지도자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점령자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 학살, 고문은 반동을 낳기도 했다. 반동적이고 종파적인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가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아이시스는 여타 테러 조직과 달랐다. 이들은 적을 공격하는 일보다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건설하는 데 집중했다.

2011년 여름,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 제국주의가 겪은 가장 큰 패배였다.

석유가 풍부한 중동 지역에서 자국의 패권을 관철시키는 데 혈안이 된 미국 정부 탓에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에서 겪은 패배의 망령은 여전히 미국 제국주의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지상군을 투입해서] 이란을 침공하기를 두려워한다.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고, 군사적 승리를 선언하는 일 또한 간단하지만,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이란과의 전쟁은 미국 내에서 트럼프에 대한 반대를 심화시킬 수 있다. 트럼프는 이미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지지율이 낮다.

미국인의 고작 4분의 1만이 이란 전쟁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전쟁은 트럼프에 대한 불만을 더 키울 수 있다.

게다가 이란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세계 해운 물류를 위협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유가는 이미 오르고 있다.

미국 경제는 AI 거품 붕괴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태다. 거기에 더해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투자가 지지부진하다.

트럼프가 벌인 관세 전쟁은 세계 무역을 혼란에 빠뜨렸고, 인플레이션을 더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금리가 오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부담을 키울 것이고, 정부의 부담도 키울 것이다. 30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연방 정부의 부채 상환 부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이미 이자를 내는 데만 해마다 1조 달러 넘는 돈을 쓰는 실정이다.

트럼프와 세계 지도자들은 모두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들은 그 경쟁 체제 안에서 자신의 몫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거나, 아니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제국들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제1차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유린당하고,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피바다를 헤치며 오물을 흘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모습이다. … 교양, 철학, 윤리, 질서, 평화, 법치라는 허울을 쓴 채 말끔하고 도덕적인 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탐욕스러운 맹수, 무법천지 악마의 연회, 문명과 인류를 갉아먹는 역병이 있을 뿐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적나라하게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늘날에는 [미국 전쟁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그 탐욕스러운 맹수이며, 트럼프가 인류를 갉아먹는 그 역병이다. 백악관이야말로 무법천지 악마의 연회장 그 자체다.

하지만 이란의 노동자들은 이전에 혁명을 일궈낸 역사가 있다. 그들은 서방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을 지옥으로 만들 명분을 늘어놓으며 끊임없이 말을 바꾸고 있다.

처음에는 핵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 정보 당국은 이란이 미국을 겨냥한 무기를 생산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게다가 트럼프 본인이 지난해 6월에 이란의 핵 시설을 이미 ‘초토화’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더니 이제는 정권 교체가 목적이라고 했다. 공격이 시작될 무렵 트럼프는 이란인들을 향해 “우리가 일을 끝내면, 당신들이 정부를 장악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란인들에게 통치자에 맞서 봉기하라고 촉구하면서도, 자기가 새로운 아야톨라를 “임명하는 데 관여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더니 트럼프 정부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3월 2일 미국 국무부 장관 마코 루비오는 이렇게 발표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행동에 나설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선제 행동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독자 타격할 준비가 돼 있었으며, 그러면 이란이 보복에 나서 미국과 동맹국들을 위협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 날 트럼프는 정반대 이야기를 늘어놨다. 자기가 이스라엘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는 견해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일각에서도 나온다. 그런 견해는 트럼프 지지층 일부의 주장과도 맞아떨어진다.

극우 논평가인 터커 칼슨과 메긴 켈리는 미군 병사들이 왜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죽어 나가야 하느냐며 비난을 쏟아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전쟁을 원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저항 운동 조직인 헤즈볼라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끊어 낼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저항 세력들이 재건돼 이스라엘을 위협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계산이다.

네타냐후는 올해 선거에서 총리직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연립정부 내 극우 강경파들의 지지가 절실한 처지다.

이스라엘 우파의 많은 수는 서안지구를 병합하고 다른 나라 영토에 더 깊숙이 침범하고 싶어 한다.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아우르는 ‘대이스라엘’을 꿈꾼다.

한때는 주변적이었던 이런 사상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점차 지지를 얻고 있다. 이는 네타냐후에게 중동을 더 장악하라는 압력이 되고 있다. 이란에서 내전이 벌어진다면 가자 인종학살 기획자들의 입지를 강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경비견이다. 건국 이래 이 테러 국가는 서방의 이익을 위협할 반란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독자적인 첨단 무기를 갖추고 있고, 미국이 직접 지원하는 무기에 대한 의존이 줄었다. 그만큼 미국이 쥐고 있는 리드줄을 더 팽팽하게 잡아당길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해마다 수십억 달러어치의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 그리고 지난해 6월 ‘12일 전쟁’ 때 이란에 사용한 거대한 ‘벙커 버스터’ 미사일처럼 이스라엘이 보유하지 않은 무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은 여전히 충돌의 주체이며, 이스라엘의 행동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도 명백하다. 실제로 ‘12일 전쟁’을 멈추라고 이스라엘을 압박한 것도 트럼프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전쟁에 나서는 까닭을 보면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의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약함을 드러내는 징후임을 알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경제적 우위를 이용해 세계은행, IMF, 나토 등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들을 설립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패권, 즉 다른 나라들을 이끌고 통제하는 능력이 계속해서 도전받고 있다. 그리고 자원과 시장을 놓고 신흥 강대국들,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경쟁은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역내 강국들 사이의 갈등은 쉽게 확대되거나 훨씬 거대한 전투를 촉발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도 일정한 구실을 한다. 트럼프 행정부 안에는 현 상황을 서방의 숙적에 맞선 ‘문명의 투쟁’으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다. 스티븐 밀러나 피트 헤그세스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인종차별, 이슬람 혐오,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해서 움직인다. 어떤 자들은 자신들만의 종말론적 환상에 빠져 있기도 하다.

한 미군 장교는 상급자로부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의 일부’라고 병사들에게 설명하라”고 지시받았다고 불평했다. 그 상급자는 “아마겟돈과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언급하며 요한계시록의 특정 구절들을 인용했다”고 한다.

미국의 무기 기업들 역시 전쟁을 반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피 묻은 이익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전쟁 야욕은 사방에서 위기에 직면한 미국 제국주의의 병증일 뿐이다.

미국 제국이 무소불위인 듯 보여도, 트럼프가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Judy Cox and Camilla Royle, ‘American power: Has it got a limit?’ (2026. 3. 6)

번역: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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