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신
청년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23살 고(故) 이선호 씨는 군 제대 후 아버지가 일하는 평택항 컨테이너 하역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중 무게 300킬로그램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그는 평택항에서 동식물 검역 일을 해 왔다. 사고 당일 그는 어떠한 안전 교육과 장비도 제공받지 못하고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는 개방형 컨테이너(FRC) 아래에서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날개를 고정하는 안전핀은 뽑혀 있었다.
고인은 대학교 복학 전 주식회사 동방의 용역 하청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동방은 자회사 일조국제훼리를 두고 FRC를 관리했다. 3월부터 사측은 비용 절감을 위해 나뉘어져 있는 업무를 통폐합시켜 노동자들이 하지도 않던 일을 하게 만들었다. 고 이선호 씨가 사망 당시 한 업무도 당일 처음 투입된 일이었다.
그런데 원청인 동방은 자신들이 지시한 일이 아니라며 한사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고인이 한 일은 동방이 통폐합한 여러 업무 중 하나였다. 게다가 원·하청이 형식적으로 구분돼 있다 할지라도 현장 업무가 원청의 지시 없이 진행될 리 만무하다.
사측은 참사 이후에도 철저히 이윤 우선적이었다. 고인의 아버지가 분노하며 말했듯 현장 책임자는 119에 신고도 하지 않고 이선호 씨가 숨져가는 모습을 윗선에 보고했다.
참사의 원인과 원인을 감추려는 시도 한 가운데 이윤 우선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기업주들은 안전은 뒷전에 둔 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싼 값에 가능한 많이 부리고, 하청 구조를 통해 책임 회피를 하려 한다.
유가족들은 ‘고(故)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이하 대책위)와 함께 원청인 동방의 책임 인정·사과·재발방지책 마련,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평택항 내 응급치료시설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정부도 책임 있다
5월 11일, 문재인은 “추락 사고나 끼임 사고와 같은 후진적인 산재 사고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며 TF 구성을 지시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대책위에 해당 사업장이 민간부두여서 개입이 어렵다고 했다. 항만 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전체 산업 평균을 한참 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해양수산부는 부실한 항만 관리·감독에 책임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감시 인력 부족 탓에 여태껏 건설·화학물질 관련 사업장을 주되게 관리해 와서 항만에 관심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부 기관 내에서 여기저기 책임 돌리기에 바쁘지만 문재인 정부는 참사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임기 내 산재 사망 사고 절반 감축’ 공약은 역시나 빈 수레였다.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882명으로, 전년 대비 3.2퍼센트 증가했다(고용노동부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1월 이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100명이 훌쩍 넘는다. 고 이선호 씨가 사망한 직후 포스코 광양 제철, 현대 제철에서도 노동자들이 참변을 당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는 참사의 배경을 유지·강화해 왔다. 고 이선호 씨의 사망 원인으로도 꼽히는 외주화, 하청 비정규직 문제, 인력 부족 사태 등은 정부의 정책 하에서 용인돼 온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야는 (선거 때 치고받지만) 규제를 완화하고, 산업재해 처벌 법안들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선 합심해 왔다. 그러니 고용노동부의 변명이 궁색하게, 아직까지도 고 김용균 씨 사망의 책임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정부는 알맹이 없이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더 난도질 하자는 재계에 호응하려 한다. 정부 여당이 하려는 TF 구성, 항만 물류 현장 점검 등이 실질적 조처로 안 여겨지는 이유다.
기업들은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고, 국가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 자본가들을 우선한다. 이와 같은 이윤 우선 논리 속에 청년들의 산재 사고와 안타까운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이윤 중심 체제의 수호자이자 수혜자인 기업과 정부에 맞선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 그럴 때 기업의 안전 규제를 강제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https://ws.or.kr/article/25592
“비용절감에 벌어진 죽음. (그곳은) 도살장이었다”
평택항에서 사망한 고 이선호 청년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을 추모하는 문화제가 5월 13일 열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가 주최한 추모 문화제에는 노동자들과 이선호 씨 또래의 청년·학생들이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고 이선호 씨 아버지 이재훈 씨는 어지러움이 심해 부축을 받으며 말을 이어갔는데, 울분이 가득했다.
“(이번 죽음에) 제 아이의 실수가 조금도 보이지 않더라. 죽었어도 바보라는 소리는 안 들어야 한다. 원청에서 비용절감 (위해) 인건비 좀 줄여보겠다고 적정인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일하러 가는 작업장이 아니고 도살장이었다.”
이재훈 씨는 그동안에도 “안전요원 부재가 사건의 본질”이라며 “이윤 욕심에 벌어진 사고”라고 비판해 왔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대표 김미숙 씨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정부와 기업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지 4개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오히려 반복되는 사망사고에 참담하다. (이선호 씨의 죽음이) 용균이의 사고와 너무 흡사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산재사고 사망,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사건을 파헤쳐 보면 대부분 인재였음이 여실히 드러남에도 국가는 아무도 책임 안 진다. 형편없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경영계는 (이마저도) 의무·책임을 축소하려 한다.”
지난 5월 12일, 이선호 씨가 일하던 하청업체의 원청사인 동방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었다.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업무 통폐합, 하청 구조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동방 측은 불법파견 소지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데, 대국민 사과 ‘시늉’으로 잠시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인 듯하다.
추모 문화제가 열린 이날 오후, 대통령 문재인은 고 이선호 씨의 빈소를 방문했다. 사회적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TF를 꾸려 현장긴급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에도 말로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안전을 위하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기업주들의 손을 들어 줬다. 일례로, 고 김용균 씨가 사망했을 때도 정부·여당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결국 책임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고, 생명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외주화 금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 당시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정부가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지 않고 하청·외주화를 유지하는 동안, 비극적 죽음도 계속돼 왔다. 문재인은 산재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약속을 저버린 지 오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누더기로 통과됐고, 지금도 정부는 재계의 눈치를 보며 그조차 더 난도질하려 한다.
따라서 이선호 씨의 비극적 죽음을 만든 것은 (원청) 사측과 정부이다. 원청 ‘동방’과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 즉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을 시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