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투쟁을 선포했다.
대학들이 퇴직자 자리를 채우지 않거나 단시간(하루 3~4시간 근무) 알바로 대체하는 것에 반대해서이다.
대학들은 “이번(2018년 초)처럼 [퇴직자 자리를] 일부만 [8시간 전일제로] 신규채용[해서] … 비용을 최대한 줄”일 계획이다.
그 규모는 연세대가 가장 크다. 퇴직하는 청소 노동자 16명의 자리 중 절반만을 신규채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채우지 않겠다고 한다. 퇴직하는 경비 노동자 16명의 자리는 한 자리도 채우지 않겠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연세대는 올해 10월부터 전체 경비 노동자들의 근무체계를 바꿔 임금을 삭감하려고도 한다.
뻔한 거짓말
원청인 대학과 하청업체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증가,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청소 노동자 10명을 모두 3시간 단시간 알바로 대체하면 2~3억 원가량 아낄 수 있다고 한다.[1]
그러나 공격을 예고한 대학들의 재정 상황을 보면, 돈이 없다는 건 입에 침도 안 바른 거짓말이다. 이 대학들이 쌓아 놓은 누적적립금은 연세대 5687억 원, 이화여대 6830억 원, 홍익대 7565억 원이나 된다. 특히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적립금은 연세대는 380억 원, 이화여대 94억 원, 홍익대 136억 원 가량 늘었다(대학 알리미). 즉, 이토록 많은 돈의 극히 일부인 10억 원만 써도 50여 명을 8시간 전일제로 충원할 수 있다.
등록금이 동결돼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역겨운 이간질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 등록금이 고공 인상될 때조차,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대학이 재정 여력 운운하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학생 등록금 동결을 주된 요인처럼 말하는 것은 늘상 활용해 온 노동자-학생 이간질일 뿐이다.
대학 당국들은 교육 여건이나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끊임없이 적립금을 쌓고, 심지어 몇몇 대학은 적립금으로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다가 수백억 원을 날리기도 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도 이롭다. 대학들은 적립금을 활용해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고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 대학은 그럴 여력이 차고도 넘친다.
비용 절감 꼼수
그럼에도 학교 당국들은 비용 절감에 혈안이다. 우선 퇴직자 자리를 충원하지 않거나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은 꼼수 인력 감축이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많이 쓰이는 수법이다. 대학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력을 줄임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상쇄하는 게 주목적인 듯하다.
노동자를 직접 해고하면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퇴직자 자리를 채우지 않는 건 직접적 공격이나 피해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어서, 노동조합이 용인하도록 압박하기가 비교적 쉽다. 호텔업계에서는 전체 직원 중 정규직 비중이 더 큰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고령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이미 힘들게 일하고 있다.
청소 노동자들은 공식 업무 시작 시간인 6시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 새벽 4∼5시부터 일한다. 그만큼 청소할 구역이 넓고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의 말마따나 “몸이 안 아플 때가 없”는 이유다. 청소 노동자들은 사실상 하루에 1~2시간씩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퇴직자 자리에 들어오는 알바는 하루 3~4시간만 일한다. 명절 상여금이나 식대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더 열악한 노동자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 것은 청소 노동자 전체의 조건이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래서 올해 초 투쟁 뒤에도 여러 조합원들이 걱정을 했다. 협상 결과로 단시간 알바의 투입을 일부 허용했는데, 이렇게 조금씩 허용하면 결국엔 모두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노동자들도 있다. 연세대 청소 노동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위해, 교수와 학생들 위해서 청소 일을 해 왔습니다. 9층 건물을 5명이서 일하고 있었는데 2명으로 줄인다고 합니다. 해마다 우리를 힘들게 해야만 학교가 운영되는 건지, 정말 분통터집니다.”
경비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1명이 맡아야 할 건물과 구역이 늘어나면,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응이 늦어질 것이다.
이에 더해, 경비 노동자들은 근무체계 개편으로 인한 임금 삭감 공격도 받고 있다. 연세대는 기존의 24시간 맞교대제(오전 7시 출근 다음날 오전 7시 퇴근)를 개편해 노동시간을 3분의 2로 줄이려고 한다.
연세대 당국은 10월부터 경비 노동자들에게 밤 10시 30분에 퇴근하라고 했다. 서울지부 소속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따르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내년 1월 1일부터는 강행하겠다고 한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경비 노동자들의 월급은 올해 시급을 기준으로 최소 30~40만 원 줄어든다. 다른 대학들도 이 방식의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맥락을 떼어 놓고 보면,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좋은 일로 볼 수도 있지만, 임금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복지가 형편없는 우리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고령의 나이에도 일을 해야 한다. 경비 노동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이런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임금이 더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 경비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2년 후에 연세대에선 더 많은 경비 노동자들이 퇴직합니다. 지금도 건물 하나를 혼자 6차례 이상 순찰하는 등 노동 강도가 높은데, 밤 10시 30분에 퇴근해 [월급이] 30~40만 원 삭감되면 저 같은 가장들은 어떡합니까? 노동시간이 줄더라도 임금 총액은 유지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학교 측의 근무 체계 개편 계획을 막아야 한다.
한편, 대학 경비 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은 매우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몇몇 대학에서 경비 노동자들이 화재나 가스 누출 사고를 초기에 감지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 사례들이 그 증거이다.
대학 경비 노동자나 병원 노동자처럼 우리 사회에는 심야 시간에도 필요한 노동자들이 있다. 관건은 이 노동자들이 충분히 재충전할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력을 확충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그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CCTV 등을 이용해 원격 관리하면 사람이 없어도 되니, 경비 인력을 대폭 감축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CCTV는 현장에 있는 사람의 보조 수단이지,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경비 노동자 없이 ‘무인 경비’는 완벽할 수 없다.
결국 돈이 문제이다. 돈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우선순위 문제에서 대학들은 안전하고 쾌적한 학습 환경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이러한 대학·하청업체 측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10월부터 집단교섭을 해 왔다. 교섭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노동자들은 투쟁을 결의했다.
그리고 퇴직자 자리를 채우지 않는 꼼수 인력 감축에 맞서 서울지부 등 10여 개 단체가 모여 ‘빗자루 수비대’라는 연대체를 구성했다.
‘빗자루 수비대’는 12월 20일 11시 연세대 정문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했다. 변희영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을 선언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비정규직을 죽이는 역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싸우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빗자루 수비대’는 대학들의 인력 감축 시도에 반대하는 범국민 서명도 받기 시작했다. 신촌 거리를 지나가던 많은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연이어 오후 2시 연세대 백양로에서 열린 서울지부의 집중 결의대회에는 조합원 등 300여 명이 참가해 학교 당국의 위선을 폭로하고 투쟁 결의를 다졌다.
‘빗자루 수비대’ 출범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말했듯이, “학문과 지식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비용 절감 운운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인력 감축하는 데 반대”하자.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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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단기 알바 전문 업체 ㈜코비가 채용공고 사이트에 올린 급여와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임금 차액을 1년 단위로 계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