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 벽두부터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인력을 줄이거나 정년퇴임자의 빈자리를 신규채용하지 않고 단기 알바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약만료 된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하지 않겠다는 대학도 있다.
고려대는 정년퇴임으로 생긴 빈자리에 3시간 단기 알바를 투입하겠다고 한다. 연세대는 인사이동으로 생긴 빈자리를 비워두거나 그 자리에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는 방식으로, 이화여대는 경비노동자 9명의 정년퇴임 자리 중 고작 3명만 채용하고 경비초소를 줄여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한다. 홍익대는 새로운 용역업체와 계약하면서 인원 감축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인력이 줄어든 자리에 알바 학생을 넣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무력화
이러한 공격들은 2018년 최저임금(7530원) 인상과 지난해 서경지부 노동자들이 수개월 간 투쟁 끝에 따낸 임금 인상 효과(시급 830원 인상)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와 관련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지난해 임금 협약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총액이 당연히 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기존의 총액은 그대로 둔 채 인원을 줄이거나 퇴임자의 빈자리에 더 열악한 단기 알바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맞추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홍익대처럼 악랄한 대학은 해고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 역대 최대치 최저임금 인상이라며 자화자찬했던 문재인 정부가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려는 등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에 나선 것이 개별 사용자들과 대학당국의 공격을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대학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조직을 확대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 온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약화시키려고 호시탐탐 노려 왔다. 그 공격 중 하나가 정년퇴임 자리에 단기 알바 등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대학들은 최근 현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되, 정년퇴임으로 빈자리가 생기거나 신축 건물에 새 인력이 필요해지면 기존 업체를 통한 인력 충원을 피하고 단기 알바를 쓰거나 다른 형태의 채용을 늘려 왔다. 한마디로, 기존 업체에서 잘 조직된 노동조합을 우회해 저비용으로 입맛에 맞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저질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야금야금 늘려 온 것이다. 이것은 장차 전체 고용과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싸움은 미래의 노동조건과 고용 안정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기만
대학당국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재정적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인상돼(2015년, 2016년 약 6퍼센트, 2017년 약 12퍼센트 인상) 단기 알바를 쓰거나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당국이 돈이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현재 인력감축 시도가 벌어지는 대학들의 대학적립금은 수천, 수백억 원에 달한다. ‘현금부자’라고 불리는 홍익대의 적립금은 7430억 원 규모로 전국 사립대 중 1위다.(2017년 기준)
2010년에 이어 또다시 해고 사태를 맞게 된 홍익대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올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으로 시급이 830원 인상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꼼수를 발표했습니다. 용역업체가 바뀌는 틈을 타 미화노동자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미화용역 업체인 대주HR(주)가 새해 1월 1일부터 청소노동자 7명에 대해 고용승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겨울에 청소노동자 7명이 해고될 위기에 몰렸습니다.”(서경지부 홍익대분회 성명서)
연세대 노동자들도 학교의 기만적 행태를 폭로하고 나섰다.
“900억 원 이상 들여 백양로 프로젝트 공사를 진행하고, 5천억 원이 넘는 재단적립금을 쌓아둔 학교가 … [우리] 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말합니다. 2017년 [투쟁을 통해 쟁취한] 청소노동자 시급은 7780원이고 경비노동자 시급은 6890원입니다. 애초에 너무 낮았던 임금이 이제 겨우 현실화 됐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연세대는 그 때문에 사람을 줄이고, 시간을 줄이겠다며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화여대는 ‘촛불 총장’이라 불리는 김혜숙 총장이 앞장서 대학 경비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경비노동자 인원 감축에 따르면] 경비노동자가 관리하는 건물 개수가 늘어나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화됩니다. 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물질로 규정할 만큼 몸에 해롭습니다. 그런데도 경비노동자들에게 노동강도를 더 강화하려는 짐을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인원이 감축되고 초소가 통폐합되면 그만큼 경비에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해 고령의 노동자들이 새벽 4∼5시부터 일하는 것은 그만큼 청소할 구역이 넓고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의 말마따나 “몸이 안 아플 때가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고대당국은 단기 알바를 투입하겠다고 한다. 하루 종일 하던 일을 단 3시간 만에 끝낸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강도를 수반할 뿐 아니라, 알바가 투입된 구역의 청결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이 ‘학생들더러 더러운 곳에서 공부하라는 거냐?’며 항의하자, 대학 관계자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하고 답변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간질
한편, 고려대 당국은 돈이 없다는 근거로 “등록금이 매년 동결됐음”을 강조한다. 그리고는 학교 재정이 부족하니 “외국인 학생도 많이 받으려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것은 재작년 말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학사제도 개정 방안’에 따라 여러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상한제를 폐지하고 등록금 인상을 시도했던 것과 연결된다. 실제 경희대 국제캠퍼스는 2017년도 외국인 학생의 등록금을 7퍼센트 차등 인상했고, 고려대는 18퍼센트 인상을 발표했다가 학생들의 반발로 철회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등록금 인하 또는 동결되는 추세에서도 고려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적립금을 늘려 왔다. 2016년도 마찬가지다.
등록금이 동결돼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도 입 발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 등록금이 고공 인상될 때조차,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대학당국이 재정 여력 운운하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학생들의 등록금 동결을 꼽는 것은 늘 활용해 온 이간질일 뿐이다. 대학당국들은 교육 여건이나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끊임없이 적립금을 쌓고, 심지어 몇몇 대학은 적립금으로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다가 수백억 원을 날리기도 했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이 학생들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도 이롭다. 대학당국은 적립금을 활용해 등록금을 인하하고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또, 인력을 감축할 것이 아니라 대폭 충원해야 한다.
고려대의 한 청소노동자는 “더 열악한 일자리가 도입되면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건 물론이고, 전체 일자리로 확대될 거다. 아예 도입되기 전부터 막아야 한다”며 “연대와 지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 노동자의 말처럼 지금 필요한 건 단결해 싸우고 지지와 연대를 넓히는 것이다.
서경지부의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이제 곧 인력감축 반대, 단기 알바 투입 반대, 적정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