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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말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해 무고한 민간인을 포함해 4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한 남한 측의 보복 포격으로 북한도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방송은 “적의 포탄이 민가 주변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몇 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싸고 긴장이 쌓여 온 결과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먼저 변할 때까지 “전략적 인내”를 하겠다며 북한과의 협상을 외면하고 있다. 그의 대북 정책이 ‘부시 3기’라고 불리는 이유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보면,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를 얼어붙은 상태로 놔둘 각오”가 돼 있다. 그들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이미 입증됐듯이, 이런 압박 정책은 결코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북한이 얼마 전 공개한 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은 오바마 정부가 2009년 초에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이유로 경제 제재를 가했을 때 짓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등을 지렛대로 미국을 협상장으로 불러내려 한다. 3차 핵실험이 곧 있을 것이라는 무시 못할 예측도 있다. 연평도 포격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이를 통해 미국에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압박한 것일 수 있다. 서해 5도 — 연평도는 그중 하나다 — 와 주변 해역은 정전협정의 문제를 보여 주는 복잡한 분쟁 지역이다.
또,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 세습 과정 중인 북한은 내부 결속을 다질 필요도 있다. 그로기 상태로 그럭저럭 버텨 온 경제 상황 속에서 3대 세습은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외부 적과의 충돌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과 이명박 정부는 압박의 산물인 연평도 포격 사건에 더한층의 군사적 압박으로 대처하며 위기를 키우고 있다. 우익은 연일 강력한 보복을 요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서해일대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할 계획을 내놓고 있다.
한미 양군은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서해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했는데, 미국은 여기에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파견했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올해 7월 한미연합훈련 때도 조지워싱턴 호를 동원하고 싶었지만 중국의 항의로 동해로 옮겨서 훈련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기회로 이 항공모함을 서해, 즉 중국의 코앞까지 밀어넣은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동아시아에서 취한 일련의 조처들 — MD구축, 한미ㆍ미일 동맹 재편 — 은 사실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은 경제 위기 속에서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데, 환율 문제뿐 아니라 2009년 남중국해와 서해에서 두 차례 해상 대치 같은 일로도 나타났다.
미국은 북한에 압력을 가하도록 중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북한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항공모함을 동원하는 것은 화약고 근처에서 불장난하는 것과 같다.
대북 강경 대응 분위기가 강화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연평도 주민들을 비롯한 남북한 민중이다. 이런 분위기는 정권의 치부를 가리고 남한의 진보운동을 억압하는 데에도 이용될 것이다. 따라서 군사훈련, 교전수칙 개정, 군사력 증강 등 호전적 방식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패권을 위한 강대국들의 횡포를 우려하는 진보 염원 대중은 북한의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신화를 믿기보다는(북한의 궁극 목표는 미국과의 화해ㆍ협상을 통한 관계 정상화다), 이와 같은 북한의 ‘반제국주의 투쟁’이 효과보다는 역효과를 낸다는 점을 간파하고 그 대안으로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인 아래로부터의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