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대학들이 올해 4월 들어 서둘러 학과 통폐합과 정원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4월에 마감되는 정부의 대학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다. 가산점을 더 많이 받으려면 정원을 더 많이 감축해야 하고, 특성화를 하려면 특정 학과에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이 비인기 학과의 정원을 대폭 감축하거나 통폐합하는 것이다.
수도권에 있는 소수 상위권 대학 몇 곳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대학들은 정원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가산점이 절실한 대학일수록 정원을 훨씬 더 많이 줄이려 하고, 이를 위해 학과 통폐합을 추진한다. 교육부는 교육을 획일화시킬 의도가 없다며 발뺌하지만, 지방대학의 인문계와 예술계열이 집중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저항
학생, 교수들은 이에 저항하고 있다. 청주대학교 사회학과 학생들은 학과 통폐합에 맞서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교수들도 교육부에 진정서를 내는 등 투쟁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학생들은 폐과에 반대해 총장실을 점거했다. 강원대학교에서는 학교 당국이 사범대 가정교육과와 한문교육과를 없애고 인문대 불문과와 독문과를 합치는 등 학과 20여 개의 통폐합을 결정하자, 가정교육과ㆍ한문교육과 학생 1백여 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4월 17일부터 총장실 복도를 점거한 채 항의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기대학교 학생들도 서울캠퍼스 8개 학과 통폐합 계획에 맞서 학생총회를 성사시키고 수원캠퍼스 총장실을 11일간 점거했다. 현재 점거는 풀었지만 학생들은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대 교수들로 구성된 한국 예술대학ㆍ학회 총연합은 교육부 장관 해임을 요구하고 현행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하며 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오는 5월 9일에는 교수, 비정규교수, 학생, 교직원 단체들이 모여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맞설 계획이다.
정부는 학령 인구 급감에 대비해 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립대학 중심의 대학 시스템, 사학 재단들의 부실과 부패, 턱없이 적은 정부의 재정 지원 같은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사실 학령 인구 감소가 대학의 위기로 이어지는 이유는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사립대 중심의 대학 시스템 때문이다. 정원이 줄면 그만큼 등록금 수입이 줄어 대학 운영에 차질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대학에 고른 재정 지원을 하고 부실하거나 부패한 대학은 재단을 내쫓고 국·공립화시키면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상위 소수 대학에게 재정 지원을 몰아 주고 대학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재편해, 대학이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게 하려 한다. 또한 대학을 퇴출시키고 대학 정원을 대폭 줄여서, 노동계급이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공격하려 한다.
먹튀
게다가 정부는 부실대학을 퇴출시킨다면서 부실 교육의 책임을 져야 할 부패한 재단에는 특혜를 주려 한다. 올해 상반기 제정이 목표인 ‘대학 구조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률’(가칭)에는 등록금으로 만든 교육용 기본 재산을 법인 재산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고 대학을 정리할 경우 설립자가 잔여 재산을 가져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이 해산하면 잔여 재산을 다른 교육법인에 넘기거나 국가에 귀속시키게 하는데, 잔여 재산을 설립자에게 주는 것은 부실사학들의 ‘먹튀’를 허용하며 국고를 축내는 것이다.
부실하고 부패한 대학을 정상화시키려면 사학재단들에 특혜를 줄 것이 아니라, 사학재단을 퇴출시키고 국공립화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획일적 지표로 대학들을 경쟁시켜서 일부 대학에만 재정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모든 대학들에 국고 지원을 대폭 늘려 교육 여건을 향상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