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4월혁명 기념일입니다. 민중이 혁명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린 역사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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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해방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 대중을 끔찍하게 억압하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3·15 부정선거도 그중 하나였고,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습니다.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경찰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중학생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이 “주열이를 살려내라!”라고 외치며 거리로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항은 서울로 확산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섰고, 노동자들과 초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이승만 퇴진을 외쳤습니다.
경찰의 발포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은 시위 진압을 위해 이승만 정권이 요청한 군대 투입을 허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은 점점 들불처럼 번졌고, 일부 사병들은 시위대 편으로 넘어 왔습니다. 근본적 사회 시스템에 맞선 운동으로 확대될까 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했습니다. 이승만은 하야를 발표하고 미국으로 도망쳤습니다.
이후 4월혁명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던 장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장면 정부는 이승만 정권의 적폐를 청산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4월혁명이 남긴 퇴적물로 수많은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부 우파들은 이승만을 ‘국부’라며 칭송합니다. 제주 4·3항쟁을 모욕하는 것도 이승만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윤석열은 4월혁명 참가자 일부를 포섭해 이승만을 참배하게 했습니다.
윤석열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한반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개악, 복지 삭감 등으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반윤석열 투쟁을 키워 나가는 것이 오늘날 4월혁명을 계승하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