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신
‘대선 전초전’이라고도 불렸던 4월 7일 재보궐 선거의 결과는 정부·여당 심판이었다. 개혁 염원·약속을 배신하고 기만해 온 데에 대한 누적된 불만 속에 이미 정부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었다.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다양한 버전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2030(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보수화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특히 출구 조사 결과에서 20대 남성들의 오세훈 지지가 크게 높았던 것을 근거로 이들이 보수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단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내 젠더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민주당 반대는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난 특징이었다. 이는 세대, 성별을 불문하고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20대의 투표 성향만 따로 떼어 내서 보수화 운운하는 것은 전체 그림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오세훈은 10년 전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나고서 공식정치에서 주변화돼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과 세월호 참사 등 청년들이 강렬히 기억하고 있는 쟁점에서도 오세훈은 눈에 띄지 않았었다. 반면에 박영선은 세월호 운동을 배신한 전력이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내며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조국 부부의 자녀 입시 비리, 권력형 비리 의혹 등을 감싸며 위선의 절정을 보여 줬고, 공정 약속도 배신했다.
이런 점들은 제쳐둔 채 20대 보수화 운운하는 것은 저마다 내년 대선과 전국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를 앞세운 얄팍한 주장일 뿐이다.
책임 회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청년들의 투표 결과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내놓고 있지만, 2030을 비롯한 대중의 불만을 개선할 진정한 대책에는 관심이 없다.
문재인은 4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직장을 잃고 재취업의 길을 못 찾는 실직자들, 고용불안과 소득 감소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코로나 직격탄 속에 월세 내기도 버거운 자영업자들, 알바 일을 찾기도 어려운 대학생들과 청년들, 무거워진 육아 부담으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 이처럼 열거할 수 없는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 속에 힘겹게 서있다”며 정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힘겨워진 데에는 친기업 정책을 선택한 문재인의 책임이 크다. 그러니 유체이탈이나 다름 없는 이런 발언이 말잔치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문재인은 “정부는 청년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주길 바란다”며 청년들을 각별히 거론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간절히 바라 온 양질의 일자리 보장(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약속을 폐기한 것은 문재인 자신 아닌가?
문재인이 말한 대책의 내용도 문제적이다. “[정부가] 청년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마중물이 돼야 한다”면서 정작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이 내놓은 대책은 정부의 민간 기업 투자나 “유망한 중소·벤처·혁신 기업” 일자리, 청년 창업 지원, “청년들의 질 좋은 일자리” 취업을 위한 직업 훈련 등이다.
보수 언론은 ‘정부가 과도하게 공공 일자리 예산에 돈을 쏟아 부어서’ 청년들이 미래의 재정 부담을 느껴 정부를 심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애초 약속과는 달리 제대로 된 일자리를 위해 돈을 쓰지 않았고, 그래서 별반 나아지지 않은 고용 상황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이 오히려 커졌다.
2030의 이반
임기 초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층의 지지율은 꽤 높았다. 우파 정부 하에서 10대, 20대를 보내면서 고통을 받았던 2030의 상당수는 특혜와 부패를 없애고 ‘공정 사회’를 만들어 일자리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제 2030은 가장 빠르게 정부 지지에서 이반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는 긍정 32퍼센트, 부정 58퍼센트였다(한국갤럽, 2021년 4월 첫째주 기준). 긍정 답변 비율은 대통령 취임 후 역대 최저치이고, 모든 연령대와 성별에서 부정 평가가 더 높았다. 부정 평가를 한 답변자들은 부동산, 경제, 인사, 내로남불 등을 사유로 꼽았다. 그런데 같은 시기 18~29세 청년들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14퍼센트)과 민주당(22퍼센트)보다도 무당층(52퍼센트)이 훨씬 높았다.
여론조사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세대와 성별을 가르지 않고 현 경제 상황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은 ‘진보’를 참칭하며 말로는 진보적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실천에서는 국민의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주류 언론과 개혁주의 세력들이 민주당을 진보라 규정한 것이 민주당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에 혼란을 일으켰지만 말이다.) 친자본주의 세력인 민주당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데에 전념하며 집권 내내 철저히 친기업 방향을 걸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대책도 내놓지 않았고 그나마 약속한 것도 안 지켰다.
그 결과 저질 일자리,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변, 첫해 반짝 올리고 계속 개악해 온 최저임금, 치솟는 부동산 값 등 안 그래도 일자리와 복지가 부족한 청년들의 현실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고용 상황도 여전히 심각해서 청년 일자리는 2월에 전년 대비 14.2퍼센트가 줄었고 3월에는 14.8퍼센트가 줄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좌절한 일부 청년들이 개인으로라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으며 주식 투자나 영끌 같은 방식에 관심을 돌리기도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박근혜 정부의 부패에 분노하며 정권 퇴진 운동에 동참했던 청년들의 배신감을 키웠다.
그러니 박영선이 낮은 지지율을 청년들의 역사의식 탓으로 돌리려 한 것은 낯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처사였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노무현의 개혁 염원 배신이 대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었는데도 뻔뻔하게 진보진영의 노무현 괴롭히기와 청년들의 보수화를 탓했었다.
결국 정권이 바뀌어도 청년들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고, 불평등, 부패와 특혜도 계속되며, 청년들의 박탈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즉, 청년들 일반이 지녀 온 변화에 대한 기대와 이 기대를 투영했던 정부에 대한 실망이 환멸로 나아가는 데에서 이념적 지향이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소외와 불평등
2030은 계급적으로 동일하지 않고 같은 연령대 안에서도 정치·사회·경제적 경험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세대적 특징이라 할 만한 점도 있다. 소수의 자본가 계급 자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체제 위기의 여파 속에 성장해 왔다.
지금 2030은 ‘IMF 경제 위기’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부모가 해고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고,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와 이후 계속된 장기 침체 속에 자기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 호황을 경험하지 못한 채 위기가 가하는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세대인 셈이다.
신자유주의와 체제의 위기 심화는 개인주의와 파편화를 부추겨 왔다. 지배자들은 늘지 않는 일자리와 극심한 입시 경쟁 속에 청년들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도록 강요해 왔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점수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취업을 위해 “학점과 스펙” 경쟁에 뛰어든다.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런다고 좋은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경쟁 탓에 많은 청년들이 메마른 인간관계를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로 여긴다. 가령, 혼밥, 혼술, 1인 용품들이 많이 늘었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달래줄 대화 로보트가 인기다. 또,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혹은 직장에서 느끼는 팍팍함을 완화하려고 이러저러한 공동체를 탐색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금의 청년들은 자신의 삶인데도 자신의 목표와 의도, 바람은 무시되고 외부적 힘의 결정에 종속되는 통제력의 상실(소외)을 일상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더 심하게 겪고 있다. 여기에 대학에서 좌파가 약화돼 온 것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를 극복하고, 지배자들이 부추기는 파편화를 극복하려면 집단적 행동(투쟁)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지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직후 많은 언론들은 청년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청년들은 생산관계로 단일하게 묶여 있지 않아서 일상적 구심을 단단히 형성하기 어렵기도 하다. 좌파가 대학에서 약화된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청년과 학생들은 정의, 민주주의 문제에 관심이 높고 이데올로기에도 매우 민감해서 특정 계기로 분노가 저항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저항들에서도 대학생·청년들이 촉발제(trigger) 구실을 종종 해 왔다.
대안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국민의힘에 표를 주는 방식으로 표현됐다. 정치·사회적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정말로 보수화할 수도 있다. 또다른 일부는 좌파적인 대안에 관심을 보이겠지만 말이다. 대중 투쟁이 강력히 성장·전진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주요 리더들과 지도적 진보·좌파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민주당을 진보의 일부로 대하며 투쟁을 건설하기를 주저했는데, 이것이 청년들을 포함한 대중에게 민주당의 실체를 바로 보게 하고, 정치 의식을 성장시키는 데에서 해로운 효과를 냈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늘고 강도도 세지고 있지만 좀더 빠르고 철저하게 문재인 정부와 결별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좌파 일각에서 청년들이 ‘공정’을 요구하는 것을 보수화의 한 근거로 보면서 사태를 과장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극히 일면적이다.
박근혜의 부패에 분노했던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로 기득권 부패 구조의 일부임을 목격하면서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불만이 굴절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제기되기도 하지만, 청년들이 ‘공정’을 외치는 배경에는 대체로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있다. 무엇보다 집값 폭등에서 보듯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도 어렵다. 따라서 좌파들은 이런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애써야 한다.
급진적인 사회 변화만이 청년들의 고통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럴 동력은 다름 아닌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있다. 무엇이 기폭제가 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부패 같은 정치적 쟁점일 확률이 높지만, 노동자 투쟁에 학생들이 연대를 건설하며 급진화할 수도 있고, 학생 자신의 조건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과정 속에서 지배적 사상이나 보수적 의식도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들의 사회 변화 염원과 그들이 이를 구현하려는 수단(개혁주의 또는 개인적 해결책) 사이에서의 모순을 포착해, 대안이 있음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참을성 있게 청년들의 열악한 삶과 여러 문제의 원인과 책임이 자본주의 사회 체제와 이를 수호하는 정부와 지배자들에게 있음을 토론하고 투쟁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투쟁을 발전시키려면 반자본주의 사상과 실천을 중시하는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