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주적 국익 추구는 선(善)일까?

이재명 정부가 기여하겠다는 서유럽 주도의 호르무즈 구상도 또 다른 제국주의적 개입 시도일 뿐이다 ⓒ출처 청와대

최근 이재명 정부의 외교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많다. 대통령이 SNS에 이스라엘 비판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지만 이란 전쟁과 한미동맹 현대화 문제가 동시에 관련돼 있다. 한미동맹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국힘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불문가지다. 그래서 진정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의 주권 부재를 한탄하며 자주화를 주창하는 진보 인사들이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며 상당한 기대를 드러낸 것이다.

한국 외교의 숭미 전통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이경렬 전 대사는 〈민플러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대통령의 자주적 언어”는 “지금까지 우리의 외교 문법을 명백히 넘어서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상규 진보당 서울시장 후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의 전쟁에 대해 인권과 평화를 언급한 자체가 획기적이고 놀라운 변화”라며 “박수”를 보냈다. 동시에, 예상되는 국내외 저항과 파문에 맞서 정부와 한편에 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이 외교 수단 되다

이런 진보 인사들은 대개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는 다소 상이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부여한다. 그 자체로 진보나 정당성이 보증되는 것으로 보는 듯도 하다.

그러나 말보다 행동이 보증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이스라엘 관련 정책에 일말의 변화라도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로 수출한 한국의 총포 및 탄약류와 전차 및 장갑차류가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데 쓰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두면서 “인권의 소중함” 운운하는 것은 서방 정부들이 보여 온 위선을 재연하는 것일 뿐이다.

이재명 정부에 말뿐이 아닌 행동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 활동가들 ⓒ이미진

사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정당성 위기 때문에 서구 지도자들이 너도나도 말로나마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분위기에 뒤늦게 합류한 꼴찌 탑승자이다. 그가 이스라엘 비판을 꺼내든 건 가자학살이 시작된 지 30개월 만에, 그것도 이란에 특사를 파견하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비판하기는커녕 이재명 정부가 “미국만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을 두둔”하지 않고 이란에 시그널을 주며 실리를 챙겼다고 높이 산다. 미국 눈치 보지 않고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통행이라는 국익을 우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단지 미국과는 다소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박수 친다면, 그것은 이재명 정부가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눈물을 외교 수단으로 이용하고는 이스라엘 관련 정책을 고스란히 지속하며 차갑게 입 씻는 것을 보고도, 정부가 비난을 면하도록 돕는 것이다.

호르무즈 통제 위한 서유럽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동참하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영국·프랑스 주도의 호르무즈해협 자유항행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가 의지를 밝힌 것에 별 비판이 제기되지 않는 것은 유사한 문제점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일 것이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4월 19일 JTBC 뉴스룸에 나와, 이재명 대통령이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에 실질적 기여를 하겠다고 한 것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다. “상당히 의미있는 것이었고 … 트럼프가 굉장히 섭섭해하고 짜증을 내는데 …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게 훨씬 더 외교적으로 이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실질적 기여”는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을 위한 “다국적군 참여”임을 밝힌 상황이었다. 게다가 안규백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4. 14)에서 단지 전쟁 종전 이후의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준형 의원은 이재명 정부가 다른 국가들이 미국과는 결이 다른 대응을 하는 것에 함께한다는 데 단순히 큰 의의를 둔다.(그런데 주도 국가들인 영국과 프랑스는 중견국이 아니라 전통적 제국주의 국가다.)

4월 22~23일 한국 측도 참석한 실무회의에서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는 기뢰 제거를 핵심 작전으로 결정했다. 영국은 전투기 부대 배치도 제안했다. 이란 정부는 “역외 세력의 군사적 개입”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소위 미국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며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누구인가?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제국주의적 중동 개입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영국은 1971년 페르시아만에서 군대를 철수할 때까지 그 지역과 바닷길을 지배했다.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 참가국들은 그것이 방어적 성격임을 강조하지만, 군함과 전투기를 동원해 남의 앞바다에서 선제적 군사 작전을 펼치려는 것이 퍽도 방어적이겠다. 자국 상선과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제국주의적 개입에 이런 명분이 따라붙지 않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놓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이란의 방어망을 무력화하는 기뢰 제거 군사 작전이 결국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는 자명하다.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핵심 6개국 가운데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은 미국과 함께(때로 독자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남중국해 자유 항행 작전에도 참가해 왔다.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의 개입은 어느 모로 보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호르무즈 자유항행 이니셔티브는 “중견국 중심”의 다자 연대가 미국에 대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국익을 위해 미국과 갈등하는 동시에 협력하기도 한다는 것도 보여 준다.

이재명 정부가 여기에 뛰어드는 것이 마치 미국에 대한 약간의 도전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국익론(내셔널리즘)에는 좌우가 따로 없다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선 안 되고 한국의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당과 그 왼쪽으로부터만 나오는 게 결코 아니다. 보수적인 논평가나 분석가들도 시대가 바뀌었다며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미국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조한범, 《무극화 시대, 대한민국 생존 시나리오》)

이는 두 가지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첫째, 미국 패권의 약화다. 미국이 세계 경제력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미국 중심 세계질서 속에서 다른 나라들도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도 미국에 안보를 의탁하고 시장을 제공받으면서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을 추구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중국이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미국과 겨루는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세계 질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된 한편, 다른 주요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충돌 틈새에서 나름대로 책략을 부리며 이익을 차지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 없이 살 수 없다고 여기던 한국 자본가들과 국가 관리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변화는 한국의 성장이다. 한국은 제3세계 나라들 가운데 고속 성장을 이룬 드문 경우다. 경제뿐 아니라 군사력 면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성장 속에서 민족적 자부심(민족주의)도 강화됐다.

그런데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이 가하는 제약 때문에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커졌다. 과거에도 불평등한 관계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날개 아래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훨씬 더 우세했다면, 이제는 미국에 대한 ‘종속’ 또는 ‘예속’에서 벗어나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미국의 패권 약화와 세계 질서의 변화를 기회로 여긴다.

그러나 거대 제국주의 열강과 그 틈새에서 책략을 부려 국익을 추구하려는 중견국 사이에는 갈등과 협력이 모두 있게 마련이다.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는 다소 상이한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획기적이고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런 착각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사실은 독자적인 하위(아류)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있을 뿐인 위험한 길로 노동계급을 이끌기 십상이다.

계급 정치는 계급 협조 정치가 아니라 계급 투쟁 정치여야 한다. 그리고 계급 투쟁은 반제국주의 투쟁의 핵심적 부분이 돼야 한다.

출처: 한국의 자주적 국익 추구는 선(善)일까? (<노동자 연대> 582호, 20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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