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학생들이 단호하고 과감한 점거 투쟁으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철회시켰다. 학생들은 더 나아가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언론이 학생들의 놀라운 자발성과 신선한 집회 문화에 주목하지만, 학교 당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힘은 고전적 수단인 대중적 점거 투쟁에서 나왔다. 점거 농성은 다른 투쟁 방법과 질적으로 다르다. 점거 농성은 학생들이 학교 측에 맞서 싸우는 데 – 등록금 인하, 기숙사 확충, 더 나은 시설과 교육 등 –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대학 행정 기구 등 학교의 핵심 건물을 점거·통제하면 학교의 일부 업무를 마비시킬 수 있다. 비록 전산화가 많이 발전해 건물 밖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처럼 기습적으로 점거에 나서면 학교 측으로서도 대응에 한계가 있다. 또한 점거 농성은 학생들의 투지가 모이는 구심을 형성하고 사회적으로도 초점을 형성해 학교 당국을 압박할 수 있다.
점거 농성의 또다른 중요한 특징은 참여다. 점거 농성은 학교 안에서 진행되고 모든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백 혹은 수천 명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평상시에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자발적 ‘집단 행동’을 겪고 그 속에서 의식과 조직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점거 농성이 잘 조직되고 활력이 넘치면 중요한 승리를 거둘 수 있고, 심지어 핵심요구를 쟁취하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퇴적물을 남길 수 있다. 대중적 항의 행동은 다른 학교 학생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높여 행동을 고무하는 효과도 낸다. 이는 전반적인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농성을 확대하기 위한 과제
총장 퇴진이라는 더 큰 요구를 성취하려면 지금의 점거 농성이 잘 유지되고 더 강력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점거 농성의 대의를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화여대 학생들의 요구는 이미 받아들여졌고, 총장 퇴진이라는 새로운 요구는 이전 요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 연결고리가 설득력있게 제시돼야 한다. 이 점에서 농성 참가자들이 총장의 이중적 태도,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과 더불어 프라임·코어 사업, 파빌리온 강행 등을 비판하며 퇴진을 주장한 것은 옳다.
농성 속보를 발행해 농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는 것도 효과적이다. 방학이어도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을 적지 않은 만큼 정기적으로 학생 식당·휴게실·도서관 그리고 학생들이 자주 들르는 카페와 술집에 리플릿을 돌려야 한다. 이제 곧 수강신청 기간이고, 휴가를 갔거나 고향에 내려갔던 학생들도 일부는 다음 주부터 서울로 올라올 것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많은 사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점거 농성에 참여하지는 못해도 집회나 여타의 행사에는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참여는 학교 당국에게 학생들이 단결해 있으며 중요한 의사 결정에는 몇 백 명이고 더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2011년 서울대 학생들은 법인화 반대 점거 농성 지지를 광범하게 확대하기 위해 락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광범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필요하다. 8월 3일 졸업생 시위 같은 집회가 열린다면 농성에는 참가하기 어려워도 투쟁에 기여하고 싶은 더 광범한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점거 농성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대학들에서 지지 운동을 건설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미 이화여대의 승리에 고무 받아 여러 대학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항의하려는 조짐들이 포착되고 있다. 다른 대학들도 우리처럼 싸워야 하고,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여러 대학들에서 투쟁이 벌어져서 박근혜 정부의 ‘교육개혁’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총장도 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서로 다른 대학의 학생들 사이의 연계는 우리가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요구사항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점거 농성 위원회
지금도 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규찰을 서고, 식사를 나눠 주고, 농성장 회의를 진행하고, 언론을 대응하고 있다. 이런 놀라운 자발성과 자기조직화, 헌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손이 아쉽고, 상주 인원의 부족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의 연속성이 부족한 약점도 있다.
장기화에 대비해 이런 활동을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점거 농성 위원회가 필요하다. 농성에 참여한 일반 학생들 가운데서 투쟁 정서를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들을 선출해 점거 농성 위원회를 꾸리는 게 좋다. 선출된 이들은 책임성 있게 농성에 참여하며 농성을 주도해야 한다. 총학생회나 중앙운영위원회처럼 이미 선출된 대의 기구도 포함해 점거 농성 위원회를 선출하는 게 인력 유지에 더 용이할 것이다.(이와 관련해 ‘정치단체의 개입은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가’를 보시오.)
점거 농성 위원회는 모든 점거자들에게 농성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모든 점거자들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학교 당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역시 선출된 위원회가 하는 게 좋다. 다만 점거 농성을 끝낼 시기나 학교 당국의 양보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여부 등 핵심적인 문제는 집회에서 토론하고 결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노동자와 달리 생활 패턴이 불규칙해서 농성장 인원은 매우 유동적일 수 있다. 그러나 비교적 소수일지라도 책임감 있게 농성을 유지하는 인원이 있다면, 그리고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초점을 만든다면 농성은 유지 · 확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