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선거연합정당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 대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내 동요와 갈등은 끝나지 않은 듯하다.
정의당은 11월 5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선거연합정당에 부합하는 당명 변경 등 재창당을 하고, 정의당뿐 아니라 민주노총 등 노동계,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지역 풀뿌리 조직 등 제3의 정치세력도 그 당의 비례와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의당 내에서는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정당 안, 금태섭 신당과 공조하는 3지대 신당 안, 민주노총과 좌파 4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정당 안 등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이중 3지대 신당론은 장혜영·류호정 현직 의원들(세번째 권력)과 박원석·김종대 전 의원들(대안신당 당원모임) 등 전현직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정의당의 위기는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성적이 아주 저조했고 그 뒤에도 세력과 지지율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 선거 성적을 제일 가치로 추구하다 보니(선거주의), 전현직 의원들을 비롯한 인지도 높은 인사들의 원심력이 커졌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방안 중 어느 것도 선거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진보당·노동당·녹색당과의 선거 연대 또는 연합을 전현직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것에도 선거 실적 문제가 있다. 또, 자신에게 비례 앞 순번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 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 자신의 실천이 점점 좌파적 원칙이나 노동자 투쟁에서 멀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준석 신당?
3지대 신당파들이 처음부터 관심을 보인 금태섭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 양향자와 소통하고, 심지어 이준석 신당과의 공조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도 3지대 신당파의 류호정 의원은 이준석 신당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머지는 명확하게 반대하지 않고 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이준석은 이미 박근혜 탄핵 때 바른정당으로 분당했다가 다시 국민의힘으로 복귀한 우익 정치인이다. 그가 신당 창당에 나선 것은 국민의힘 지도부인 친윤계가 자신에게 공천을 주지 않을 게 뻔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한 노선 논쟁 와중에 참여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 지도부 사퇴론이 불거졌다.
결국 이정미 지도부는 당내 좌파 ‘전환’의 의견을 수용해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 정당들과의 선거 연대를 모색하는 선거연합정당 추진을 결정하고, 그 추진 권한을 비상대책위원회에 넘긴 뒤 사퇴했다.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비대위를 구성한 사람은 이정미 전 대표와 같은 정치 경향에 속하는 배진교 원내대표다. 배 원내대표는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을 오래 지낸 김준우 변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주장했다.
김준우 변호사는 11월 13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방안은 정의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치에 기초한 선거연합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례 1, 2번이 기득권이잖아요. 그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라고 얘기하는 게 선거연합정당의 취지 중 하나인 거지요.”
그런데 김준우 변호사는 제3지대 신당 주창파와도 계속 협력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전국위 결정 취지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
“[전국위의 결정에 해당하는 세력은] 기본적으로 진보정당, 조직노동, 제3지대 이렇게 세 개거든요. 그런데 제3지대가 누구냐라는 것과 관련해서는 저희는 사실 1번은 풀뿌리 지역정치세력에서 지역정당네트워크라는 분들을 처음 만날 거고요. 그리고 ‘등’이 있어요. 이 ‘등’이 무한히 열리잖아요. … 열어 놓고 가야 된다는 거지요.”
무원칙·무책임
김준우 비대위원장은 이준석 신당, 금태섭 신당 등과 연대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김준우 변호사는 비대위원장 내정 직후 장혜영 의원과 통화했는데, 장 의원으로부터 “잘된 인선”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비대위원장은 정의당 당권파가 취해 온 기회주의적 행보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전환’ 그룹은 김준우 비대위원장의 인터뷰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미 대표는 3지대 신당파들을 따르진 않았지만, 세번째권력 측 의원들(류호정·장혜영)이 당의 진보개혁 염원 약속에 역행하는 언행을 지속하는데도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경고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대를 거슬러 진보연합 성격의 선거연합정당 추진을 결정하고도, 3지대론에 대한 ‘징계는 없다’면서 오히려 그들을 감쌌다. 무원칙한 비일관성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심상정 의원은 당내 분란 내내 무책임하게도 침묵을 지켰다.
그런데 3지대 신당파에 있는 전현직 의원들 모두 심 의원이 영입하거나 그가 제시한 기조 덕에 특혜를 받아 의원이 된 이들이다. 전자에는 박원석, 김종대 의원이 해당되고, 후자에는 청년 등 가중치를 받아 비례 앞 순번을 받았던 장혜영, 류호정 의원이 해당된다.
그래서 제3지대파의 이정미 사퇴론 뒤에 심 의원이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의당 지도자들의 선거 제일 중시에서 기인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은 당의 진보 성향 지지층에게 정치적 혼란과 사기 저하를 가져다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