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올해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뿐 아니라 미국의 스리마일 아일랜드, 소련의 체르노빌 등에서 일어난 여러 핵발전소 사고들은 핵 에너지가 “경제적이고 안전하다”는 주장이 거짓말임을 생생히 보여 줬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38개국에서 443개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51개 핵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까지 나서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 없는 청정에너지원”이라며 핵 에너지를 옹호한다(그는 2006년 핵발전 기업 테라파워를 창립했다).
도대체 핵발전과 핵 에너지의 실체는 무엇일까? 핵 에너지는 정말 경제적이고 안전한 것일까? 핵발전소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그저 영화에나 나오는 ‘방사능 괴담’에 속은 것뿐일까? 《원자력은 아니다》(헬렌 칼디콧, 양문, 2007)는 이런 물음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제시해 준다. 이 책은 핵 에너지의 공급과 처리 과정,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방사선 위험, 사고 등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 헬렌 칼디콧은 의사이자 세계적인 반핵운동가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다.
“원자력과 방사선 그리고 질병”
핵 에너지는 안전할까?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핵 에너지에 뒤따르는 방사선의 위험에 대해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핵발전과 방사선 위협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그렇지만 저자는 각국 정부들과 국제기구들이 “원자력산업계에 닥칠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진정한 재앙의 크기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 각국의 정부들은 하나같이 핵발전소에서 사고로 유출된 방사선의 위험을 알리기를 꺼렸고, 제대로 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1979년 3월 28일,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핵발전소의 노심이 과열돼 녹았고, 그에 따라 막대한 양의 방사성 기체가 유출 밸브를 통해 외부 대기로 배출됐다. 그러나 “원자력산업계와 정부는 특정 동위원소들의 방출량을 조사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도 방출될 방사선의 종류와 실제량이 어떠한지 등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다”. “놀랍게도 사고 후 얼마 되지 않은 1981년에서 1985년 사이에 방사능에 피폭된 주민들에게서 이미 암이 발견되었으나 … 더 이상의 역학적인 연구는 수행되지 않았다”.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작성한 체르노빌에 대한 유엔 보고서에는 그 사고로 46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체르노빌] 발전소의 정화작업과 해체작업에 관련된 65만 명 가운데 5000명에서 1만 명이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량의 방사선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도 거의 없다. IAEA와 세계무역기구(WTO)는 “불합리한 약정”을 맺어 “WHO[세계보건기구]가 원자력의 군사적, 민간적 이용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는 것을 방지하고, 심지어 WHO가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핵발전소 사고들의 재앙적 결과는 핵 에너지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특히, 저자는 핵발전소 사고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핵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폭의 가능성과 통상적인 방사성 물질의 배출, 방사성 폐기물의 누출에 따른 위험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 당장 우리 세대가 죽음을 맞이하지 않더라도 여러 방사성 물질에 의한 오염이 우리 세대를 넘어 암, 백혈병 등을 유발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일들은 미국, 유럽 등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에서 20여 년을 거주하다 갑상선암에 걸린 박금선 씨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1심에서는 박금선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으나 2심 재판부는 “저선량 방사선 피폭과 암 발병 여부를 입증할 만한 연구결과가 부족하다”면서 1심을 뒤집었다. 그러나 경주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 중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618명도 한수원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내는 등 핵발전소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려는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핵이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핵 에너지가 값싸고 경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을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핵발전소 하면 흔히 ‘원자로’만 떠올리지만, 핵 에너지를 만들기까지는 복잡한 과정들이 뒤따른다. 광산에서 우라늄을 채굴해 적절히 가공하고, 발전소로 옮겨 적절한 설비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방사성 폐기물을 운송, 보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핵발전소를 새롭게 건설하고,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 원자로를 폐로하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그 비용은 더 커질 것이다. “인류의 건강비용”까지 고려한다면 핵 에너지 비용이 완전히 저평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미국에서 “원자력산업”에 쏟아 부은 엄청난 국가 보조금에 대해서도 폭로하는데, 핵 발전이 값싸다는 주장 이면에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핵발전소 자체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핵발전소가 운영되는 과정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는 기반시설에 의존한다”고 지적한다. 핵발전 과정과 “인류의 재앙이 되어버린 핵폐기물”에 대해 다룬 부분을 읽다 보면 핵발전이 인류를 기후위기에서 구할 ‘청정 에너지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이 외에도 이 책은 언제든지 쓰나미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테러 등으로 원자로 용해가 일어날 수 있음을 여러 근거와 사례들을 들어 경고한다. 여기까지 책을 읽었다면, 지배자들이 왜 이토록 위험천만한 핵발전을 고집하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저자는 각 나라들에서 핵발전소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가 핵무기와 연관돼 있음을 설명한다. 핵발전소는 “본질적으로 원자폭탄 제조 공장”이다. 핵발전의 부산물인 플루토늄의 소량으로도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 즉, 핵발전소를 소유한 국가들이 언제든지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대부분의 원자력기술”도 “무기생산에 이용되도록 전환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이란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과 우라늄 농축 계획 등을 ‘핵무기 개발 계획’이라며 반대해 왔다는 사실은 핵발전과 핵무기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 준다.
즉 핵은 자본주의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주들은 정부 보조금 덕분에 얻는 값싼 전기를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미 개발된 풍력, 태양광 발전 등은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수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지배자들은 핵 무기를 보유해 다른 국가들과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를 보여 준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 하는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탈핵’을 내세워 놓고 누더기로 만들더니 이제는 ‘탈핵’ 제스처조차도 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핵발전소 삼중수소 유출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데 말이다. 역대 민주당 정권에서 핵무기 개발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민주당의 ‘탈핵’ 약속은 믿을 것이 못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핵발전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미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을 이뤄 왔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세계 여러 정부들이 핵 발전소를 짓고 유지하는데 쏟아 붓는 돈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했으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조금이나마 달라졌을 것이다.
제국주의 경쟁과 이윤을 위해 인류의 생명과 미래를 위험으로 몰아 넣는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히 멈출 때, 핵의 위험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시스템을 멈출 힘을 가진 노동계급의 투쟁이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안전하고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서 결정적 힘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