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혜신
서울대 당국은 지난해 ‘시흥캠퍼스 사업’에 맞서 2016년 10월부터 228일간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인 학생 12명(무기정학 8명, 유기정학 4명)에게 징계를 내렸다.
징계 당사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낸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재판부는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징계 절차가 황당할 정도로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미리 공지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비밀리에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당사자들의 소명 기회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학교 측은 여론을 의식해 징계를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징계 기록을 학적부에 남기겠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제기한 ‘징계 무효’ 본안 소송에서 학생들을 사찰한 내용을 포함해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서면 진술을 법원에 제출해 ‘징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무기정학 징계 당사자인 이시헌 학생(자유전공학부 15, 사진)으로부터 학교 측의 부당한 징계와 학생들의 투쟁 이야기를 들었다.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투쟁’은 어떤 투쟁이었나요?
2016년 8월, 서울대 성낙인 총장이 시흥시·한라건설과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한 실시협약’(이하 실시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실시협약 체결 전에 학내 구성원들과 논의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어기고 날치기로 강행했어요. 추진 절차만이 아니라 그 내용이 정말 문제였습니다.
시흥캠퍼스를 지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가능성이 커 보였어요.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대학과 기업이 손을 잡고 사업을 벌이며 그로부터 재원을 마련할 게 분명했죠. 점거 과정에서 폭로된 문건을 보면, 학교 측은 시흥캠퍼스에 호텔과 스파 센터 등 상업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실시협약 철회 투쟁은 이런 대학 기업화에 맞서는 투쟁이었습니다.
2016년 10월 10일, 전체학생총회에서 실시협약 철회 요구를 건 본부 점거 투쟁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
학교 측은 징계 협박만 한 게 아니라 추운 겨울에 학생들이 농성을 하는 대학본부에 단전·단수 조치를 했어요. 박근혜 퇴진 운동이 벌어지던 2016~2017년 겨울이었는데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었죠. 그런데도 학교 측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어요.
학생들은 ‘본부점거본부’라는 기구를 조직해 153일 동안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점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탄핵당한 다음날인 3월 11일, 학교 측은 직원 4백여 명을 동원해 본관 소화전을 물대포 삼아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해산시켰습니다.
우리는 4월 4일 두 번째 학생총회를 열었습니다. 실시협약 철회와 성낙인 총장 퇴진을 요구했고, 5월 1일 재점거를 해 7월까지 본부 점거를 유지했습니다. 1차 점거까지 포함하면 총 228일 동안 본관에서 농성을 벌인 거죠.
아쉽게도 시흥캠퍼스 추진 자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투쟁을 통해 시흥캠퍼스 사업이 가져올 공공성 후퇴와 학교 측의 민주주의 훼손 문제를 알려 나갔습니다. 학교 측은 2017년 7월 20일, 12명에게 징계를 내렸습니다.
학교 측이 징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수백 페이지 분량의 서면 진술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학교 측은 12명 중 8명에게 무기정학, 4명에게 유기정학 6~1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법원 판결과 여러 사회적 압박 때문에 성낙인 총장은 12월 5일 징계 해제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 뒤 학교 측은 ‘징계해제는 잔여 징계만을 없앨 뿐 징계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고 학적부에도 정학 사실이 유효하게 기재된다. 징계는 적법·타당했으므로 소송을 통해 다툴 것’이라는 서면 내용을 징계 무효 소송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학교 측은 5월 29, 30일, 6월 4일 세 차례에 걸쳐 수백 쪽에 달하는 서면 진술을 제출해 징계 절차도 적법했고, 징계 양정도 적절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9월 5일, 법원은 “징계 처분은 그 징계양정마저도 지나치게 무거워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위법”해 징계가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심지어 학교 측이 징계위원회를 열면서 “처음부터 (학생들을) 탈법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장소도 안 알려줬습니다. 학교 측은, “출석 장소를 실제 징계위원회 개최 장소와 다르게 통지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황당한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징계 관련 규정에 징계 당사자 학생들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진술할 권리가 있다고 돼 있습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징계위원회에 ‘출석’ 통지된 장소 앞에서 연좌 농성을 했고, 이것은 징계위원회를 저지할 목적이었으니, 다른 곳에서 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학교 측 인사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이미 징계위원회 회의가 다른 곳에 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초부터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싫었던 것입니다.
징계 양정 문제도 언급해야겠습니다. 학교 측은 “제명”을 해도 마땅한 학생들에게 “선처”를 내려 무기정학·유기정학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쫓겨나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고 성낙인 총장과 대학 당국의 책임자들입니다. 전체학생총회가 두 번이나 성사되고, 학생들이 점거까지 불사하며 싸웠는데, 도대체 진정으로 학교 구성원들을 대표해 온 것이 누구겠습니까.
학교 측은 대학 정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이 법적으로 이사회에 있는데, 그마저도 ‘호혜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려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실시협약 철회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해왔다며 학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학생 수천 명이 요구하고 나서도 제대로 된 해명 한번 없이 ‘불가능한 요구’라고 일축해버릴 거라면 학교 측의 의견 수렴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사실상 시늉만 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법원은 가처분 결정문에서 “과거 10년 사이에 … 성폭력 … 등 비난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서만 … 무거운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고 말합니다. 더 중요하게는 학생들이 “학생들을 대표해 의견을 제기”한 과정이고, “학생총회 … 등 나름의 의사결정 절차는 거친 점”을 보아 “징계 처분은 그 양정마저도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단했습니다.
학교 측이 내세우는 황당한 주장은 더 많습니다. 한 가지 사례만 더 들겠습니다. 학생들이 2017년 4월 19일 4.19혁명을 기리는 학교 측 공식행사에서 항의 시위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비민주적, 반민주적인 성낙인 총장이 심지어 박정희 100돌 기념사업회 위원인데 헌화할 자격이 있냐고 제기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이를 가리켜 ‘업무 방해’라며 징계 사유로 삼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습니까”라며 총장에게 울부짖은 학생에겐 “폭언”을 했다고 징계 사유를 댑니다. 이게 ‘헌법학자’인 성낙인 총장의 4.19 정신인가요?
심지어 특정 집회에 없던 사람을 가져다 붙여 “참여 및 주도” 했다고 징계 사유로 적시하기도 합니다. 증거도 없이 징계 의결을 했다는 게 밝혀진 것입니다.
징계 당사자 학생들은 어떻게 싸워 왔나요?
징계 당사자들은 징계 직후부터 공동대응을 결정하며 ‘부당징계철회! 시흥캠퍼스 강행 중단! 투쟁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그리고 징계를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학내·외 수많은 학생과 단체를 모아 부당 징계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징계를 완전히 취소하라는 서명에는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8명과 학생·시민들 수천 명, 수백 개 시민·사회·정치·노동 단체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3월 개강 이후에도 학생회·학내 단체들과 함께 징계 취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학생 대표자 102인의 연서를 받아 성낙인 총장에게 서한도 보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아직 아무 답변이 없습니다. 곧 임기가 끝나는데, 새 총장이 뽑힐 때까지 버티다가 도망갈 생각인 듯합니다.
학생들은 완전한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오늘도(6월 7일) 학내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학교 측이 제출한 서면 내용도 폭로하며 재판과 종강을 앞두고 진행된 학내 집회입니다.
6월 8일에는 학교 측 증인을 심문하는 재판이 있습니다. 이날은 법원 앞에서 성낙인 총장을 규탄하고, 징계 무효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입니다.
6월 18일 이사회에서 새 총장이 선출되는데 임기 시작일이 7월 20일입니다. 징계 1년이 되는 날이죠. 한 유력 후보가 “교육자적 입장에서 볼 때 징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당연히 저희는 성낙인 총장이 물러나기 전에 ‘결자해지’ 하라고 요구할 텐데, 새 총장에게도 징계의 부당성을 강력히 제기할 생각입니다.
학교 측은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했는데도 ‘학적부에 징계 사실을 적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시나요?
2017년 10월에 있던 국정감사에서 성낙인 총장에게 ‘징계를 해제할 거냐’는 질문이 나오자, 성낙인 총장은 “징계를 신속히 해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의원이 ‘징계가 해제되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그는 “총장이 징계를 해제하면 … 소송 자체도 없어진다”고 답했습니다. 국정감사 이후 여러 담화에서도 징계를 해제해 소송을 끝내겠다고 여러 번 말했죠.
그러고 불과 2개월 뒤인 12월 7일, 시흥캠퍼스 착공식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에 사실은 ‘잔여 효력만 해지하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성낙인 총장이 ‘징계 해지’를 말한 것은 ‘비민주적’이라는 일각의 비난을 모면하면서 시흥캠퍼스 사업은 그대로 추진하려는 꼼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낙인 총장에게 학생 징계는 이후 시흥캠퍼스 추진과 학생들에 대한 탄압의 정당성이 걸려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요구에 답변조차 안 하는 듯합니다.
지금은 징계가 해제된 상태여서, 이 소송의 승패에 따라 저희가 당장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시흥캠퍼스 추진의 정당성을 지키려고 집요하게 학생 징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학생들도 학교 측의 위선과 시흥캠퍼스의 문제를 폭로하며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여곡절 끝에 승소하더라도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혹여 징계 절차의 위법성만 인정된다면, 과거 고려대학교 측이 징계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처럼 징계 절차만 다시 잘 지켜서 재징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 학생지원과 직원은 〈서울대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승소한다면 학교는 법원의 판시사항에 따라 징계 사유와 양정 등을 조정해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12명에 대한 징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향후 서울대에서 학교 정책에 반대하며 나설 때에도 이 점은 중요한 정치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징계가 절차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부당하다는 점을 제기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건가요?
시흥캠퍼스 추진에 맞서 200일 넘게 투쟁을 벌였을 때, 학교 당국은 “너희들이 불가능한 요구를 내걸며 수백 일 동안 대학 운영에 지장을 준 불법 점거를 했다”고 매도했습니다.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학생들과 시민·사회·정치·노동단체들의 연대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박근혜를 끌어내린 경험이 있습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단순히 박근혜 개인만이 아니라, 박근혜가 추진한 여러 적폐들을 제기했습니다. 서울대 학생들도 촛불 광장에 나갔을 때 연서명, 모금 등을 비롯해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신자유주의 대학 기업화 등이 일소되길 바라는 촛불들의 지지가 있었던 것이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서울대 학생들의 투쟁을 기억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부당한 징계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도 알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박근혜는 탄핵당했지만, 대학을 비롯한 이 사회 곳곳에는 아직 많은 적폐들이 남아있고, 적폐들에 맞선 저항을 탄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일부로서 투쟁하고 있는 서울대 징계 당사자 학생들에게 앞으로도 많은 연대와 지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