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석상의 폭력 난동 사태는 아연실색과 비애만을 안겨 준다. 당권파의 분파주의와 종파주의가 도를 넘은 소치다. 물론 모든 분파주의자와 종파주의자가 같은 진보 운동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12일의 행위는 막장 양아치나 할 짓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행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짓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토론과 논쟁, 비판의 자유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아니라 주먹부터 날아오면 도대체 누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가.
진보진영 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개무시는 스탈린주의의 특징이다. 스탈린주의는 당과 계급을 동일시할 뿐 아니라 당과 국가도 동일시하므로 자신들의 운동이 낡은 국가 안에서 새로운 국가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여긴다.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억압적인 자세가 나타나는 이유다. 또한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자행된 선거 부정도 목적은 언제나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스탈린주의의 실용주의적 도덕관과 관계 있다.
물론 당권파는 자신들의 선거 부정 행위가 없었다고 원천 부정한다. 선거 진상보고서는 자신들을 당권파의 지위에서 제거하기 위한 순전한 날조라는 것이다. 이 음모에는 비당권파뿐 아니라 조중동 등 우파 언론과 공안 검찰도 가세하고 있는 것으로 그들은 본다. 자신들은 박해받는 저항자라는 자기 인식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설사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이슈는, 설사 소규모일지 몰라도 어쨌든 선거 부정이 벌어졌고 이것이 선거 부정이 광범했을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진보적 노동자 대중 속에서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실제로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권파는 지엽 말단의 반증들을 들며 선거 부정 사실이 존재했다는 중요한 본질적 문제 자체를 흐리고 회피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접근법은 근본적이다. 조금치도 선거 부정 사실이 없었다고 아예 수습 논의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 부정이 광범했다는 공식 조사 보고서를 만천하에 공개한 비당권파와 화해 불가능한 입장이다.
엄밀한 실증적 자세로 살펴보더라도 선거 부정이 최소한 소규모라도 존재했음은 명백하다. 당권파를 제외한 다른 계파들의 후보들이 사퇴한 것은 이 사실과 이 사실의 잠재적 파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 중 일부는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 다함께(노동자 연대 다함께)가 지지한 후보들도 포함돼 있다.
현 파행 사태의 원인은 당권파만이 책임지지 않겠다고 버티는 데 있다. 그들은 선거 부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근본적 입장 때문에 책임진다는 자세가 나올 수 없다. 만약 물러선다면 책임진다는 자세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 고립무원을 면하고 압박을 피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일 게다.
그러나 설사 당권파가 당 안팎의 압력에 굴복해 물러날지라도 문제가 남는다. 진성당원의 절반에 이르는 3만 5천 민주노총 노동자들과, 당원은 아니지만 통합진보당이 잘되기를 바라는 수십만 노동자ㆍ청년들의 마음에 통합진보당이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줬다는 기정사실이다.
그리고 심상정ㆍ유시민 공동대표들이 남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체政體는 존중할지 몰라도 그들도 당내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가 알기 때문에도 심란하다. 비록 스탈린주의자들처럼 거칠고 방약무인한 식으로 비민주적이진 않을지라도 말이다.
우리 단체는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긴급 특별대의원협의회를 열어 통합진보당 집단 탈당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노총 리더들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진보 운동의 단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통합진보당이 더는 진보 정당이 아니게 돼서가 아니다. 여전히 진보적(‘좌파’의 완곡어) 정당이긴 하되 결함투성이 진보 정당임이 만천하에 드러나서 더는 유일한 진보 정당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어서다.
더 좋은 건 민주노총 전현직 리더들이 아예 새로운 노동계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그 편이 통합진보당의 재활용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일 수 있다.
2012년 5월 14일
노동자 연대 다함께 운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