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가 2월 5일 발표한 성명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공범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2월 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다. 핵심 인물로 이재용과 함께 구속됐던 장충기, 박상진, 최지성도 감형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또한 법원이 적폐의 일부임을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민주노총은 “판결의 결과로 석방된 것이 아니라 석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판결문이 작성”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영수 특검팀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폐 청산을 염원하며 촛불 운동에 동참했던 평범한 대중, 직업병과 노조 탄압(해고 등)으로 고통받아 온 삼성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분통 터지는 결과다.
선고 직후,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 지난겨울 온 국민이 촛불을 들어 이재용을 구속시켜 여기까지 왔는데, 판사 몇 명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삼성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파헤치며 싸워 온 ‘반올림’은 “수조 원의 차명계좌 비자금 조성,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 제공, 노동조합 파괴 등의 범죄가 이제 끝나기를 바랐다”면서, 이재용과 사법부가 사법 정의를 파괴한 “공동정범”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재용은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는 징역 5년을 받았었다. 삼성 직업병 피해 가족과 반올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은 이 판결도 “범죄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라고 비판했다. 특검도 즉각 항소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 13부 부장판사 정형식)는 1심보다도 한참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재벌 총수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관례’보다도 낮다.
특검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대통령과 그 측근에게 뇌물을 준 사건으로 정경유착 사건의 전형”이라며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특검은 항소심에서 안종범 수첩과 말씀자료, 비서관들의 증언, 박근혜와 최순실의 경제적 관계, 뇌물을 준 대가로 이재용이 삼성에 대한 지배력을 얻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원은 특검이 입증한 혐의를 사실상 전면 부정했다. 법원이 인정한 혐의는 승마 지원에 대한 뇌물 혐의 정도다.
이재용의 삼성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을 냈다. 이 재단들을 위한 모금을 박근혜의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증거(전 전경련 부회장의 증언)도 있다. 특검은 재단 출연뿐 아니라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주도한 스포츠영재센터와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위한 승마 지원 등까지 삼성이 뇌물 440억 원을 바쳤다고 했다. 이윤을 지상 최대 가치로 삼는 기업주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이렇게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이 과연 앞뒤가 맞는 말일까?
전 청와대홍보수석비서관 김성우는 박근혜와 대기업 총수들의 독대가 “윈-윈”하는 자리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대통령과의 부정한 거래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켜 얻게 된 이재용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과 경제적 이익은 다름 아닌 뇌물의 대가”(박영수 특검)다.
“술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박영수 특검팀은 이렇게 비판했다. “이재용이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항소심 판단은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의 승계작업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한 것에 대해 “합병 등 개별 현안이 성공에 이를 경우 삼성전자 등의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등 전후 모순되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특검팀이 제출한 증거 등을 재판부가 대부분 무시했다고도 했다. 이재용의 형량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재산국외도피혐의가 무죄가 된 것에 대해서는 “재산을 국외로 도피할 의사가 아니라 뇌물을 줄 뜻에서 해외로 보냈다는 것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일갈했다.
이토록 뻔한 사실을 앞에 두고도 이재용은 박근혜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펴 왔다. 2심 재판부도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이 우파에게는 청신호로 느껴질 것이다. 당장에 자유한국당 홍준표는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기세등등해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재용이 “희생양”이라면서 2심 재판부를 두둔하고 나섰다. 기업들을 더는 “외풍”에 휘둘리지 않게 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선고를 앞두고 있는 롯데 신동빈도 오늘 판결을 보면서 적잖이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최측근들만 단죄하는 선에서 멈추라는 신호인 듯하다. 아마 지배계급 내 여론일 듯하다. 즉, ‘적폐 청산’을 기업인들에게로까지는 확대하지 말고 적당히 끝내라는 메시지를 문재인 정부와 검찰에게 던진 것이다. 최근 사법부는 전 국방장관 김관진, 이명박 정부의 전 비서관 장석명, 전 국정원 차장 최윤수 등의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그 자신이 지배계급의 일부로서 계급 세력 균형에서 쉽게 밀리지 않겠다는 경고였던 셈이다.
반면, 그 부패하고 악독한 박근혜 정부에 저항했던 민주노총 한상균 전 위원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금도 복역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한상균 전 위원장을 사면하지 않고 도리어 2년간 수배돼 고초를 겪은 민주노총 이영주 전 사무총장을 구속한 것도 적폐 청산 대상에 반노동·친기업 정책은 포함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혀 우파들을 더 고무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우파 정권이 노동계급에 고통을 강요한 것을 바로잡는 데서도 촛불의 염원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이는 민주당도 노동계급 착취와 천대 문제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재용과 박근혜, 부패 비리범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응징해야 한다. 그것이 눈비 맞으며 이 파렴치범들을 구속하라고 요구했던 수백만 촛불이 세우려 한 정의다.
촛불 운동의 염원을 정면에서 거스른 부정의한 법원을 규탄한다!
2018년 2월 5일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