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투기 대책에 대한 불만은 단지 투기세력의 볼멘소리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노동자·서민 사이에서도 투기 세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싹트고 있다. 지난 19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사람들은 24퍼센트에 그친 반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사람은 34퍼센트에 달했다(〈한국갤럽〉). 부정 평가자들은 그 이유로 투기는 못 잡아 집값은 오르게 놔 두고 있으면서 풍선효과 등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 정책이 효과를 못 보고 있거나 근본적이지 않다는 점 등을 주되게 꼽았다.
2018년 첫 주에 강남 4구의 집값이 한 주에 1억 원씩 뛸 만큼 투기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문재인 정부가 반년 만에 쏟아낸 부동산 대책이 무려 여섯 차례나 됐다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다. 물론 강남 집값 상승세가 요 몇 주 새 잠깐 주춤했다고는 한다. 올해부터 부활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담금 예상액이 제법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국토교통부의 발표로 인해 일정 부분 강남의 투기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재건축 연한 연장안이 정부에서 검토 중인 것도 한몫한 듯하다. 그러나 규제 도입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강남 집값 오름세는 기본적으로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충격이 가신다면 다시금 상승세가 가팔라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현 상황을 빌미 삼아 ‘정부가 시장을 감히 이기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억지 논리를 펼치고 있다. 강남 땅값이 오르는 것은 ‘구조적 공급 부족’이나 ‘강남 8학군’ 때문이라 규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월 29일치 〈한겨레〉 기사를 보면, 실제 강남에서 재건축 등으로 없어지는 물량과 준공 물량은 비슷한 수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강남 8학군’ 선호 때문에 강남 지역 주택 매입이 최근 늘고 있다는 말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다고 한다. 요컨대 보수언론들은 투기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서 사실을 오도하면서 정부·여당의 미흡한 규제 시도마저 비난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투기 억제·주거 복지 정책은 턱없이 불충분하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만 해도 그렇다. 이 정책으로 인해 일부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가격 상승세가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내 풍선 효과가 이어지는 듯하다. 이미 투기 세력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강남 내에서도 재건축과 무관한 일반 아파트들의 가격 오름세는 가파르다. 또한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나 강북 재개발 단지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의 ‘대체재’로 여겨지고 있고, 분당·과천 등 신도시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요컨대 전반적인 집값은커녕 강남 투기 역시 제대로 못 잡은 것이다.
게다가 재건축 개발 이익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것보다 훨씬 철저하게 환수돼야 한다. 상당히 정치적으로 온건한 NGO인 경실련조차도 지금과 같은 일회성 대책이 아닌 구조적 대책이 요구된다며 “부동산 개발을 통한 개발 이익을 보장하는 비정상적인 재건축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할 것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투기 억제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도 심히 의심스럽다. 규제 강화에 관해서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예컨대 그 자체로는 충분히 강력한 투기 규제책도 아닌 재건축 연장안에 관해서조차도 그렇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재건축 연한 관련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아직 정해진 정책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부동산 보유세 인상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극도로 미온적인 태도다. 보유세 개편 논의 과정에서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과세 강화는 공식 추진되는 듯하다. 문제는 강남에 있는 20억짜리 아파트 한 채만 분양 받아도 웬만한 집 세 채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셈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가의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를 인상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불공정한 처사일뿐더러, 다주택자들이 다른 지역에 보유한 아파트를 팔고 강남에 집중하는 ‘똘똘한 한 채’ 현상을 심화시켜 강남 투기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 의장은 초고가 1주택 보유세는 당론으로 정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청와대 산하 조세특위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공을 넘겼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눈치를 보는 것이다.
소심함의 극치
박주민 의원 등은 초고가 1주택 보유세 과세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적잖은 듯하다. 김동연 부총리도 지난 23일 고가 1주택자 보유세 인상 검토를 암시하는 듯한 인터뷰를 했다가 하루 만에 부인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부동산 보유세 인상 찬성 여론이 10명 중 7명으로 압도적이었는데, 정부·여당의 태도는 그야말로 소심함의 극치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투기세력에 대한 과세에 이토록 소극적이지만, 부동산 보유세 인상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는 더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이는 투기를 잡는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분배 상황과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얼핏 보기에 부동산 시세차익으로 얻어 낸 수익은 토지 자체에서 비롯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토지 보유를 통해 얻은 소득도 결국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생산해 낸 가치를 전유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혔다. 따라서 부동산 보유나 재건축 등을 통해 축적된 부는 다시 노동계급의 손에 돌아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비록 빈약할지라도 공공주택의 확충과 주거복지의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관련기사: 〈노동자 연대〉 232호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위한 재원은 바로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벌어들이는 자들에 대한 과세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극도로 미온적이거나 심지어는 투기 세력에 일관되게 맞서고 있지도 않는 정부·여당이 이를 알아서 시행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의 주택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친자본가적 정권에 대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