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수많은 결점에도 현존 자본주의 화폐질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비트코인이 미래에는 ‘대안적 화폐’로 널리 인정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자, 비트코인 시세는 급속히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애당초 비트코인이 현 경제 질서를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기대부터가 과장된 것이었지만(관련 기사 ‘비트코인 열풍: 투기에 그칠 것인가,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인가’), 그런 기대치를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비트코인 가격은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치솟았다.
2010년 4월에 1비트코인은 0.14달러도 채 되지 않았으나, 시세가 정점에 이른 지난해 12월 17일에는 무려 2만 달러(약 2160만 원)를 넘기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세가 급등락을 반복한다. 12월 22일에는 하루 사이에 30퍼센트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1만 5000달러 주변에서 시세가 머무르는 중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버블임은 너무 명백하다. 비트코인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오로지 시세 차익뿐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수익도 얻질 못한다. 그래서 더그 헨우드는 미국 좌파 잡지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지적했다. “더 전통적인 투기적 자산들과 달리 비트코인의 값어치는 완전히 비물질적이다. 주식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윤에 근거하고, 채권은 미래의 이자 지불에 대한 청구권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에는 그런 것이 없다. 비트코인의 값어치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쳐줄 값어치일 따름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각종 금융 자산을 ‘가공 자본(fictitious capital)’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주식은 실제 투자된 생산설비들과 별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주식 소유자들은 투자된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윤의 일부를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이처럼 미래에 얻게 되는 소득에 기반해 주식 가격이 결정된다. 화폐 자본이 이처럼 미래에 회수가 불확실한 이윤에 대한 청구권인 금융자산들에 투자되기 때문에 금융 버블이 붕괴한다든지 따위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매우 불안정한 위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지적이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배당·이자 등의 형태로 미래의 수입을 청구하지도 못한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가공 자본보다도 어찌 보면 더욱 가공적인 투기 자산인 셈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버블이 터질 경우 이전의 버블 붕괴들처럼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들 만한 위기 상황이 발생할까? 아직은 그럴 정도로 사태가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시드니 공대 아드리안 리 교수의 조사를 보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과 같이 경제 전체를 뒤흔든 버블에는 수조 달러에 이르는 돈이 엮여 있었는데, 비트코인 버블에 엮인 돈은 수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은 현재 약 1000억 달러로, 이는 골드만삭스 시가 총액에 이르는 거금이지만 금융 위기를 일으킬 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비트코인 버블이 커지는 속도는 대단하지만 역사에는 그보다 더한 버블들도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어, 투기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버블인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지금의 비트코인 버블을 비교해 보자. 튤립 버블의 경우 1636년 9월에서 1637년 2월 사이에, 튤립 구근의 가격이 4개월 만에 무려 2200퍼센트나 상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올렸다. 이에 반해 비트코인은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2017년 8월에서 11월까지 253퍼센트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비트코인 버블이 튤립 버블보다 더 커지면 비트코인 버블의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 다소간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의 미래가 어떻게 끝나든 비트코인 버블은 분명히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한 ‘비이성적 과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의 여러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 이윤을 위해서 그 어떤 모험도 감수하는 체제 하에서는 그런 과열이 결코 유일무이하지 않다.
비이성적 과열
이렇듯 조금만 들여봐도 비이성적 과열이 분명한 비트코인 투기 버블에 왜 너도나도 열광일까?
심지어는 수능이 끝난 고3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비트코인 시세를 시시각각 본다고 한다. 비트코인에서 파생된 암호화폐를 참칭한 ‘비트코인 플래티넘’ 사기 사건은 한 고등학생이 수백만 원을 벌려고 일으킨 조작극이라고 한다. 대체 왜 모두가 이런 광기에 중독된 마냥 뛰어드는 것일까? 심지어 일부는 불법 행위에 뛰어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비트코인 앱 사용자는 18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 30대가 32.7퍼센트로 가장 많고, 10대와 20대도 무려 30.5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최근 비트코인 투기에 뛰어든 청년들을 취재한 기사들에서 이런 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쌓아 놓은 것도 없고 공부한 것도 없지만 코인은 감각과 운만 있으면 ‘흙수저 탈출’이 가능하다.”
최근 일부 회복이 감지되긴 하지만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여전히 불평등과 실업은 만연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노동자와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이들 중 적잖은 수가 비트코인 거래와 같은 거대한 도박장에 뛰어들어 일확천금을 노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투기적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비이성적 과열도 조장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험한 도가니 속으로 끌어들이는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인 체제다. 우선 순위가 이윤 중심에 놓여 있는 체제를 뒤엎어야만 이런 비이성적 과열이 반복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