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국토교통부가 세 차례나 발표를 미룬 ‘주거복지 로드맵’(이하 로드맵)을 드디어 발표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들은 투기를 잡고 빚내기 쉽게 해 줄 테니 알아서 주택을 마련하라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부 재정을 투하해 공공주택을 늘리는 정책이 포함돼 있어 진일보한 개혁인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좀 더 살펴보면,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로드맵에서 정부는 2022년까지 공공임대 65만 가구, 공공지원 민간임대 20만 가구, 공공분양 15만 가구 등 총 1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획만큼 공공주택 공급이 늘어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주택 150만 호 공급을 계획했지만, 실제 임대 중인 공공주택 수는 약 32만 호 증가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에 향후 10년간 장기임대주택 150만 호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고, 2007년에는 10년간 공공임대주택 260만 호를 지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임대 중인 공공주택 증가분은 15만 7000호 정도였다.
게다가 정부 계획대로 공공주택이 공급된다고 해도 여전히 여러 문제들이 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 20만 호 계획은 대부분 민간임대업자에게 대출을 쉽게 내 주고, 땅값을 할인해 주며, 인허가에 특례를 주는 것이다.
공공임대 주택 공급 계획 역시 문제가 많다. 그중 절반은 민간 주택을 정부가 임차하거나 매입해 다시 임대를 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임대한 주택을 재임대하는 것은 임대료를 조금 깎는 수준이라 공공임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민간 주택을 매입한 후 임대해 주는 것이 공공성이 조금 더 있겠으나, 주택 가격이 높은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가 목표한 물량을 저렴하게 공급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외에도 정부가 직접 건설하겠다는 임대주택 35만 호 가운데 7만 호는 분양 전환 임대이다. 분양 전환 임대는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아 지으면서 임대 기간이 끝난 후에 건설사가 판매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서 건설사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요컨대 정부가 발표한 공공임대 65만 호 가운데 장기임대주택은 28만 호 정도밖에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때 장기공공임대주택 85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는데, 여기에도 한참 미달하는 셈이다.
빚내서 집 사라
이번 로드맵에 포함된 ‘생애단계별·소득수준별 맞춤형 주거지원’은 ‘이자를 싸게 해 줄 테니 빚내서 집 사라’는 기존 정책의 연장선이다. 민영주택 공급 확대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공공택지를 건설사에 싸게 매각하는 내용도 있다.
청년 주거 지원 방안은 대출 제한·한도를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두드러지며, 신혼부부에 대한 지원 방안도 역시 전세자금 대출을 도와 주겠다는 내용이 강조돼 있다. 이런 정책들은 정부가 직접 주거 복지를 위해 많은 돈을 쓸 수는 없으니, 대출을 싸게 중개해 주겠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도 부자들의 자산을 빼앗아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크게 올리기는 부담스러워 한다. 문재인 정부가 자본가와 노동계급 중 어느 계급의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물론 정부와 자본가들도 주택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주택 문제로 빈곤이 심각해지고 ‘사회 혼란’이 생기는 것은 그들에게도 관리하기도 힘든 골치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 문제는 엥겔스가 지적한 바 있듯이 바로 자본가 스스로의 이해관계와 ‘시장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몸부림 때문에 일어난다.
노동계급은 자본가들에게 착취받기 때문에 그중 다수는 주택을 소유할 만큼 넉넉한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동시에, 임금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통근할 수 있는 거리에 거주해야만 한다.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면서도 도시의 열악한 주택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출 금리를 조금 깎아 주는 방식은 주택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는다.
결국 자본가들의 부와 소득을 노동계급에게 재분배해서 주택 문제 해결에 쓰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계급 전반의 소득을 개선하거나, 부동산 보유세를 올려 주거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 증대로 주거복지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으나,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또한 이번 대책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거 정책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보다는 건설 자본과 임대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설계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지적했듯이, 도시의 ‘건조 환경’은 자본가들이 잉여자본을 투자해서 수익을 남기기에 용이한 부분이기도 하고, 정부 입장에서는 과잉자본을 배출시키기에 좋은 부문이다.
이런 점들도 ‘시장 질서’에 근본적으로 맞서는 대안을 추구해야만 주택 문제를 진정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는 노동계급이 투쟁을 통해 뒷받침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