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오후 3시 53분경, 충청북도 제천시의 8층짜리 스포츠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사망자가 29명, 부상자가 36명 발생했다.
화재 규모를 키운 결정적 원인은 건물 외벽 마감재였다. 외벽에 스티로폼을 세우고 페인트로 마감하는 ‘드라이비트’ 공법은 공사 기간이 짧고 시공비가 싸지만 불에 매우 잘 타, 화재 발생 시 불쏘시개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새까만 유독가스를 내뿜는다. 사망자 대부분은 이 유독가스에 질식사했다.
130명의 사상자를 낳았던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나 2014년 고양터미널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뿐만 아니다. 300개가 넘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벨은 늦게 울렸고, 많은 대피유도등이 켜지지 않았으며, 소화기는 대체로 충전이 안 돼 있었다.
최근 소방 안전점검에서 화재가 난 건물의 이런 설비 불량이 감지됐는데도 관할소방서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고 당연히 후속 조처도 없었다.
복도가 좁고 계단은 적어 대피하기에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였다고도 한다.
안전을 도외시한 건물주 책임이 큰 것이다.
소방 인력 대폭 충원하라
제천소방서는 오후 4시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4시 30분부터 진입을 시도했다. 대응이 늦고 서툴렀던 탓에 인명 피해가 커진 것 아니냐는 질책의 여론도 있다.(꼼꼼히 따져 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는 사건 전체로 봐서는 책임 전가 성격이 짙어 보인다. 건물 자체가 이미 안전 대책 미비로 화재에 취약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응 능력을 결정할) 소방대 지원 자체가 너무 열악하다. 안전 규제와 점검, 소방대 투자 모두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다.
한 지방직 소방관은 이렇게 말했다.
“충청북도 제천시[소방서]는 광역시 소속이 아닌 도 소속입니다. 사건·사고는 광역시나 도나 어디든지 날 수가 있[지만] 도 소속 소방[서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 차량대비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소방]차를 끌고 갈 사람이 없어 끌고 가지도 못합니다. … 소방 능력이 없다기보다는 능력을 발휘할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소방공무원들은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뉘는데, 지방직이 전체 소방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방직 소방공무원들의 수는 약 4만 5000여 명인데, 이들이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하면, 필요한 정원에 3만 6000명이나 부족하다. 인력 부족 탓에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위험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임금은 낮고 대우는 형편없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6명이 순직하고, 평균 수명은 58세에 불과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전 투자 삭감의 공동책임자들인 자유한국당은 2018년 예산안을 놓고 “노는 공무원 왜 늘리냐”며 소방관 충원 예산을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족한 소방대 인력을 2022년까지 점진적으로 충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8년 소방공무원 신규 채용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비슷하거나 약간 적은 수준에 그쳤다. 내년 예산안 중 정부의 공무원 증원에서 가장 많이 배정된 것은 경찰이었다. 소방관들의 숙원인 국가직 전환도 2019년부터나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반복되는 참사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끔찍한 안전사고가 반복돼 왔다. 매번 이유도 비슷하다.
공공의 이용물을 만들 때부터 안전 규제가 취약하고 운영 과정에서도 안전 점검은 부실하며, 안전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비용 절감을 통한 이윤 극대화 논리가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안전 점검에조차 비용 효율 논리를 들이댄다.
사고가 나면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규를 고치니 어쩌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지만, 관심이 잠잠해지면 이내 예전으로 돌아간다. 기업주나 시설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이윤 벌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날뛰고 정부와 기성 정치권은 이런 압력에 타협한다.
제천 화재 사고가 그저 반복되는 참사의 최신 목록쯤으로 끝나선 안 된다. 게다가 그런 ‘값싸고 위험한’ 시설의 주된 이용자는 대부분 노동계급이다.
정부는 당장 소방 인력을 충원하는 등 안전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건물들을 철저히 전수 조사해서 안전 조처들을 강제해야 한다.
나아가 근본적으로 이윤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이 먼저인 사회를 위해서는 노동계급 스스로 자본주의적 이윤 시스템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