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장관, 세월호 유해 발견 은폐 알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김영춘 해수부 장관을 해임하고 은폐 관련자들 처벌하라
해수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장례식 직전인 17일에 유골을 발견하고도 은폐한 사실은 충격이었다.
역겹게도 자유한국당이 앙앙대며 이 사안을 자신의 정치적 회생에 이용하려고 한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들의 매정하고 야비한 대응 때문에 임기도 못 채우고 정권에서 쫓겨난 자들이 감히 ‘유가족 모욕’ 운운한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은폐 정부라고 욕하던 바로 그 순간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했던 ‘사회적 참사 특별법’(2기 특조위법)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었다!
본지는 22일에 이 은폐 사실을 최초 단독 보도했고, 여기서 해수부의 인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관련 기사: 해수부, 세월호 유골 은폐 의혹: 미수습자 장례식 직전인 17일 발견했는데 숨겨)
결국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은폐 사실을 20일 오후에 보고받았다고 밝혀, 이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김영춘 장관의 해명대로라면, 세월호 적폐의 일부인 수습본부의 현장 간부들이 17일부터 3일간 유해 발견 사실을 숨겼고, 뒤늦게 이를 보고받은 장관은 22일에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이틀간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 장관이 뒤늦게라도 알았다면 마땅히 할 일은 곧바로 해당자들을 문책하고 사실을 공개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영춘 장관의 행위는 백 번 양보해 은폐 지시까지 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은폐 행위의 한 고리에 엮여 있다.
그렇다면, 김영춘 장관이 정말로 미수습자 발인이 끝난 20일에 보고를 받은 것인지도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 은폐 사실이 알려지면 그 파장이 어떨지 모르지 않았을 테고, 더구나 박근혜 때처럼 정부가 나서서 축소 은폐 노력을 하는 상황도 아니고, 무엇보다 김영춘 장관이 20일에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 문제 제기다. 또 하나, 이런 위험 부담이 큰 은폐 행위에 가담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묵인하면서 해수부 장관은 윗선과 아무 상의를 하지 않았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대중의 합리적 의심 때문에 해수부 장관 사퇴 요구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다. 많은 대중이 세월호 참사 해결을 응원했고, 그것은 박근혜 파면과 정권 교체의 중요한 한 동력이었다. 세월호 참사 해결은 적폐 세력에 대한 새 정부의 책략적 무기가 아니다. 대중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정부의 의무일 뿐이다. 이 의무를 방기한다면 새 정부를 지지해 달라고 말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차일피일
그러나 청와대와 김영춘 장관의 반응 모두 실망스럽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데, 김영춘 장관이 수습본부장을 보직 해임하겠다고 말한 것 말고는 어떤 조처도 없다.
한때 ‘거리의 세월호 변호사’라고 불린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김영춘 장관이 은폐 사실을 알았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김영춘 장관 사퇴 요구는 과도하다”고 한 것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입장이었다.
아마 박주민 의원의 입장은 그 뒤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생각을 밝히는 데 모종의 압력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24일 저녁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유경근 씨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영춘 장관 사퇴 요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수습자 가족들도 해수부에 책임을 묻진 않겠다고 했다.
보수 야당들이 적반하장으로 날뛰는 것을 보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마음 한 켠에 답답함과 쓰라림이 있으면서도 그런 입장을 냈으리라는 것도 안다. 무엇보다 곧 만들어질 2기 특별조사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놓고 앞으로 민주당과 긴밀한 협의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 큰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우파들은 사사건건 세월호 문제 해결을 방해하려 들 테고, 민주당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우파들의 압력을 이유로 실질적인 개혁 조처들을 차일피일 미룰 텐데, 그럴 때마다 ‘관용’을 베풀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잘못을 덮고 넘어가 줘야 할까? 그러면 세월호 운동은 목적인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중 무엇도 제대로 얻어 내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닐까?
보수 야당들이 날뛸 수 있게 한 원인 제공은 누가 한 것인지, 이런 식의 ‘관용’이 앞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2기 특조위
그런 점에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회적참사 특별법’(2기 특조위법)도 균형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이 법 통과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민의당 측 요구를 대폭 받아들여 유가족이 애초에 원했던 안에 견줘 대폭 후퇴했다는 사실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예컨대 유가족들은 민주당이 전체 특조위원 중 3분의 2를 추천하고 자유한국당은 이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려 했지만, 최종 민주당은 9명의 위원 중 4명을 추천하고 자유한국당도 3명이나 위원을 추천하게 됐다.
조사 기간도 ‘기본 2년, 필요시 1년 연장’에서 ‘기본 1년, 필요시 1년 연장’으로 후퇴했다. 상설 특검도 후퇴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 법안의 통과를 대단한 성과라며 자화자찬한다. 유가족들은 1기 특조위 때에도 그랬듯이, 불가피하다는 심정으로 통과된 안을 지지한 것 같다. 애통한 일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3년 전과 똑같은 압력을 받게 된 이유가 뭔지도 돌아봐야 한다.
사실 1기 특조위가 겪은 곤경, 그리고 2기 특조위가 국회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애초 바람대로는 되지 않을 것임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문재인이 대선에서 정부 차원 조사위원회 직접 가동 공약을 내걸었을 때, 환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결국 이 공약을 폐기했고, 국가기관 내 책임자 처벌에는 진척도 없고 따라서 진정성도 느낄 수 없다.(예컨대 세월호 참사 책임자의 한 명을 부활한 해경의 고위 보직에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세월호 적폐’를 청산 대상 1호로 삼는 것인지 이제는 의문이 든다. 이번 유골 은폐 사건도 정황을 보면, 해수부가 미수습자 가족들의 싸움을 한시라도 빨리 정리해서 부담을 덜려고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수로 추측된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지지는 붙들어서 ‘촛불 정부’라는 이름표는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 절충의 결과는 여전히 미덥지 못한 진상조사 기구가 생긴 것이다.
운동의 최대 목표가 개혁입법으로 돼 있고, 그래서 민주당에 기대게 되고, 그러다 번번이 뒤통수를 맞고, 비판과 하소연도 해 보지만 결국엔 또다시 민주당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리 요구 실현의 진척이 더딘 것은 아닐까?
세월호 운동은 우파들의 공격과 위선에는 단호하게 맞서면서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한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의 잘못도 어물쩍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유해 발견 은폐는 냉혹한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 아래 미수습자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박근혜 아래에서나 볼 법한 충격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고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김영춘을 포함한 해수부의 관련자 모두에게 즉각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