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
안전한 먹거리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
8월 14일, 두 농장의 달걀에서 살충제인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 허용치를 초과해 검출됐다. 그 뒤 정부가 18일까지 전체 산란계 농장 1천2백39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 달걀 생산량의 4.3퍼센트를 차지하는 49개 농장이 기준치를 넘겨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달걀 유통과 판매가 일시 중단됐고, 많은 사람들도 식당이나 집에 구매해놓은 달걀을 먹어도 되는지 노심초사 해야만 했다.
살충제 달걀의 직접적 원인은 닭진드기를 없애려고 인체에 독성이 있는 살충제를 다량 사용한 것이다. 닭진드기가 늘어나면 닭이 스트레스를 받고 약해져 달걀 생산량이 떨어진다. 농가에선 여름에 극성을 부리는 닭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는데, 내성이 생겨 기존 제품들이 잘 듣지 않자 더 강력한 제품을 찾아 나선 것이다. CBS 라디오와 인터뷰한 한 산란계 농장주는 살충제가 독해서 사용할 때 방독면을 써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살충제 달걀이 나온 49개 업체 중에 친환경인증을 받은 업체가 절반이 넘는 31곳이었다는 것이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장은 살충제를 아예 사용하면 안 되는데도 살충제가 잔류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될 정도로 많이 사용한 것이다.
친환경인증은 민간 인증기관 64곳이 하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이 감독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감독해야 할 농관원의 퇴직자들이 민간 인증기관 중 5곳의 대표로 있고, 인증심사원 6백49명 중 85명이 농관원 출신이다. 이런 구조로 제대로 관리 감독이 될 리 없다. 세월호 참사 때 안전관리를 맡은 민간업체인 해운선급을 해수부가 관리⋅감독 했어야 하는데, 해수부를 퇴직한 관료들이 해운선급에 재취업을 하고 있어 유착됐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부패한 구조는 못 본체 하고 보여 주기 식 땜질 처방에만 매달리고 있다.
사실 지금처럼 좁은 우리에서 닭을 사육하는 공장식 밀집사육은 근본에서 닭을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닭진드기를 잡으려고 살충제를 쏟아붓고, 항생제도 남용하게 된다. 밀집사육은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쉽게 감염되고 번식하며 변이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반면 닭을 평사에 놓고 기르면 닭은 흙목욕으로 스스로 진드기를 떼어 내 살충제도 쓸 필요가 없고, 면역력도 강해진다. 따라서 사육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밀집사육
<한겨레>나 녹색당은 옳게도 이런 밀집사육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농장주, 정부, 소비자 순으로 모두 어느 정도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즉, 일정한 수준의 달걀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달걀은 가장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국내에서 1인당 연간 2백56개를 소비할 정도로 대중적인 식품이다. 달걀을 원료로 한 식품들도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다. 따라서 달걀 가격 인상은 다수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당장 지난해 조류독감 유행으로 달걀 가격이 크게 올라 전체 식료품비가 크게 오른 바 있다. 이는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삭감하는 효과를 낸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값싸면서도 안전한 식품이 필요하다. (언론보도를 보면 현재 평사에서 키우는 안전한 친환경 달걀은 한 알에 5백~1천 원에 거래되고 있다. 일반란에 견줘 약 2~4배 비싼 가격이며, 조류인플루엔자로 달걀 가격이 급등했을 때보다 더 비싸다.)
따라서 안전한 달걀을 만드는 것은 가격 인상 없이 진행돼야 한다. 필요한 비용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아예 직접 공공적 농장을 운영해 안전한 식품을 생산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식품 대기업에게 특별세를 부과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해 이윤을 얻는 자본가들 일반에게 부유세 등 세금을 부과해 마련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체력이 유지되지 않는 한 자본가들은 이윤을 얻을 수 없다.
둘째, 녹색당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즉, ‘대량’ 자체를 문제라고 보고 소규모 지역생산을 대안으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밀집사육을 중단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육 방식을 바꾸면 농장당 양계 규모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계란 생산량 자체를 반드시 줄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지를 확보하고, 충분한 재정을 투입하면 안전하면서도 비싸지 않은 먹거리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생산량 감축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달걀을 못 먹거나 덜 먹게 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저렴한 양질의 대체 식품이 없다면, 다수의 노동계급은 다른 질 나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여러 문제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에서 안전이 희생되는 과정, 가습기 참사가 일어나는 과정, ‘햄버거병’(관련 기사: ‘햄버거병’,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질병)이나 지구온난화 등은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 활동이 인간 생존의 토대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물론, 자본가들도 건강한 노동자가 필요하므로 식품과 관련된 기본적 관리는 강화하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안전 ‘비용’과 이윤 사이의 저울질은 계속될 것이고, 경쟁 때문에 단기적으로 이윤을 늘리려는 유혹과 압력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하고, 그 전에라도 이윤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의미 있는 개선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