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출근날 새벽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원 “살인과 같은 해고”를 당한 고령의 홍익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바닥에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홍익대 본관에서 “청국장 끓이고, 고등어 구워” 가며 “이사장이 나올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단단히 하고 있다.
△1월 6일 홍익대 문헌관 앞에서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1차 결의대회가 열렸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공공노조, 민주노동당 마포지역위, 진보신당 마포지역위,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등 많은 연대단체들이 홍익대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왔다. ⓒ레프트21 최병현
그래서 연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뿐 아니라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지지 방문을 왔고, 배우 김여진 씨도 달려 왔다. 심지어 <중앙일보> 같은 보수 일간지조차 이 투쟁을 보도하며 차마 비난하지 못하고 있다.
이 투쟁의 정당성과 시시비비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쥐꼬리만한 돈을 받으면서 “새벽 5시부터 저녁 6시, 심지어는 7시 30분까지”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해 온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한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익대 학생들의 ‘아름다운 연대’도 늘어나고 있다. 홍익대 학생들은 농성 초기부터 라면, 쵸코파이 등을 사서 농성장에 찾아 오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동안, 조소과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스런 지지 메시지들을 잔뜩 부착한 조형물이 농성장에 만들어졌다. 예술학과 학생 10명이 함께 농성장을 찾기도 했다.
학생들은 “금방 더러워지는 학내를 아침마다 치워 주는 노동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 싸움을 지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청소, 시설 관리, 경비를 맡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학생들의 복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야 학생들의 ‘편의’를 더 잘 돌봐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학생을 서로 이간질시키려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충돌한다’는 거짓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두가지 권리는 정확히 일치하고 있고, 이 투쟁은 노동자들의 생존권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게다가 홍익대 당국은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해 왔듯이, 학생들에게도 열악한 교육 조건을 강요해 왔다.
홍익대 당국은 쌓아 놓은 재단적립금이 5천 억(전국 2위) 가까이 있으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을, 학생들에게는 높은 등록금을 강요해 왔다. 지난해, 홍익대 인문계열 연간 등록금은 9백12만 원으로 전국 1위였다. 높은 등록금에 반해 부족한 실습과 자치 공간은 나아지지 않았다.
따라서 홍익대 노동자와 학생 들은 ‘등록금이 아니라,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라’는 요구를 하며 같이 싸워야 한다. 이런 요구와 투쟁에 도움을 주려는 학교 안팎의 모든 사람들과 힘을 모아서 홍익대 당국에 맞서야 한다.
그동안 대학 청소, 시설관리, 경비 노동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온갖 설움과 고통 속에 남 몰래 눈물을 삼켜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과 투쟁, 승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승리에는 사회적 연대와 학생들의 연대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승리의 행진이 홍익대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새벽부터 일하면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해 온 수많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투쟁의 승리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투쟁이 승리는 그런 열악한 처지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승리가 될 것이며, 그런 노동자들을 부모, 친척, 이웃으로 두었기에 누구보다 그들을 도우려고 하는 젊은 88만 원 세대의 승리가 될 것이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진정으로 지지하고 연대해야
이 투쟁 초기에 학교 측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투쟁 지지를 거부해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던 홍익대 총학생회가 1월 6일, 다행히 노동자들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 후, 온수기며 간식, 깔개 등을 농성장에 전달하기도 했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사실 그동안 ‘비운동권인 나를 뽑아 준 학생들은 이런 투쟁에 연대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홍익대 총학생회장의 입장은 매우 궁색한 것이었다. 부모님 같은 분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돼 찬바닥에 나앉게 된 것을 보고 ‘돕지 말아야 한다’고 할 홍익대 학생은 거의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내 여론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총학생회의 입장이 약간이라도 바뀐 것이다.
△지난 6일 집회현장을 찾은 김용하 홍익대 총학생회장(좌) 이숙희 홍익대분회장에게 말을 걸고 있다. ⓒ참세상
그러나 총학생회는 이 지지선언에서 여전히 “외부 세력의 학내 점거나 농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노동자와 학생을 이간질하려는 학교 측의 논리를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총학생회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려는 학교 측의 억지 논리에 맞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과연, 누가 외부 세력인가?
부모님같은 노동자를 돕겠다고 온 연세대 학생이 외부 세력인가? 옆 학교의 동료들을 돕겠다고 온 이화여대의 미화 노동자가 외부 세력인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왔다는 배우 김여진 씨가 외부 세력인가?
조합비를 내던 소속 조합원이 해고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민주노총이 외부 세력인가? 노동자들의 아픔에 함께 하겠다고 양심에 따라 달려온 이웃, 친구, 동료들이 외부 세력인가?
지금 진정으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외부 세력’과 함께하고 있는 것은 홍익대 당국이다. 새해 첫날 전원 해고라는 초강수를 둔 홍익대 당국 뒤에는 나이 많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 온 수많은 사립대 당국과 돈벌이에 눈이 먼 재단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 세력’을 운운하는 것은, 보수 언론과 지배자들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탄압하면서 써먹는 낡은 수법이다. ‘외부 세력’을 운운할 때, 그들은, 이 투쟁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의 개입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투쟁은 누군가의 ‘불순한’ 조종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열악한 처지를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노동자들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에 따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체적인 의지와 투쟁이 진보정당,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들을 이 투쟁에 연대하게 만든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함께하려는 진보정당,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들의 의도는 ‘불순’하기는커녕 정의로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 수많은 홍익대 학생들과 졸업생까지도 나서서 이런 연대를 환영하고 있다.
홍익대 총학생회가 진정으로 이 투쟁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면 더는 ‘외부 세력’ 운운하지 말고, 이 투쟁에 연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힘을 모아서 함께 싸우려고 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