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작전 범위 확대?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시민언론 민들레〉(이하 〈민들레〉)에 기고한 3월 17일 자 칼럼에서 옳게도 트럼프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비판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파병의 대안으로 문제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김 전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자율적 전개’”를 주장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청해부대 작전 범위 확대를 예시로 제시했다. 마치 그 일이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는 파병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청해부대 작전 범위 확대는 명백히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이었다.(2020년 1월 21일 발표된 노동자연대의 성명
김 전 의원 스스로도 당시 정의당 수석대변인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파병”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사실상 새로운 파병을 국회 동의도 없이, ‘파견지역 확대’라는 애매하고 부정확한 절차를 통해 감행하는 정부의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 … 독자적인 임무 수행이라고 강조하나 …
3월 1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사태에 관한 각계 공동 시국선언’ 참가 단체·개인들도 “청해 부대 꼼수 파병”을 옳게 반대했고, 정의당도 이에 동참했다. 김 전 의원의 주장은 정의당의 현재 당론과도 맞지 않는다.
걸프국들에 ‘방어 무기’ 지원?
둘째, 김 전 의원은 “이 위기는 한국에 새로운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기회를 동시에 열어 주고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의 우호국들은 자국 방어를 위한 무기 수요에 목말라 있다. 이들에게 공격 무기가 아닌 천궁·신궁 같은 방어 체계를 적극 제공하는 전략적 공세를 취할 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재고가 소진되어 가는 지금, 한국이 중동의 ‘방어 솔루션 허브’이자 신뢰할 수 있는 무기 공급선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그것은 전장에 군함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국익의 증진이다.”
그러나 친미 걸프 군주국들로 ‘방어용 무기’를 수출하는 것은 미국의 대이란 전쟁을 뒷받침하고 이란 전쟁의 장기화와 확전 위험에 일조하는 일이다.(관련 기사: 본지 577호,
좌파 정당 소속 정치인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 전쟁을 “경제적 기회” 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 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고, 현재 정의당 한반도평화위원장이다.

김 전 의원의 주장은 국익론의 위험성을 보여 준다. 국익(실체는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이다)을 강조하면, 이재명 정부의 무기 수출이나 군비 증강, 미국 패권 전략 지원 등을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그런 것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3월 23일 현재까지 정의당 내에서 김 전 의원의 〈민들레〉 칼럼을 비판한 것은 아직 찾을 수 없다.
사실 정의당 중앙당은 현재 걸프국 무기 지원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정의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주장이 김 전 의원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심쩍다.
정의당 좌파인 전환의 웹진 《도모》는 지난해 5월 대
‘중견국 연대’가 트럼프에 맞설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최근 ‘규칙 기반 질서’의 붕괴와 경제적·지정학적 불안정 심화 속에서 ‘중견국 연대’가 대안이라는 주장이 떠올랐다. 특히,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캐나다 총리 카니가 “중견국”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연설한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한편,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 속에 좌파들 사이에서도 ‘중견국 연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민들레〉 칼럼에서 “지금이야말로 ‘중견국 연대’를 결집할 역사적 기회”라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을 협력 대상으로 꼽았다.
〈민플러스〉는 미국 패권에 맞선 중견국 연대를 촉구한 이경렬 전 앙골라 대사(필명 이창천)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전 대사는 트럼프가 동맹국들에게 “뜯기고 있다는 불쾌감”을 주는 상황에서 “카니 총리의 중견국 연합 구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김 전 의원과 이 전 대사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패권 전략에 협력하는 것을 옳게도 꾸준히 비판하고 반대해 왔다. ‘중견국 연대’ 주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중견국 연대 노선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우선, 이른바 “중견국”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중간 이상 규모의 국가들을 가리키는데,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실질적 의미가 거의 없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 영국, 캐나다 등 기존 선진국들과 브라질, 인도, 한국,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 신흥국들까지 중견국으로 포괄된다.
그런데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처럼 한때 세계 패권을 두고 세계대전까지 벌였으며 지금도 제국주의 강대국들인 국가들과 한국 등이 함께 중견국으로 묶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캐나다만 해도 G7의 일원이다.
그들은 제국주의 위계 질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더 높다. 즉, 그들도 오늘날 세계적 지정학 위기의 공범들이다. 영·프·독은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제국주의간 대리전을 벌이고 있고, 일본도 중국을 겨냥해 막대한 군비 증강을 하며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보다 하위의 나라들을 보자면, 지난 2년 반 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벌인 팔레스타인인 인종 학살을 막으려고 중견국 정부들이 한 구실은 거의 없다. 몇몇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전쟁범죄(제노사이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상징적인 행위 말고는 말이다.
미국을 뺀 강대국들과 한국 등 친서방 ‘중견국’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패권 질서에 오히려 협력해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캐나다
캐나다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위한 정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고, 22일 캐나다가 속한 나토는 “나토 회원국과 일본, 한국, 호주 등 22개 나라가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모인다”고 발표했다.
카니는 중견국 연대를 연설한 다보스 포럼 불과 두 달 만에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했다. 19일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이유로 이란 정권을 규탄하는 성명에 동참했다(이재명 정부도 동참했다).
물론 캐나다는 트럼프의 압박을 받고 있고, 카니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다 트럼프로부터 미국에 합병시키겠다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카니 정부가 트럼프로부터 지키려는 것은 캐나다 지배계급의 이익이다.
지난해 카니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에어캐나다 노동자들과 우체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격했고, 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 카니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이주민 단속을 강화하고,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권리를 공격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 정부는 막대한 군비 증강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 복지에 쓸 수도 있는 예산을 감축하고,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 심화에 일조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카니 정부는 트럼프의 횡포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한 배에 탄 캐나다인들’이라는 애국주의를 강화하면서 위와 같은 일들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카니는 다보스 포럼에서 캐나다의 GDP 성장률이 G7에서 1등이라고 자랑했지만, 지난해 1분기 캐나다의 최고 소득 가구와 최저 소득 가구 간 소득 격차는 역대 최대였다.
카니 정부가 트럼프로부터 지키려는 것은 캐나다 노동계급의 삶과 안전이 아니라 캐나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이다. 카니가 말하는 중견국 연대는 중견국 지배계급 간 연대다. 다른 중견국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카니의 발언은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와 동맹국 압박이 기존 동맹 관계에 긴장과 균열을 자아내는 한 사례다.
중견국으로 불리는 국가들도 자본의 국제적 경쟁에 매여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지속적 협력이 쉽지 않다. 그나마 그것을 묶어 주고 조율했던 것이 미국 지도하의 제국주의 질서였는데, 바로 지금 미국 스스로 그 약화를 승인하고 있다.
중견국 연대를 말하는 사람들도 중견국들 간 신뢰가 관건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미국 패권에 맞설 대안으로 주목받은 브릭스 국가들만 하더라도 여러 사안에서 동상이몽인 경우가 많다.
동상이몽
한편, 좌파가 단기적으로 중견국 연대를 추구한다면, 당장에는 그것을 수행할 주체인 이재명 정부를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설득·견인해야 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한 배를 탄 세력으로 여기는 민족(애국)주의를 강화한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한미동맹 ‘현대화’에 협력하는 한편, 그것을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기회로 삼고 있다. 한국 지배계급의 전통적 성장 전략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트럼프의 이란 전쟁에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를 전쟁 반대, 파병 반대 문제에서 협력할 수 있는 주체로 생각하면 방향감각을 완전 상실하는 것이다. 설득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런 기조의 운동은 대중의 저항을 ‘탈동원’해 이재명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면 혼란과 사기저하를 겪게 된다. 2004년 이라크 파병 직후 딱 그랬다.
대중 투쟁이 정권을 독립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벌어지면, 운동을 이끄는 좌파들 자신이 애초에 투쟁을 자기제한적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또, 진정한 행위주체가 돼야 할 노동계급의 대중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청와대와 여당을 국익을 고리로 설득하려 할 것이므로, 투쟁 주체와 방법뿐 아니라 표방하는 구호와 이데올로기도 불필요하게 온건해지기 쉽다. 그런 ‘탈급진화’로는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지금 진보당은 이런 특유의 이층 전략을 구현하고 있다. 전쟁 반대와 파병 반대를 내건 연합 운동체를 만들고 대중 집회를 시작했다. 동시에, 조국혁신당 등과 함께 국회에 파병 반대 결의안을 제안하고 정부·여당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운동이 중도 정당들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 않으면, 대중 동원이 정부 설득용에 머물 위험이 있다.
정의당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군사적 지원 일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김종대 전 의원의 군사 지원 입장이 당 방침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국가 대 국가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좌파 측에서도 강화되고 있다. 좌파 일각에서 중견국 연대가 대안이라는 주장은 진영론의 변형으로,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 등 미국에 맞선 ‘국가들 간 협력·연대’를 추구하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주의 원리와 정면 배치된다. 국가들 간 연대에 기댈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국제주의 관점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을 참을성 있게 건설해야 한다.
출처: 한국군 파병 논란: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의 대안은 부적절하다 (〈노동자 연대〉 578호, 2026-03-24)
